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칼럼] 철도역, 직주분리가 아닌 직주근접을 이끌어야 한다

@한광야 동국대 건축공학부 교수 입력 2024.06.10. 11:15
한광야
동국대 건축공학부 교수
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나라 도시는 외곽의 신속한 개발을 위해 구도심의 시청·학교·방송국·병원·법원·경찰서 등의 도시시설을 옮겨 신도심을 만들었다. 이러한 도시확장은 직주분리, 즉 '집'과 '일자리'의 공간적 분리가 좋은 도시라는 믿음에서 시작된 것이다. 최근 '15분 도시'라는 개념이 회자되고 있지만, 국토계획과 주택정책은 여전히 교외지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외곽의 도시개발 사업은 성공할 수 있겠지만, 당연히 도심공동화를 초래한다. 우리는 왜 직주분리를 추구해왔고, 그것으로 어떤 도시를 얻게 되었는지 그리고 대안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도시에서 서로 어울리지 않는 활동(용도)을 공간적으로 분리하려려는 노력은 현대 도시계획의 시작점이다. 이러한 시도는 뉴욕시가 20세기 초에 입법한 조닝규제(1916)로 당시 과다하게 개발되기 시작한 상업용 고층 건물로부터 주거지의 일조권을 확보하고 공업시설로부터 주거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처음 등장했다. 뉴욕의 조닝규제는 이후 신속하게 일본 도쿄시의 도시계획법(1919)으로 흡수되어 도쿄의 직주분리와 이후 1960년대부터는 직주원격의 교외 주거지 개발로 확장되었다. 또한 도쿄의 직주분리는 일제강점기에 도입된 조선시가지계획령(1934)의 기저가 되어 현재 우리나라 도시계획의 용도지역제로 남아 있다. 서울 명동의 주거가 배제된 중심상업지역과 성수동의 준공업지역이 그 대표적인 결과이다.

그렇다면 도쿄는 당시 왜 직주분리의 가치를 도입했으며 최근까지도 이 개념을 추구해온 것일까? 도쿄의 직주분리의 정책은 1923년 9월1일 낮에 발생한 간토대지진(진도 7.9)과 깊게 관련되어 있다. 이 대지진과 후속 화재로 당시 집과 직장이 모두 집중되어 있던 도쿄의 오래된 중심부인 시타마치가 한 순간에 폐허로 변하고 추정 사망자가 약 14만2천800명이 발생했다. 이 거대한 도시재난은 니혼바시-교바시-긴자-신바시-츠키지가 습지를 매워 조성된 에도시대의 간척지로서 지진에 취약하기 때문에 가중된 결과였다.

간토대지진 이후 도쿄의 도시재건 노력은 일자리가 집중된 시타마치와 지진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한 내륙의 구릉지인 야마노테에 조성된 주거지로 분리했고, 기존의 두 개 철도선을 이용해 두 개 지역을 연결하는 순환철도선인 야마노테선의 신속한 개통으로 시작되었다. 이 즈음 민간철도기업이 런던의 가든시티를 모델로 도쿄의 전원도시로 개발한 덴엔조부가 살고 싶은 주거지 모델이 되었다. 이후 도쿄는 1960년대에 도쿄올림픽을 개최하며 야마노테선에서 외곽으로 뻗어나가는 일군의 민간 철도선들을 따라 정부와 민간이 대규모 신도시들을 개발했다. 도쿄가 직주분리에서 직주원격의 대도시로 변화한 시대이며, 여기서 정부의 타마뉴타운과 민간사업인 타마가든시티가 건설되었다. 도쿄의 100년 도시역사는 '지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집과 일자리를 분리하고, 이 두 기능을 연결해온 철도'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지진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한 우리나라 도시는 왜 이토록 직주분리의 교외지 개발에 매진해 왔을까? 미국 도시들의 옛 도심이 쇠퇴하고 교외지가 성장해온 현상에 관해 오랫동안 회자되어온 농담이 있다. 미국의 교외지 개발은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천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의 상위를 차지해온 건설, 석유, 자동차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지원해온 결과라는 것이다. 이 기업들이 긴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장거리 자동차 통근만이 가능한 교외 주택을 짓고, 금융권이 이를 지원해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이 경로를 따라온 듯하다.

도시는 다수의 이권과 거대 자본이 투자되어 성장하므로, 잘못된 경우 좀처럼 전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대규모 재난을 겪은 후 그라운드 제로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도시들은 아쉽게도 대부분 옛 모습과 거의 동일하게 재건되어 왔다. 수십만명의 일상의 생계와 복구비용이 새로운 도시의 그랜드 비전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시는 유사 도시들의 경험과 교훈을 공유하고 때로 복사되며 보수적으로 성장하고 관리되어 왔다.

우리나라 도시의 오래된 모습은 당나라 수도 장안의 주작대로(현재 중국 산시성)에서 비롯되었지만, 현대 도시확장의 모델은 일본의 도쿄로부터 큰 영향을 받아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도시는 직주분리를 갖고 왔으나, 그 존재방식인 철도를 가져오지 못했다. 물론 우리도 철도를 두고 있으나 주 기능은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장거리 교통수단이며, 일상 생활의 시작점과 중심부가 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은 옛 도심으로부터 10㎞ 이상 떨어져 개통된 고속철도역과 자동차가 없으면 일상 생활이 어려운 중소 도시에서 더욱 심각하다.

우리나라 도시는 과연 어떻게 철도와 하나가 되어 성장(또는 축소)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주제를 가지고 최근 우리 중소도시들의 현실적인 미래 생존전략을 찾아왔다. 특히 이번 학기에는 놀라운 학생들과 인구 10만명의 내륙 소도시의 문제들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교외의 개발에 대한 아래 대안들을 철도를 이용해 제안하고 있다. 철도는 도로 교통과 비교하여 높은 친환경 지속가능성을 가진 대중교통 체계이기 때문이다.

첫째, 중소도시들은 하나가 아닌 연합된 군으로 기능하며 함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이것이 최근 이슈인 메가시티의 구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소도시들이 오랫동안 공유해온 지역정체성은 하천의 수계를 기반으로 형성되어 왔고, 100년 전부터는 이를 철도가 대체하며 확장시켜 왔다. 이에 수계문화권에 기반한 현재 철도는 중소도시들이 공유해온 지역정체성을 모으고 개발하고 재정의하여 연결할 수 있는 공통된 교통체계이다. 여기서 집과 일자리가 집중된 철도역은 시민의 일상 생활의 시작점이며 직주근접의 중심부로서 구도심과 신도심을 연결하는 통근·통학 수단으로 변화할 수 있다.

둘째, 구도심의 철도역에 인접한 정체성이 없는 상품들을 판매해온 전통 시장들은 이제 다이어트를 하고, 그 일부는 지역정체성을 발굴하고 개발하는 로컬컨텐츠 타운으로 진화할 수 있다. 이러한 컨텐츠 산업생태계의 개발과 운영은 그 도시의 로컬크리에이터와 대학 및 전문학교의 역할과 책임이 되어야한다. 전통 시장과 로컬컨텐츠 타운은 그 주변에 주로 위치해온 기능 저하된 중앙역·철도신호소·폐역의 재건축과 재생을 통해 구도심의 경쟁력을 선제적으로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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