사라진 일본군 '충혼비'···행방은 어디에?

입력 2025.08.05. 13:28 김종찬 기자
일본, 무안 망운 일본인 소학교 정문 앞에 건립
10여 년 전까지 마을 주민 보관하다 행방 묘연
시민모임, 일제 침략 역사…시·도민 제보 요청
일제가 무안군 일본인소학교 정문에 건립했다고 알려진 '충혼비'의 모습.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일제가 무안군 일본인소학교 정문에 건립했던 '충혼비'의 행방이 묘연해 시민단체가 행방을 찾아나서고 있다.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일제가 러일 전쟁 등에 참전해 사망한 일본군을 추도하기 위해 무안 망운면 일본인 소학교 정문에 세운 '충혼비'의 행방을 찾고 있다고 5일 밝혔다.

비석에는 충혼비 글이 새겨져 있으며, 글씨는 일본 육군대장 출신 이치노헤 효에(一戶兵衛)가 썼음을 밝히고 있다.

2016년 무안군 홈페이지에 소개된 이 비의 내력을 보면 "일본인 소학교 정문 앞에 서 있었던 '忠魂碑'라는 비석인데 육군대장 一戶兵衛가 세운 비이다. 광복이 되면서 다릿돌로 사용되었던 비석을 이 마을 주민인 남승용씨가 찾아다 보관하고 있는 식민지 시대 유물이다. 당시 학교 앞을 지나는 모든 사람은 이 충혼비에다 인사를 하며 지나가야 했다."고 작성돼 있다.

그러나 비석을 보관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진 주민 남씨는 수년 전 사망했고 이 비의 행방은 아직까지 묘연한 상태다.

기록에 따르면 일제가 곳곳에 충혼비 건립에 나선 것은 러일전쟁 이후의 일로, 다이쇼(大正) 천황의 즉위(1912) 기념사업으로서 지역의 재향군인회 분회가 헌금을 모집해 초등학교 한쪽에 건립한 것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비문 글씨는 제국 3대 재향군인회 회장 이치노헤 효에와 4대 스즈키 쇼로쿠의 예가 많고, 제막식은 위령제를 겸해 3월 10일 일본 육군기념일에 가졌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최근 충혼비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위해 무안 망운면 소재지에 현수막 2개를 게시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일제강점기 때 망운면 일대는 무안군내 다른 지역보다 일본인들이 많이 이주해 살았다.

특히 일제 말기의 망운비행장 건설 등으로 일본인 유입이 늘었고, 무안에 있는 두 개의 일본인소학교 중 하나인 남소학교가 현 망운초등학교 자리에 들어서기도 했다. 일본인 재향군인회 분회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에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최근 충혼비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위해 무안 망운면 소재지에 현수막 2개를 게시하기도 했다.

시민모임 관계자는 "일제가 초등학교 앞에 세운 충혼비는 우리에게 일제 식민통치의 상처를 되새기는 상징이자, 전쟁에 매달린 일본 군국주의 광기를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다"며 "일제 침략의 역사를 보여주는 소중한 역사 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광주·전남 시·도민들의 제보를 기다린다"고 밝혔다.

김종찬기자 jck4151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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