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남기 위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입력 2026.06.25. 17:01 최소원 기자
[영화읽기-필 로드&크리스토퍼 밀러 감독의 ‘프로젝트 헤일메리’]
지구의 운명 책임지게 된 주인공
불가능에 가까운 프로젝트 투입
감정선 표현 돋보이는 원작 대비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영화 재현
우주 재난 다룬 SF인 듯하지만
절망 속 인간의 사랑 담은 이야기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틸컷.

헤일메리:절망적인 상황에서 아주 낮은 성공률을 바라보고 적진 깊숙이 내지르는 롱패스를 뜻하는 미식축구 용어이자, 버저가 울리는 순간에 득점할 것을 노리고 먼 거리에서 던지는 슛을 뜻하는 농구 용어.

살다 보면 아주 작은 우연에 모든 것을 걸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가령 대학 입시를 앞두고 우주 상향으로 지원한 대학의 합격을 바란다든지, 낙점할 걸 알면서도 매주 로또를 구매하는 일들 말이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실패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기에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크게 무너지진 않는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정도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일 내 손에 지구의 운명이 달려 있다면 어떨까. 인류를 비롯해 생물과 무생물, 존재와 비존재의 모든 것들이 나의 손에 달려있으며, 그것을 구할 가능성은 기적에 가까운 확률뿐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엄청난 부담감을 못 이기고 공멸(共滅)을 택하거나 내가 조만간 없애버릴지도 모르는 아주 머나먼 곳의 외딴 섬으로 도망갈 것이다. 그렇지도 않다면, 아주 끝까지 함께하는 수밖에 없다. 함께 살거나, 죽거나, 생존의 결말에 닿을 때까지 말이다.

과연 지구의 운명을 책임질 우리의 과학자 그레이스의 선택은….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틸컷.

◆절망 끝에서 날아간 마지막 패스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화성에서의 생존기를 담은 ‘마션’의 작가 앤디 위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SF 영화다. 원작 소설은 700페이지가 넘는 이른바 ‘벽돌책’이지만, 특유의 유머와 따뜻한 서사 덕분에 방대한 분량조차 잊게 만든다. 과학 이론과 우주 생존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놓지 않는다는 점에서 앤디 위어 특유의 장점이 빛난다.

원작을 먼저 읽은 독자라면 영화를 보며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된다. 아무래도 700여 페이지의 서사를 150분 남짓한 러닝타임 안에 담아내기엔 한계가 있다 보니, 영화는 과학적 설정과 감정 묘사를 상당 부분 압축했다. 특히 우주선에서 깨어난 주인공 그레이스가 기억을 되찾아가는 과정은 원작에서 훨씬 세밀하고 긴장감 있게 그려졌지만 영화에서는 비교적 빠르게 지나간다. 고립감과 불안, 그리고 외계 생명체 로키와 서서히 마음을 나누는 과정 역시 소설 쪽이 훨씬 깊다. 같은 결말임에도 소설에서는 울컥했던 장면이 영화에서는 조금 덜 절절하게 다가왔던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강점은 분명했다. 활자로 상상하던 세계를 실제 시청각 이미지로 구현해냈다는 점이다. 특히 팬들이 가장 궁금해했던 존재인 로키는 영화 속에서 놀라울 만큼 사랑스럽게 탄생했다. 중후하지만 다정한 외계어 음성, 서툴지만 진심 어린 태도, 그리고 그레이스와 쌓아가는 우정은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배우 산드라 휠러가 연기한 스트라트 사무관의 노래 씬이다. 연구진 앞에서 해리 스타일스의 ‘Sign of the Times’를 부르는 순간 냉철하고 비정해 보였던 인물에게도 결국 인간적인 슬픔과 두려움이 존재했음을 깨닫게 된다. 세계의 종말 앞에서 부르는 노래가 이상할 만큼 뭉클하게 다가온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틸컷.


◆멸망 직전 우주에서 발견한 ‘인간다움’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관통하는 핵심은 결국 사랑과 연대다. 여기서 사랑은 성애적 사랑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을 가여워하고, 걱정하고, 함께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어주는 마음에 가깝다. 지구를 위해 목숨을 건 그레이스와 자신의 행성을 구하기 위해 외롭게 분투하는 로키는 서로 다른 종족임에도 점차 친구가 되어간다. 영화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랑과 연민, 희생 같은 감정이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결국 그들의 ‘헤일메리’는 성공한다. 지구도, 로키의 행성 에리드도 멸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레이스는 로키를 구하기 위해 지구로의 귀환을 포기한 채 끝내 돌아가지 못한다. 대신 그는 낯선 행성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과학 교사로 살아간다.

처음 소설을 읽었을 때는 그 결말이 어딘가 쓸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그레이스는 비록 지구로 돌아가진 못했지만, 자신이 구해낸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며 분명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삶의 행복이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보기엔 비극 같아 보여도, 정작 그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의미 있고 충만할 수 있는 것 말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거대한 우주 재난을 다룬 SF 영화이면서도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절망 속에서도 누군가를 위해 끝내 손을 내미는 마음,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걸 알면서도 마지막 희망에 자신을 던지는 용기. 그 무모한 선택들이 결국 세상을 조금씩 구해낸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 역시 각자의 ‘헤일메리’인지도 모른다. 실패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걸 알면서도, 끝내 사랑하고 믿고 버티는 것. 그 어리석고도 아름다운 인간의 본능을 조용히 응원하게 된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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