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칼럼] 아름다운 느낌의 도시

@양우현 중앙대학교 건축학부 명예교수 입력 2024.05.02. 17:53

건축을 공부하던 대학생 시절, 도시설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무모한 해석과 감정적인 평가가 만연한 건축설계 교육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직설적으로는 느낌에 의존하여 설계안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시는 교수님들에 대한 반발이었다. 설계의 논리나 주장보다는 결과로서 나타난 설계안의 형태적 특성과 표현 형식의 우수함을 취향에 근거하여 판단하고 평가하는 교육 방식은 한창 창조적인 생각과 논리적 발전을 중시하던 건축학도의 탐구열에 제동을 거는, 미칠 것만 같은 불만이었다. 그러던 중, 4학년 때 처음으로 경험한 도시설계라는 과목은 합리적 판단과 논리에 근거하여 계획안을 판단하는 환상적인 내용이었다. 건축설계와는 다르게 성실한 노력이 정당하게 보답 받을 수 있다는 기대로 몇 날 며칠을 밤새워 공부하고 설계하곤 하였다. 누구에게도 내 설계안을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고 비판에는 가차 없이 반박할 수 있는 이 설계 분야는 나의 지적 능력을 갈고 닦고, 또 지식을 뽐내기에 안성맞춤이라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전문 분야에 대한 만족감은 수십 년간 나의 연구와 실무를 지탱해준 열정의 원천이자 자부심이었다.

그러던 즈음, 직접 경험한 도시설계나 단지계획 사례들의 자료를 정리하다가 명징한 논리와 합리적 형식만으로 계획의 우수성을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 동안의 신념을 뒤엎는 참으로 모순적인 발상이었다. 건축물과 외부공간으로 이루어지는 단지나 도시는 구성요소들의 체계적인 조직, 기능의 유기적 관계, 검증된 이론의 능숙한 구현 여부로 당연히 그 우수성을 판단할 수 있지만, 감동을 주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은 그 외의 요인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명확하지 않은 이런 의혹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 원인 규명의 궁리 덕분에 우수한 사례들은 인간의 감성을 울리는 '아름다움의 느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도시를 설계하는 것은 여러 구성요소들을 기능적으로 조직하고 필요한 시설과 공간을 합리적으로 배분하여 전체를 완성하는 매우 논리적인 과정이다. 그래서 도시설계 전문가들은 공공성을 중시하면서 상식적이며 기능적인 계획안을 만들어내고자 무한히 노력한다. 또 공공건축물은 물론, 사유화된 건축물조차도 개성적인 형태 표현과 상징성을 적절한 방식으로 규제하여 전체적인 조화를 유도하는 것을 최선의 가치로 삼는다. 이런 태도는 부분이라는 구성요소들이 형태적, 기능적으로 서로 어울리게 되면 무리 없이 제대로 된 전체를 완성할 수 있다는 원리를 기초로 한다. 대부분의 도시설계와 단지계획 사례들은 이런 합리적인 태도로 무리 없이 실현되었지만, 이런 과정에서 부족함을 굳이 찾아낸다면 그것은 사용자인 '사람의 느낌'을 별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판단은 도시를 설계하고 환경을 조성하는 목적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는 단순한 진리에 근거한다.

느낌은 보통 아름다움을 지향한다. 오랫동안 우리의 기억에 남는 느낌은 아무래도 좋은 감정, 즉 아름다움 때문이다. 이 증명할 수 없는 진리를 믿는다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도시환경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다. 어떤 방법과 형식으로든 기능적이고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일 뿐이다. 우리가 사랑하게 되는 생활환경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를 가지고 있을 때이다. 아름다운 느낌을 가지려면 오감이 만족하여야 한다. 숨이 멎을 듯 아름다운 석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아파트, 여러 다세대주택의 발코니에 놓인 다채로운 화분들이 인상적인 주택가, 상쾌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 동네의 멋진 하천, 아이들의 발랄한 재잘거림으로 충만한 행복한 놀이터, 풀냄새 그윽하고 새소리가 흥겨운 탁 트인 공원, 음식 냄새로 군침이 돌고 화려한 조명조차 흥겨운 상업가로, 안락한 느낌으로 언제든 가고 싶어지는 편안한 도시 광장, 자연 속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어 주말마다 찾아가는 매력적인 둘레길. 이런 아름다움들이 어우러진 도시환경을 상상해보면 우리는 행복해지고 그 속에서의 일상은 그리 힘들지 않을 듯하다. 아름다운 현상들이 그득한 도시환경은 도시민의 정서적 만족에 보탬이 되는 고마운 존재일 것이다.

'도시 속의 아름다움의 느낌'은 계획의 대상이어야 한다.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태도로 실천한 도시설계는 이만한 도시환경을 우리가 누릴 수 있도록 해준 가치 있는 노력의 결과이다. 그러나 이제 더 멋진, 더 행복한 도시생활을 위해서 아름다움의 느낌을 계획하여야 한다.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은 부수적 요소로 여기는 '이성적' 태도보다는, 초기 단계에서 계획안의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중요 계획요소로 취급하는 '감성적' 방법을 시도할 때가 되었다.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도시가 더 기능적이다. 아름다워 행복해지는 환경을 가진 도시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도시의 미래상이다. 양우현 (중앙대학교 건축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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