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칼럼] 노인과 함께 사는 도시, AIP(Aging in Place)

@주서령 경희대학교 주거환경학과 교수 입력 2024.05.23. 17:59
주서령 (경희대학교 주거환경학과 교수)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초고령사회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내년에는 전체 인구의 1/5이 65세 이상 노인이 될 전망이다.

10여년 전부터 초고령사회를 예측하고 경고하면서 여러 정책들이 추진되어 왔지만 그 결과를 피부로 느끼기 어렵다. 주변의 어르신들과 은퇴를 예정하거나 이미 한 분들은 필자에게 "지금 사는 집을 유지해야 하나 팔아야 하나. 만약 이사를 해야 한다면 어느 지역으로 또는 실버타운으로 입소해야 하는가"를 물어보며, 매우 궁금해한다.

보건복지부(2020)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들은 건강유지 시 현재 집(83.8%)에서 계속 거주하기를 희망하고, 건강 악화 시에도 현재 집에서 재가서비스를 받고(56.5%) 계속 거주하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즉 대다수의 분들이 "살던 곳에서 계속해서 거주(Aging in Place)"를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노인이 살던 곳에서 오랫동안 자립해서 거주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현재 대다수의 노인들은 본인의 집에서 거주하다가 건강 상태가 악화되고 가족이 보살피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요양원에 입소하게 되며, 요양원과 병원을 왔다 갔다 하다 생을 마감하게 된다.

현재 자립이 어려울 때 입소할 수 있는 주거대안으로는 민간이 제공하는 노인복지시설(노인주거복지시설, 노인의료복지시설)과 공공이 제공하는 고령자복지주택이나 케어안심주택 등이 있다.

공공이 제공하는 노인주거인 고령자복지주택과 케어안심주택은 주거와 복지 그리고 의료까지 함께 제공되는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저소득층 노인이 수혜 대상이다. 고령자복지주택은 2023년 기준 전국에 3천924가구만 공급되었다. 고령 인구 대비 공급률이 0.1% 수준이어서 이곳에 입소한다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 수준이다.

반면에 민간이 개발, 제공하고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노인복지주택은 대부분 고소득층 노인 대상이라, 중산층 노인들은 감히 생각할 수 없다. 2022년 기준으로 총 노인인구의 약 2.65%인 23만4천066명이 노인복지시설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중 대다수(2.25%)는 노인복지시설 중 요양원에 거주하는데 요양원은 사실 집이라기보다는 병원에 가깝다. 노인복지시설 중 가장 일반 집에 가까운 것은 노인복지주택인데 전국적으로 39개소에 그치고 있으며 총 노인인구의 0.1%만이 거주하고 있다. 전라도에는 전남에는 없으며, 전북지역에만 4개소가 있다.

현재 자립이 가능할 정도로 건강하시고 중산층 정도의 경제 수준의 노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주거 대안은 거의 부재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국내외 노인복지 정책은 과거 '시설' 중심에서 '재가'로 패러다임이 변화되어가고 있으며 지역사회통합돌봄을 통한 커뮤니티케어 체계를 지향하고 있다. 만약 건강하고 자립이 가능하신 노인들을 최대한 본인의 집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에서 지원해 준다면, 장기요양보험 비용 등 사회적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향후 우리나라에서 인구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노인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에서 이들이 건강하고 자립적인 삶을 살수 있어야 그만큼 국가적 부담은 줄어들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노인주거 정책과 대안을 개발할 때 고려해야 할 방향을 제안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AIP(Aging in Place)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AIP의 공간적 개념은 단순히 '집' 뿐만 아니라 친숙한 '지역사회' 등과 같은 넓은 지리적 단위를 지칭하는 의미까지 확대할 수 있다. 요양원이나 노인복지주택이 지역사회에 건설될 때 님비 현상이 종종 벌어지곤 하는데 이 시설은 혐오시설이 아니며 우리와 우리의 부모가 앞으로 입주하게 될 집인 것이다.

둘째, 자립이 가능하여야 한다.

2022년 서울시 고령자 안전사고 구급 출동 18만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사고발생지역은 '집(74.2%)'이 가장 많이 차지하였다. 가장 안전해야 하는 집이 가장 위험한 장소인 것이다. 노인이 안전하게 집에서 거주하고 최대한 다른 이의 도움없이 자립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유니버설 디자인 (Universal Design)'이 적용되어야 한다. 즉, 집 안에 단차를 없애고 미끄럼 방지 바닥재를 사용하고, 문 폭을 넓히고 공간도 청년주택보다는 넉넉해야 한다. 욕실에서는 변기나 욕조 인근에 안전손잡이를 설치하여 노인들이 스스로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여 자존감을 높여주어야 한다. 도시지역보다 농어촌지역의 전통적인 주택에 거주하시는 노인의 안전성 문제는 더욱 심각한 형편이다.

셋째, 부담 가능하여야 한다.

우리나라 고령자는 대부분 노후자금이 부족하고 형편이 좋은 경우 집 한 채만을 보유하고 있다. 소유한 주택을 활용하여 안전한 노후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금융제도가 필요한데 현재 우리나라에는 주택연금이 있지만 그 가입자 수가 크게 높지 않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자면, 가장 두터운 인구층을 형성하고 있는 중소득층 노인이 부담 가능한 비용으로 원하는 지역에서 선택할 수 있는 주거대안이 필요한데 이를 모두 공공이 책임질 수는 없으므로 공공과 민간이 협력하거나 민간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과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주택은 단 몇 년 사이에 준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부터 서둘러 준비해야 하며, 노인주거는 '복지'와 '의료'가 아닌 '거주'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

노인과 더불어 사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물리적 주택의 공급과 더불어 노인의 신체적·경제적 수준에 맞춰서 취사 선택할 수 있는 주거복지서비스의 제공 시스템, 그리고 안정적인 은퇴 후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보유 자산 유동화 및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지원 체계의 고민이 함께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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