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나는 이의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고들 말하는데,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삶의 기로에서, 또는 굴곡진 역사의 고비마다 심심찮게 마주하는 경험칙이다. 보내는 이에게는 존경과 존중이 배어있어야 하고 떠나는 당사자에게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 깊이와 비장함이 묻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은 별리(別離)는 감동이 없다. 지금 광주·전남은 가슴 벅찬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출범을 앞두고 리더십의 교체가 예고돼 있다. 떠나는 이와 새로 입성할 단체장에게 우리는 어떤 리더십을 기대하는지 새삼 묻게 되는 요즘이다.
행정통합이 지역의 100년 미래를 담보할 거대 프로젝트인 건 분명하지만 마냥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 못지않게 중대 기로에 서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는 혁신전략 모델이 될지, 아니면 준비 부족과 시행착오로 미완의 통합에 그칠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런 기대와 우려 속에 출범하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그 격변의 중심에는 단체장의 리더십이 자리한다.
전남광주 통합을 이끈 일등공신으로는 단연 김영록 전남도지사와 강기정 광주시장이 꼽힌다. 비록 민주당 경선에서 고배를 마셔 초대 특별시장의 자리는 멀어졌지만 그동안의 역할은 컸다. 지난해 12월28일 김 지사가 신년사를 통해 처음 화두를 던진 이후 1월2일 강 시장과 함께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광주전남 행정통합 추진을 선언한 게 시발점이었다. 지난한 과정 끝에 3월1일 행정통합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 불과 2개월. 전국 최초의 광역지자체 통합은 그렇게 이뤄졌다.
김 지사는 중앙과 지방을 아우르는 행정 경험과 재선 단체장의 관록을 살려 통합을 주도했다. 강 시장은 특유의 추진력으로 행정통합의 위기 때마다 최일선에서 산파 역할을 다했다. ‘퍼스트 펭귄’으로서 소임을 다하고 떠나게 될 단체장들의 뒷모습, 이들에 대한 평가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성패 여부에 달려있다는 점도 공교롭다. 특별시가 성공적으로 연착륙해 ‘다이나믹 전남광주’를 만든다면 김-강에 대한 평가는 뜨거울 것이다. 반면 극심한 혼란과 갈등 속에 당초 기대했던 지역균형발전의 희망이 멀어진다면 이들에게 화살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전직 단체장들에 대한 평가가 신임 단체장 하기 나름에 달렸다는 게 아이러니다.
요사이 가장 뒤숭숭한 곳은 광주시청과 전남도청일 것이다. 만나는 직원들마다 행정통합에 대한 기대와 우려들을 쏟아낸다. 통합의 뼈대가 될 행정직제는 어떻게 개편될 것인지, 주청사는 어디로 갈 것인지, 인사는?...어느 것 하나 명쾌하지 않은 불확실성 속에 공무원들의 하루하루가 숨 가쁘다. 포커스는 역시 초대 특별시장에 맞춰져 있다. 호남정치 구도상 누가 될 것인지 여부는 미뤄 짐작할 수 있으니, 과연 그의 리더십이 어떨 것인지에 관심이 더 모아진다. 그게 어디 공무원들만의 생각이겠는가. 320만 특별시민들의 간절한 염원이 초대 특별시장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
‘천년 한 뿌리’ 광주와 전남이 40년 만에 다시 하나가 되는 역사적 의미. 거기에 지역경제 위기, 산업의 위기, 소멸의 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는 낙후의 땅, 전남광주가 수도권 집중화에 맞서 희망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느냐 여부는 초대 특별시장의 양 어깨에 달려 있다. 인구 320만에 지역내총생산(GRDP) 150조원, 연간 예산 25조원 규모의 ‘슈퍼 지자체’ 수장이라, 어쩔 수가 없다.
정부가 4년간 20조원 규모의 행정통합 인센티브를 지원한다는데 특별법 어디에도 명시적으로 언급된 부분이 없다. 지방정부의 재원 활용방안이나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던져진다. 이미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중앙정부가 자치권한 이양과 재정지원에 극히 보수적으로 임했던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방교부세 비율 상향이나 국세 일부 지방세 전환, 자치구 보통교부세 직교부 등 실질적 재정분권 조항이 빠진 것이 단적인 예다. 최근 광주시와 전남도가 행정통합 준비 비용으로 정부 추경에 요구했던 576억원이 전액 삭감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행정통합을 주문하니, 마지못해 따라가긴 하지만 권한 이양에는 극히 소극적인 게 중앙정부의 현주소다. 이런 골리앗을 상대해야 할 무거운 책무가 초대 특별시장 앞에 놓여 있다.
뿐만 아니다. 통합시 주청사는 어디로 할 것인지, 지역 간 재정 배분이나 행정조직 재편, 공무원 인사통합은 어떤 틀로 갈 것인지, 대도시 쏠림현상과 농어촌 소멸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광주의 정체성은 지켜갈 수 있는 것인지 등등 풀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난제 중의 난제는 역시 주민갈등 조정이다. 본격적으로 통합특별시가 출범하면 각계각층의 이해관계 속에 불만의 목소리들이 분출할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법상 주민투표는 패스 하더라도 숙의절차만은 충분히 거쳤어야 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은 터다. 언제든지 부메랑이 돼서 통합특별시장의 갈등 조정 능력을 심판대에 오르게 할 수 있는 요소다.
정치적으로는 대통합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갈갈이 찢긴 지역정서를 하나로 모아낼 수 있는 용광로 리더십. 특히 빅텐트를 쳤던 인사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신 현실을 감안해 이들을 아우르고 활용할 수 있는 포용과 협치 전략이 절실하다. 국회의원이나 기초단체장 시절의 리더십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이른바 51% 정치로도 곤란하다. 여러 우려들이 이 지점에 모아진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 더없이 어렵겠지만 이제 통합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전략이 됐다. 우리는 큰 강을 건너왔고 앞으로 대양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 뱃머리에는 초대 통합특별시장이 우뚝 서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심장부, 전남광주 지방정부를 이끌 그의 탁월한 리더십을 기대한다. 아울러 통합의 큰 틀을 짜고 민선 8기를 마무리하는 김영록, 강기정 두 단체장에게도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 며칠 전 지리산 노고단에서 만난 끝물의 진달래처럼, 그들의 열정이 붉은 잔상으로 오래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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