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칼럼] 로컬의 경험을 연결하는 우리 도시

@배웅규 중앙대 도시시스템공학 교수 입력 2024.08.29. 17:59
배웅규(중앙대 도시시스템공학 교수)

학교 가는 버스 안. 라디오 진행자가 소개한 미국 대평원지역 인디언의 인사말이 쏙 들어왔다. "미타쿠 예 오야신(Mitacuye Oyasin)",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다. 자신들을 생태계의 일부로 자연을 대하는 그들의 수만 년 삶이 농축된 말이다. 시간이 흘러 바스코다가마(Vasco da Gama, 1469~1524)는 동서양을 연결하여 대항해시대를 열었고, 변방의 포르투갈이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를 연결하여 새로 열린 세계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이 두가지가 아이폰을 발표하면서 단지 연결하였을 뿐이라고 말한 스티브잡스의 멘트와 공진했다.

할리우드 영화 '매트릭스(Matrix)' 시리즈는 물질문명의 극단에서 벌어지는 인류와 기계와의 한판 승부를 다루고 있다. 흥미진지함과는 별개로 비관적 미래의 단면을 직관하고, 다시 균형점을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세상을 가상세계로 대체하고 사람의 실체적 만남을 가상적 인식으로 속여 단지 에너지원으로 소모하는 영화 속 설정이 참담하다. 극히 제한된 사람들이 단절된 채 더 나쁜 미래가 오지 않도록 움츠리고 있는 현실이다. 이를 깨친 힘은 메시아 같은 주인공이라기 보다 자유의지로 해방을 꿈꾼 사람들과 자유의지를 가진 합성지성체의 연결이다.

세계적 대도시 뉴욕은 50년 전 파산위기였다. 뉴욕에서 항구기능의 이전이 저렴해진 자동차와 발달된 고속도로와 교차하면서 제조업 붕괴로 이어지고 1975년 재정위기의 기폭제가 되었다. 항구도시 뉴욕은 멈춰진 고속도로의 건설과 노후지역 재개발로 경제활력을 잃고 휘청거렸다. 제인제인콥스(J.Jacobs)의 장소와 공동체를 살리자는 운동이 이런 위기의 이면에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오늘날 뉴욕이 당시의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의 경제수도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촘촘히 깔린 고속도로와 공원을 건설하여 지속성장의 기반시설을 만든 로버트 모세스(Robert Moses) 덕분이다. 제이콥스의 동네와 커뮤니티라는 '거리의 관점'은 극히 인간적이었지만, 모세스의 기반시설인 '도시의 관점'은 도시 전체의 필요와 경제 활력과 바로 연결된다.

2024년 현재 기후위기가 자연재해를 너머 사회재난으로 상시화되고 있다. 올 여름은 폭염으로 서울 34일 열대야 신기록을 수립했다. 몇 일전 일간지 헤드라인은 "이젠 '광프리카'…'대프리카'는 옛말"이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여름철 체감온도를 비교한 결과 광주가 1위, 대구가 11위이고 최근 5년간 평균 폭염일수도 30년 전에 비해 광주가 2.5배 증가한 30.6일, 대구는 1.5배 증가한 25.6일로 밝히고 있다. 기후 역전의 이면엔 대구시의 숲을 늘리고 바람길을 조성한 도시정책과 시민의 라이프스타일 전환이 있다. 기후위기와 펜데믹은 생존의 문제이고 이제 지역적 대응과 시민적 실천이 시급한 것이다.

한편 사상 최저의 저출생과 최고의 고령화로 가속화된 인구감소와 지역경제 활력 저하로 지방소멸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23년 합계출산율 전국 0.72명, 서울 0.55명으로 OECD 최저수준이고, 고령화율은 전국 19.0%, 서울 18.5%로 전국 8개 광역 지자체가 20%가 넘어 이미 '초고령화사회'로 진입했다. 여기에 경제 활력의 핵심이 되어야 할 청년층에서 그냥 '쉬었음'이라고 생각하는 비중이 전체 인구대비 5.4%에 달하는 사실은 충격을 더한다. 이것은 농촌과 중소도시, 대도시도 예외가 아닌 전국에서의 문제다. 이에 정부는 대응으로 특별법을 제정하여 행정·재정 지원을 하고 있지만 국비 지원이라는 대증요법에만 그칠 경우 부작용만 남을 것이다. 고유한 지역자산을 활용하고 맞춤형 자생전략을 발굴하여 지역의 실효적인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연결 전략이 요구된다.

많은 언론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중앙과 지방을 대립구조로 조명한다. 이런 대립구조가 독자의 관심을 끄는데는 유용하겠지만, 소멸위기의 상황에서 결코 유효하지 않다. 어느 한쪽이 잃거나 모두가 손해보는 이런 이분법은 해법이 아니다. 나만의 맞춤과 가치로,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를 해결하는 것이 핵심과제이다. 중앙과 지방이 아닌 '로컬'과 '익스프레스'로 바라보는 관점이 절실하다. 서울이든 지방이든 저마다의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고, 이런 정체성을 갖춘 수많은 장소들로 그 곳의 가치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느린 로컬과 빠른 익스프레스가 공존하며 그 곳의 삶을 잇고 있는 것이다. 로컬의 관점에서 각 지역의 가치에 기반한 익스프레스를 찾는 전향적 접근이 필요한 때다.

우리는 원하면 언제라도 어디든 갈 수 있는 온오프라인으로 연결된 일상에서 필요하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도시에 살고 있다. 이제 중앙과 지방, 세계와 변방의 이분법이 사라지고, 그 곳의 장소와 독특한 문화가 담긴 '로컬러티(Locality)'로 미래 성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국의 도시에서 존재하는 지역과 장소는 누리는 사람의 속도와 방향에 따라 맞춤형으로 준비되고 원하는 가치를 향유하게 하는 것이 미래 도시의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연결된 세상은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부정적이기도 하여 어떤 경우라도 그 원리를 외면하면 최적의 대응이 어렵다. 늘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일상에서 맞이할 크고 작은 즐거움이 우리에겐 큰 희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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