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어른들 맘대로 전쟁은 안 돼요

@황광우 작가 인문연구원 동고송 상임이사 입력 2026.03.15. 15:38
황광우 작가·인문연구원 동고송 상임이사
황광우 작가·인문연구원 동고송 상임이사

애가심이다. 땀흘려 일하는 화물운전수들이 울상이다. 밤잠을 설쳐가며 일했는데 남는 게 없다. 전쟁의 유탄은 농민의 머리 위에도 떨어졌다. 3월 꽃샘추위, 떨어지는 비닐하우스의 밤 온도를 유지하려면 기름을 때야 한다. 치솟는 기름값에 농부의 가슴이 무겁다. “알루미늄 원가가 10%나 폭등해버렸어요. 어쩐다요?” 전쟁의 폭탄은 중소제조업자에게도 떨어졌다.

그런데다. 유가 급등은 “미국과 세계, 안전과 평화를 위한 아주 작은 대가이며 바보들만 다르게 생각할 것”이란다. 미국의 이란 침공이 전 세계인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데도 전쟁의 피해는 아주 작은 대가라는 발언 앞에서 모두가 할 말을 잃는다. 그래서일까?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초등학생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죽은 이 초유의 반인도적 살상행위 앞에서 모두가 침묵하고 있다. 유럽의 지성도 침묵하고, 한국의 식자들도 말이 없다.

미국이 만들어준 나라, 대한민국에서 미국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한 손엔 태극기를 들고 한 손엔 성조기를 들고 다니지 않던가? 미우나 고우나 한국이 살려면 미국을 따라가야 한다는 사대주의적 언사를 부끄럼 없이 실토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나도 그런 사람이었다. 1960년대 그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학교에서 옥수수빵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미국 때문이었다. 반장이었던 나는 양호실에 가서 강냉이빵을 타다가 급우들에게 나눠주었다.

소풍을 갔다. 소풍 길에서 우리는 파월장병을 찬미하는 노래를 불렀다. “가시는 곳 월남 땅 하늘은 멀더라도...” 그땐 그 전쟁이 약소민족을 짓밟는 침략전쟁이었음을 몰랐다. 나는 파월장병 아저씨께 꽤 많은 위문편지를 썼다.

중학교에 들어가선 어땠는가? 우리는 국어 교과서에서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문을 배웠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세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다짐하자.” 그때 배운 링컨의 명언은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우리가 가야 할 민주 국가의 원리가 되었다.

그렇게 좋아하고 그렇게 흠모하던 미국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쏟아내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좀 이상하다. “이란의 최고지도자는 우리로부터 승인받아야 할 것이며 우리의 승인을 받지 않으면 그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이란이 미국의 속국이었던가? 이런 발언은 민주주의의 나라, 미국 대통령이 할 말이 아니다. 히틀러나 이토 히로부미에게 어울리는 망언이다. 차라리 전 세계 약소민족의 정부들에게 “마가의, 마가에 의한, 마가를 위한 정부에 복종하라.”며 미국의 속내를 노골적으로 선포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착잡하였다. 지난 10일 동안 보여준 전쟁은 명분 없는 전쟁이었다. 트럼프대통령은 “핵무기 없이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5000개가 넘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한 개의 핵무기도 없는 나라에게,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나는 미국의 정치지도자라면 그래도 지성인의 교양을 소지한 분들이겠거니 생각하였다. 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읽기나 하였을까? 독립선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는 다음과 명제를 자명한 진리로 믿는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난다. 인간은 그 누구에게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창조주로부터 부여받는다.” 미국의 건국자들은 자신들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해는 이유를 이렇게 표명하였다.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인이나 이란인이나 평등하게 태어났다. 이란이 미국인의 행복권을 침해할 수 없듯이, 미국 역시 이란인의 행복권을 침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다. 이란이 미국 최고지도자의 목을 딸 수 없듯이 미국 역시 이란 최고지도자의 목을 딸 권리는 없다.

그런데 미국은 하메네이를 참수했다. 어제까지 협상하던 상대국의 최고지도자를 선전 포고도 없이 기습하여 죽였다. 그의 부인과 며느리까지 살해했다. 뿐만인가? 아무 죄가 없는 열 살짜리 손녀 손자들에게 토마호크 폭격을 가했다. 피로 얼룩진 책가방과 주검이 즐비하였다.

도둑놈이 되레 주인에게 몽둥이를 들고 설치는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을 가리켜 우리는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유분수지’라는 말을 한다. 170명의 어린 소녀들, 피어나지도 못한 꽃잎을 군홧발로 짓밟은 미국 대통령이 딱 그격이다. 한마디 애도의 발언도 없다. 사죄는커녕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는 쪽은 이란뿐이며, 그것은 이란의 소행”이라고 시치미를 뚝 떼었다. 그 순간 나의 뇌에서는 수천 명의 시민들을 살상하고서도 책임은 ‘광주의 폭도들’에게 있다며 학살의 책임을 광주 시민들에게 전가했던 전두환이 떠올랐다.

2026년 3월 10일, 광주 금남로 민주광장엔 행동하는 미술인들이 모였다. 미술인들은 각자의 손에 그림을 들고 민주광장을 돌았다.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고교생 문재학과 안종철의 혼이 내려다보고 있을 그 광장에서 미술인들은 “전쟁 반대, 평화 수호”를 외쳤다. 이스라엘 소녀와 이란 소녀가 함께 어깨를 겯고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작품이 슬프게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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