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공간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올해 발간된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공식보고서를 살펴보면, 이제 기후의 변화가 온도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광범위한 생물종의 급격한 절멸, 농수산물 생산량의 불안정성 증대, 급격한 기후변동으로 인한 재해와 일상 건강의 위협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도시들도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강화될 필요성이 있고, 향후 극단적 기후위기의 확산 국면에서 국제사회로부터의 압력에 대비해야 하는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른바 '지속가능한 도시'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으나, 기후위기 이전 시대의 생활양식과 에너지가 낭비되고,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것은 방치한 채로 지속가능한 도시가 된다는 것은 사실 어렵다. 특히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이 앞서가고 있는 국가들을 보면 일찍이 건축물의 건축이나 토지 이용계획의 변화는 물론이고, 공공이 운영하고 있는 도시교통체계를 전면적으로 탄소중립화하는 데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녹색건축물을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며, 수백만동에 이르는 건축물을 하루 아침에 개선한다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 또한 민간이 소유하고 있는 건축물의 성능을 강제로, 일거에 높인다는 것은 실무적으로나 예산측면에서나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도 국가 녹색건축물 기본계획이 처음으로 수립된지 1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건축물 신축부문이나 녹색리모델링을 가리지 않고 그 실적은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선진국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시마다 다르지만 에어컨 하나 설치하기 어려워서 그냥 참고 지내는 건물이 한 두동이 아니다. 지속가능성을 표방하는 많은 도시들이 개별 건축물을 전면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나서기 이전에, 도시를 이용하는 방식, 그중에서도 도시에서의 이동수단에 주목한 것은 일단 공공주도로 신속하게 적용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전환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합리적 결론이라고 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교통수단은 공공공간을 이용하게 되고 공공공간으로서의 도로의 조성, 관리는 공공부문에서 담당하므로 이에 대한 물리적, 재정적, 운영적 측면에서의 전환은 상대적으로 민간소유의 건축물에 비해 정책적 전환에 대한 사회적 합의만 끌어낸다면 비교적 신속하게 효율적으로 추진이 가능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 막대한 예산과 인프라가 소요되는 기존의 중후장대한 대중교통시스템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기 보다는, 도로 공간의 간단한 전환을 통해 바로 이용이 가능한 자전거나 PM, 그리고 보행공간을 확충함으로써 도시공간의 이용 방식을 근원적으로 전환하고자 많은 도시에서 노력하고 있다. 유럽의 많은 도시들도 20세기 후반에 자동차의 이용에 있어 우리나라에 뒤지지 않은 곳이 많았으나,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하는 도시체계의 전환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정치적 결정이 지속되어 오늘날의 지속가능한 도시체계 전환을 이루어내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도시들도 많은 산업화된 도시들처럼 승용차 중심의 도시이용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조성, 정비되고 성장해왔기 때문에 무탄소 교통수단, 저탄소 교통수단 기반의 도시이용 체계를 도입하는 것이 많은 운전자들에게 당장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승용차 중심의 교통체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속가능한 도시로 전환하는 것은 가능한가, 그리고 온실가스 감축 요구에 대응하는 것이 가능한가를 진지하게 사회적으로 논의할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일단 교통수단의 전환이 가능한 구역, 전적으로 승용차를 이용하지 않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쉬운 지점을 우선적으로 교두보로 확보하여 점차적으로 시민들의 공간적 편익을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으로 시작해야만 한다.
지속가능한 도시로의 전환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건축공사나, 대규모 인프라 토목공사로 시작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사용하는 길의 이용권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점차로 재배분하여 보행자·자전거·PM 등 대체교통수단을 활성화할 수 있는 기반을 공간적으로 마련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전환은 생각보다 많은 사회경제적 이점을 가져다 준다. 먼저 OECD 최저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보행자 교통사상자 수를 크게 줄일 수 있고, 개별 가구의 관점에서는 자동차 운행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을 줄여줄 수 있으며 보행이나 자전거 이용을 통한 건강증진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또한 가로에 보행자나 자전거가 많아지면 가로에 머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가로 경관 개선 및 가로활성화 효과가 이어지며 이는 사회적 활동·문화적 교류의 증대로도 이어진다.
흔히 교통소통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지만 기실 자동차가 빨리 이동하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적은 비용으로 적절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교통수단을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받아줄 수 있도록 길을 개선해야 한다. 초고령사회와 저출생의 위기 또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위협에는 비운전인구의 사회적 고립과 물리적 위험이 스며들어 있다. 차가 없으면 가고 싶은 곳을 안전하고 쾌적하게 가지 못하는 도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속가능한 도시는 적정비용의 도시이고, 또한 매력적인 공간과 형평성을 담은 길의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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