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26일 뉴스 화면 속에서 거센 흙탕물이 네팔 말레쿠 마을의 다리를 때렸다. 버티던 다리가 꺾이더니 순식간에 물속으로 사라졌다. 몇 번이고 영상을 되돌려 보았다. 그곳은 2010년, 내가 네팔의 학생들과 함께 웃고 노닐던 마을과 강이었다.
전남대 학생 30명을 인솔하여 네팔 다딩의 작은 마을 말레쿠(Malekhu)에 있는 학교에서 2주 동안 교육봉사를 했다. 방과 후엔 네팔 아이들과 트리슐리강 위의 긴 출렁다리를 건너며 사진을 찍어주고 노래도 불렀다. 비라도 한바탕 지나가면 강은 누런 흙탕물로 변해 무섭게 내리쳤다. 그때는 그저 네팔에서 만난 낯설고 강렬한 풍경이었다.
당시 네팔에서는 휴대전화도 카메라도 귀했다. 최근 내 카메라에 담았던 말레쿠 사진에 학교 이름을 해시태그로 붙여 SNS에 올렸다. 사진 속 꼬마들은 청년이 되었고, 어린 시절 사진을 거의 갖고 있지 않던 그들에게 뜻밖의 감동 선물이 되었다.
이번 네팔 참사는 내게 사망자와 피해액의 숫자로만 읽히지 않았다. 그곳에는 내가 아는 얼굴이 있고, 함께 강을 건너던 출렁다리가 있고, 연신 웃고 떠들던 교실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참사를 보며 떠오른 것은 말레쿠만이 아니었다. 2016년 어느 새벽, 에베레스트가 마주 보이는 해발 5,500미터가 넘는 칼라파타르에 올랐다. 에베레스트 위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았다. 만년설에 쏟아지는 아침 햇살은 송곳으로 찌르듯 눈이 시리게 강했고, 수증기가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손이 깨질 듯한 혹한에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도 힘들었다. 아침 햇살이 퍼지면서 눈과 얼음이 불안정해질 수 있는 위험 때문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탈출하듯 내려왔다.
그 얼음이 지금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국제통합산악개발센터(ICIMOD)에 따르면 네팔을 포함한 ‘힌두쿠시 히말라야’의 빙하 소실 속도는 2010년대 들어 이전 10년보다 65% 빨라졌다. 지금과 같이 온실가스 배출한다면 금세기 말에는 이 지역 빙하 부피의 최대 80%가 사라질 수 있다고 한다. 히말라야의 눈과 얼음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아시아의 거대한 물 저장고다. 그것이 흔들리면 홍수와 산사태, 뒤이은 물 부족과 가뭄이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이는 수력발전에 의존하는 주변 국가의 에너지·식량 공급망을 흔들어 결국 세계 경제를 위협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빙하가 무너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남미 끝자락을 여행하며 눈과 귀로 직접 경험했다. 거대한 빙하가 갈라져 바다로 떨어질 때의 소리는 얼음과 바다가 한꺼번에 울부짖는 듯했다. 장관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섬뜩한 굉음이었다.
말레쿠의 황토빛 급류, 히말라야의 만년설, 남미에서 들었던 빙하 붕괴의 굉음.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의 기억이 이번 뉴스 앞에서 하나로 이어졌다.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재난의 얼굴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불편한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이 재난의 비용은 누가 치르고 있는가.
네팔은 기후위기를 만들어온 중심 국가가 아니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에서 차지하는 몫은 극히 작다. 그럼에도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히말라야를 안고 있다는 이유로 거대한 대가를 먼저 치르고 있다. 많이 배출한 곳과 먼저 피해를 입는 곳이 다르다. 부를 누린 곳과 삶의 터전을 잃는 곳도 다르다. 이것이 기후위기가 환경문제이면서 동시에 정의의 문제인 이유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무관한가. 기후위기를 만든 책임을 몇몇 강대국이나 거대 기업에만 돌리고 우리는 피해자의 슬픔을 안타까워하는 것으로 끝낼 수 있을까. “선진국이 더 책임져야 한다”는 말 뒤에 우리 자신을 숨길 수도 없다. 우리가 누리는 값싼 물건과 빠른 배송, 넘치는 에너지와 이동의 편리함도 세계 곳곳의 생산과 운송, 자원과 탄소를 연결한 거대한 사슬 위에 놓여 있다. 우리는 그 사슬의 바깥에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이제 기후위기에 대한 우리의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탄소를 얼마나 줄일 것인가’와 함께 ‘이미 시작된 재난으로부터 사람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빙하와 강의 변화를 미리 읽고, 위험을 가장 외진 마을까지 제때 알리고, 삶의 터전을 재난으로부터 지켜낼 준비를 해야 한다. 가난한 나라들이 그 비용을 홀로 감당하게 해서도 안 된다. 기후재난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은 자선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온 위험에 대한 분담이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같은 숙제가 있다. 기후대응을 불편을 참는 캠페인 정도로 여겨서는 안 된다. 에너지 전환과 탄소 감축, 재난 예측과 방재 인프라에 쓰는 비용은 먼 미래를 위한 선행이 아니다. 앞으로 치러야 할 더 큰 재난 비용을 줄이는 필수 보험이다. 폭우와 산불, 폭염과 가뭄이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네팔 참사에서 내 마음에 가장 오래 남은 숫자는 피해 규모가 아니라 ‘14분’이다. 상류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있었고, 그것을 듣고 즉시 움직인 학교가 있었다. 그 14분이 900명이 넘는 학생들의 삶과 죽음을 갈랐다. 기후위기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거대한 구호만이 아니다. 위험을 미리 알아채는 과학, 그 정보를 끝까지 전달하는 시스템, 그리고 경고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움직이는 사회의 힘이다.
뉴스 화면 속 말레쿠의 흙탕물을 다시 바라본다. 16년 전 출렁이는 다리 위에서 함께 웃고 노래하던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되었다. 그들이 지금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든, 어린 시절 함께 건넜던 강은 여전히 그곳을 흐른다. 그러나 내가 추억으로 간직했던 그 강은 이제 다른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히말라야는 이미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가장 적게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삶의 터전을 잃는 동안, 우리는 그것을 여전히 먼 나라의 재난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물은 국경을 모르고, 기후에도 국경은 없다. 오늘 말레쿠의 무너진 다리는 어쩌면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어온 세계가 무너지는 한 장면인지도 모른다.
16년 전, 나는 아이들과 웃으며 그 강을 건넜다. 이제 그 강이 우리에게 묻는다. 히말라야의 눈물 앞에서, 과연 우리는 무관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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