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라는 거대한 시험대에서
자신의 설 자리를 찾는 두 사람
이별 후 각자 길 통해 목표 실현
“그때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다면”
10년만 재회…‘선택과 책임’ 강조
누적 관객 250만명… 호응 높아


수도권 외의 지방에 거주하는 청년에게 서울은 상징적이면서도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 공간이다. 한편으로는 막대한 인프라와 문화 산업의 집중이라는 기회의 장을 제공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인에게는 현실적 장벽과 심리적 부담을 동시에 드리우는 도시다. 서울은 그 자체로 21세기 바쁜 현대인의 삶을 단면적으로 투영하는 무대이자 사회적·경제적 압력을 시각화하는 상징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지방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행위를 일컫는 ‘상경’은 지리적 이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청년 세대의 상경은 자신의 삶을 재설계하고,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탐색하며, 구조적 제약 속에서 자리를 확보하려는 시도로 이들이 직면한 현실적 난관과 꿈 사이의 갈등을 동시에 내포한다.
20여 년간 자리 잡고 있던 둥지를 떠나 서울이라는 복잡한 도시에 도착한 청년들은 절망적인 주거 문제와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된다. 우리 동네에서라면 아파트도 충분했던 월세가 서울에서는 코딱지만 한 원룸을 겨우 마련할 수 있는 현실이라니. 또 매일 아침 맞닥뜨리는 출근길 지하철의 인파, 새벽에도 환히 불을 밝힌 상가, 끝없이 이어진 아파트 단지와 고층 건물 속에서 자신이 설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율성을 시험하게 된다.
‘만약에 우리’는 이러한 구조적·사회적 맥락 위에 전남 고흥에서 서울로 상경한 두 청춘의 사랑과 갈등을 조명한다. 원작 ‘먼 훗날 우리’가 2007년 베이징을 배경으로 청춘의 불안과 선택을 탐구했다면, 리메이크작은 2008년 서울이라는 배경을 통해 상경한 청년들이 직면하는 현실적 난관을 보다 밀도 있게 재현한다.

◆서울 상경 청년들의 고단한 성장기
극중 은호(구교환 배우)의 첫 직장은 블랙기업으로 설정된다. 상사의 폭언과 손찌검이 습관적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통해 현실에서 청년이 직면할 수 있는 권력 불균형과 심리적 압박을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은호는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쉽게 떠날 수 없으며 건축가를 꿈꾸는 애인 정원(문가영 배우)과의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현실적 제약 속에서 균형을 찾는다.
당시 N포세대에 이어 오늘날에는 ‘쉬었음 청년’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쉬었음 청년 증가’라는 사회 현상은 다양한 이유로 구직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뉘앙스를 내포한다. 이를 통해 세대 간 갈등은 깊어지고, 갈라치기 등 새로운 사회적 문제도 양산된다.
영화 속 은호와 정원은 각자의 꿈을 놓지 않지만 당장의 경제적 여유가 부족해 막상 꿈에 다가설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한다. 건축가를 꿈꾸는 정원은 장학금을 위해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생활비 마련을 위해 모델하우스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건축학과 편입을 제안하는 은호와 갈등을 빚어 서로의 꿈을 배려하려다 부딪히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영화는 청춘이 마주하는 심리적·경제적 압박과 이상적 꿈 사이의 간극을 설득력 있게 드러낸다.

◆아쉬웠던 사랑과 현실 사이의 끝맺음
결국 두 사람은 이별 후 각자의 길에서 꿈을 실현한다. 은호는 자신이 구상한 게임을 성공적으로 발매하며 창작자로서 성취를 이루고, 정원은 건축가로서 꿈꾸던 ‘내 집 마련’을 달성하며 전문적 성공을 거둔다. 10여 년 후 재회한 두 사람은 “만약 그때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다면”이라는 상상을 떠올리지만 영화는 이를 낭만적 상상이 아닌 선택과 책임, 꿈과 현실의 균형을 반영하는 사건으로 제시한다.
로맨스적 장치 측면에서 영화는 관객과 인물 사이에 일정한 거리감을 형성한다. 남자친구가 있는 상황에서 은호와의 관계를 탐색하는 정원의 행동, 은호와 하룻밤을 보낸 뒤 잠적하는 모습은 관객이 특정 인물에게 감정이입하도록 돕기보다는 제3자의 시선으로 인물들의 선택과 행동을 분석하게 만들어 아쉬움을 남긴다.

반면 고향 고흥에서 홀로 식당을 운영 중인 은호의 아버지와 은호의 관계는 그나마 감동을 준다. 취업 준비를 할 때에는 막막한 기분에 부모에게 쌀쌀맞게 대하게 되고, 취업을 한 뒤에는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압박 때문에 틱틱대며 다투기도 한다. 결국 부모에게 매사 다정하기만 할 수 없는 현실적이고 복합적인 자식들의 딜레마를 세밀하게 풀어낸다.
원작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엔딩 크레딧이다. 엔딩에서는 일반인들이 등장해 전 연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스케치북에 적어 화면에 내보인다. 이는 영화 속 두 청춘의 뜨겁지만 아팠던 연애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현실성을 부여해 마지막 순간까지 여운을 남긴다. 하지만 ‘만약에 우리’에서는 이 부분이 생략돼 몰입감이 다소 약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월 개봉한 영화는 개봉 2주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는 성과를 거두며 누적 관객 250만 명을 동원하는 예상 밖의 흥행을 기록했다. 아마도 이러한 공감대는 한때 우리 각자가 은호였고, 정원이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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