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전남광주통합특별시를 이끌 민주당 후보에 민형배 국회의원이 결정됐다. 민주당 절대 강세 지역이라는 특성상, 이번 경선 승자가 초대 통합 특별시장이나 다름없다. 광주·전남 통합은 수도권 일극 체제에 맞서는 첫 본격적 실험이자, 국토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가늠할 시험대라는 점에서 승자가 감당해야 할 왕관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초대 시장은 단순한 광역단체장이 아니라, 새로운 권력 구조와 행정 질서를 설계하는 자리다. 이 도도한 역사적 시험대 앞에 설계자로, 실행자로 호명된 것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논의가 그 무게에 걸맞았는가 하는 점이다. 경선 과정에서 경제정책과 산업 유치, 교통망 등 개별 공약은 넘쳐났다. 허나 통합시를 어떤 가치와 원리로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도시 철학, 그 위에서 어떤 도시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비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등은 뚜렷하지 않았다. 통합시가 도시의 구조를 재편하는 선택이라면, 개별 정책에 앞서 이를 관통하는 기준이 먼저 제시됐어야 한다. 총론 없이 각론만 난무한 꼴이다.
이 공백은 단순한 아쉬움이 아니라 구조적 위험이다. 기준이 없는 정책 경쟁은 단기 성과와 가시적 사업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도로나 건물은 눈에 보이지만, 산업 생태계와 인재 정주, 생활권 재편은 시간과 설계를 필요로 한다. 방향을 잃은 도시는 정치의 시간에 끌려가고, 그 결과는 재정 낭비와 구조 왜곡으로 귀결된다. 통합시가 이 함정에 빠진다면, 거대한 권한과 재정은 기회가 아니라 실패를 확대하는 장치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통합은 행정의 결합이 아니라 구조의 재편이다. 광주와 전남, 권역별로 형성된 서로 다른 산업 기반과 생활권, 재정 여건과 행정 수요를 하나의 체계로 엮어내는 일이다. 이 과정은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는다. 이를 관통하는 기준과 방향이 있어야 하고, 그 기준이 곧 도시 철학이며 비전이다. 통합시는 개별 공약의 집합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어떤 공동체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정의가 먼저 제시될 때, 정책은 비로소 하나의 방향을 갖는다.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권력의 비대화다. 통합특별시는 재정과 산업, 교육과 교통을 아우르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이 권한은 기회이자 다른 한편 위험이다. 초대 시장은 통합의 수혜자가 아니라, 권력 집중을 경계하고 시민께 분산해야 할 첫 수행자라는 자세로 출발해야 한다. 시민 참여, 권한 분산, 의회 견제, 투명한 인사원칙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통합시는 거대 일당 체제의 또 다른 외피에 불과할 뿐이다. 거대한 권한에 민주당 일당 체제의 폐해를 어떻게 극복해내느냐. 통합시장에게 주어진 또 다른 과제다. 통합의 성패는 권한의 크기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나누고 통제하느냐, 민주적 운영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정치개혁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통합이라는 거대한 행정 개편에 걸맞은 선거제와 의회 구조 개편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통합은 반쪽짜리다. 행정은 통합됐지만 지방정치가 그대로라면, 그것은 혁신이 아니라 독점의 재편에 그친다. 초대 시장의 책무는 권한을 쥐는 데 있지 않고, 그 권력을 견제할 구조를 함께 설계하며 미래로 나가는 일이다.
재정 운용 역시 또 다른 과제다. 이는 통합의 성격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통합시를 어떤 가치와 원리로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도시 철학이 재정으로 구현된다. 향후 투입될 대규모 지원은 기회이자 시험이라는 점에서 차기 시장의 도시 운영에 대한 철학이 절실하다. 도시 철학이 부재하면 정책은 단기 성과나 가시적 사업에 쏠리게 된다. 도시의 방향이 없는 상태에서는 정치의 시간은 짧아지고, 도시의 시간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이 재원들이 토건이나 전시성 사업에 흩어진다면 남는 것은 부채와 공허한 상징뿐이다. 광주와 전남의 강점을 실제 일자리와 산업 구조로 연결하는 설계가 뒤따라야 한다.
통합시의 승부는 이제부터다. 지금부터 총력을 기울여 6·3 지방선거까지 통합시의 방향과 기준을 지역민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급박하게 달려온 그 길은 시대가 요구한 길로, 어쩌면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바꿀, 급변하는 세계 속에 지역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대전환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제 그 길을 분명한 설계로 완성해야 한다. 급변하는 세계 속에 방향을 갖지 못한 도시는 주변으로 밀려나지만, 구조를 재편한 도시는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해 왔다. 광주특별시가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다.
이를 기회로 만드느냐, 위기로 전락시키느냐는 결국 차기 시장이 어떤 기준과 방향을 세우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합은 주어진 기회가 아니라 만들어내야 할 성과다. 이제 남은 것은 얼마나 단단하게 준비하고, 그 준비를 끝까지 밀어붙이느냐다. 차기 시장이 이 도시의 무게를 엄중히 인식하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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