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위 보수 지역인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50대 중반을 넘긴 나에게 5·18은 오랜 시간 왜곡된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88~90학번인 우리 비슷한 또래는 대학 1·2학년 때 몰래몰래 5·18 관련 영상물을 보았음에도, '북한 공작원 소요'나 '폭동'이라는 낡은 서사가 영남 또래들의 공통 기억처럼 깊이 박혀 있었을 뿐이다. 20여 년의 세월을 건너 다시 선 이곳,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소년이 온다' 수상 1주년 기념 문학기행에 참여한 것은, 이 오래된 벽을 허물어야 할 영남인의 책무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4일 오후, 국립5·18민주묘지 민주의 문 앞에서 전국 각지에서 모인 문학인 30여 명과 대열을 맞추었다. 서울·경기, 멀리 대구·제주에서 온 이들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1주년을 계기로 광주시가 주최하고 무등일보와 5·18기념재단이 주관한 '소년이 온다, 광주를 만나다' 문학기행 참가자들이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묘역 전역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흰 장갑을 끼고 국화를 받든 우리는 추모탑 앞에 서서 엄숙하게 분향과 헌화를 이어갔다. 두 손을 모은 추모탑 아래, 수백 기의 묘 앞에 서자 오래전 책에서만 읽던 5월의 이름들이 눈앞에서 숨을 쉬기 시작하는 듯했다. 특히, 손 안의 알 씨앗이 부활을 상징한다는 설명을 들으니,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시대 전체의 피와 숨을 마주 선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다.
오늘과 내일 이 행사를 위해 시간을 내어준 이돈삼 선생의 안내에 따라 묘역 탐방에 나선 우리는 '소년이 온다' 속 주인공 동호의 실제 모델인 문재학 열사의 묘 앞에 섰다. 문학에서 만난 소년이 오늘 비로소 한 사람의 얼굴과 생년월일을 가진 현실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문 열사의 친구 양창근 열사, 광주의 첫 희생자 김경철 열사, '꼬마 상주' 아버지 조사천 열사의 묘비를 조심스레 쓰다듬거나 묵묵히 바라보는 문학인들의 표정은 점차 어두워졌다.
해설 중에 "아직도 이름을 찾지 못한 무명 열사가 많다"고 말하자 "세상에…"라는 짧은 탄식이 군데군데서 흘러나왔다. 이름조차 봉인된 채 세월만 풍화된 돌을 바라보며, 살아 있는 내가 그들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역사적 빚을 절감한다. 평생 고문 후유증과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가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희생자들이 안장된 2묘역에서도 참배가 이어졌다. '5·18의 상처가 여전히 현재형으로 남아 있다'는 호서대 강순아 교수의 소감처럼,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프리랜서 역사 강사 박진아 씨가 "묘역을 걷다가 이유 없이 갑자기 울컥했다. 5·18의 역사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와닿는다"고 한 말에 깊이 공감한다.
"내가 본 게 다 틀렸겠냐"는 확신 속에 부정적 시각을 고수하는 영남 또래 친구들, 그리고 아버지 세대의 '북한 공작원 소요'라는 낡은 서사 속에 살았던 저 자신을 반성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진실을 모르고 세상을 떠나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5·18은 6월 민주항쟁의 불씨를 주었다고 말하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인데도, 영남 보수층의 인식 변화 없이는 이 지역주의의 벽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부끄럽지만, 이곳을 직접 방문한 건 처음이라는 제주 황현호 대표의 소감처럼, TV로만 보던 공간이 이토록 넓고 압도적일 줄 몰랐다. 대학 3학년 때 비극을 구경하듯 바라보았다면, 이제는 그 세대의 나이를 훌쩍 넘긴 한 사람의 동시대인으로 죄스러움과 책임을 함께 느낀다. 문학인들과 함께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특강을 들으며, 하루 동안 보고 들은 내용을 역사·철학적 맥락 속에서 되짚는다.
5일, 우리는 '소년이 온다'의 주요 무대인 적십자병원, 옛 전남도청, 전일빌딩245 등 5·18 사적지를 둘러보며 기행 일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전일빌딩의 총탄 자국이 웅변하는 그날의 진실, 그리고 무등일보에 보도된 것처럼 '소년이 온다' 노벨상 1주기 특집과 국제포럼 등은 광주 사람들이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강력한 의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문경에서 여기까지 이 여정을 함께 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자리를 빌려 나는 5·18 정신이야말로 영남과 호남을 아우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매개가 될 것이라고 감히 주장한다. 영남 보수 세력이 5·18을 제대로 이해할 때, 영호남의 벽은 상당수 무너진다고 나는 확신한다. 현장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죽어갔는지를 느껴야만이 우리가 가진 모든 의심의 실타래가 풀린다고 본다.
나는 5·18 사적지 1박 2일 투어 상품화를 강력히 제안한다. 문학기행처럼 문학을 매개로 접근하고, 이돈삼 선생(현 전남도청 대변인)과 같은 전문가가 동행하여 단순 논쟁이 아닌 '공감의 대화'를 이끌어낸다면 완벽할 것이다. 영남 지역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대학 모임, 향우회, 지역 프로그램 등을 통해 광주 현장 방문을 정례화해야 한다.
오늘 5·18 묘역에 다시 서 보니, 이곳은 끝난 역사의 묘지가 아니라, 지금 내 삶의 태도를 매일 다시 묻는 '살아 있는 질문'이었다. 영남에서 온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처럼, 화합은 발걸음과 나의 행동부터 시작된다. 왜곡을 넘어 공감으로 나아가자. 호남·영남이 이 역사적 진실 앞에서 하나 되면 대한민국은 더 단단해질 것이다. '소년이 온다' 노벨상 1주기를 계기로, 더 많은 영남 사람들이 광주를 찾아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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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대삼 광주광역시사회서비스원장 광주와 전남의 행정 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특별시의 위상에 인구 320만, GDRP(지역 내 총생산) 150조원 규모다. 단순한 행정구역의 물리적 결합을 넘어, 수도권 일극 체제에 대응하고 인구 소멸이라는 절박한 위기 앞에 펼쳐진 시대적 돌파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정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도장을 합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삶을 지탱하는 모든 시스템의 전환을 의미한다.그중에서도 시민의 체감도가 가장 높은 '사회서비스'는 통합의 당위성을 증명할 핵심 분야라 할 수 있다.필자는 광주사회서비스원의 원장으로서 이번 통합이 가져올 사회서비스 생태계의 질적 도약과 그 기대효과를 세 가지 관점에서 짚어보고자 한다.첫째, 행정 경계를 넘어서는 '복지 주권'의 확립이다.예부터 '광주와 전남은 하나'라고 외쳐왔지만, 정작 시민의 삶과 사회서비스 현장에서는 행정 경계라는 보이지 않는 벽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일례로 전남에 살며 광주로 출퇴근하는 부모는 아이를 광주의 돌봄 시설에 맡기고 싶어도 '주소지 우선'이라는 벽에 부딪혀왔다.광주에 사는 자녀가 전남에 계신 노부모님을 위해 복지서비스를 신청하려 해도 지자체별로 기준과 절차가 달라 혼란을 겪거나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화순·담양 등 빛고을노인건강타운, 효령노인복지타운이 코 앞에 있더라도, 행정구역의 문제로 대한민국을 넘어 동양 최고라는 노인여가시설을 맘껏 이용할 수 없는 불편 또한 적지 않았다.행정통합은 이러한 행정의 불편함을 걷어내는 과정이다.행정 칸막이를 과감히 없애 시민들이 거주지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나 고품질의 사회서비스를 누리며 '보편적 복지권'을 보장받는 대전환의 시작이 될 것이다.두 번째, '규모의 경제'를 통한 사회서비스의 고도화와 전문화다.광주는 수준높은 돌봄 인프라와 전문 인력, 그리고 광주다움통합돌봄이라는 선진적 돌봄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전남은 초고령사회에 대응한 풍부한 현장 데이터와 서비스 수요를 갖고 있다. 이 두 자산이 통합한다면 그 시너지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이중에서도 특히 광주의 스마트복지기술(AI돌봄 등)과 전남의 지역 밀착형 복지 모델이 결합된다면, 복지로 대한민국을 선도하는 '초광역 복지 모델'을 수월하게 그려볼 수 있다.광주다움통합돌봄이 입법을 통해 광주를 넘어 대한민국 돌봄서비스의 표준이 된 것처럼 또 한번의 복지 서비스 표준화를 가져올 뿐 아니라, 각 지역과 인구 특성을 고려한 돌봄서비스를 더욱 정교하게 설계할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셋째, 사회서비스가 지역 소멸을 막는 '정주 여건'의 핵심으로 자리할 수 있다.기업 유치와 경제적 통합도 중요하지만, 정작 사람이 살고싶은 지역이 되기 위해서는 탄탄한 복지 안전망이 필수적이다. 아무리 일자리가 많아도 아이를 맡길 곳이 없고 어르신을 모실 인프라가 부족하다면 인구 유입을 기대할 수 없다. 행정 통합은 강력한 권한과 예산을 바탕으로 도시와 농어촌이 공생하는 '유기적 복지 전달체계'를 만들어줄 것이다. 이 지점에서 특별히 간과하지 않아야 할 것은 통합의 완성이 '따뜻한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점이다.통합이 단순히 효율성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광주와 전남이 한 뿌리임을 확인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정서적 공동체로의 회귀라는 점을 각인해야 한다.그 여정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의 삶'이 있어야 하며, 그 삶을 돌보는 사회서비스가 견고한 연결고리가 돼야 한다.광주사회서비스원은 광주와 전남이 상생 발전하는 복지 생태계를 구축해, 광주전남특별시민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지는 통합의 마중물 역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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