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힘든 한 해를 보낸 이들에게

@이욱연 서강대 인문대학장 입력 2025.12.28. 13:44
이욱연 서강대 인문대학장
이욱연 서강대 인문대학장

오래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건데, 시간이 지나도 늘 마음에 두고 새겨보는 이야기가 있다. 제주에 있는 어느 미용실 이야기다. 이 미용실은 수요일이면 아침과 저녁에 두 번 문을 연다. 하루 영업을 마감하고 저녁에 다시 문을 여는 것이다. 수요일 저녁에 특별한 손님만 받기 위해서다. 몸이 불편한 아이들이 그 특별한 손님이다. 몸이 불편한 아이를 데리고 머리를 자르러 갈 때마다 부모가 느끼는 불편한 마음을 생각해서란다. 덕분에 장애아를 둔 부모의 시름 하나가 줄었다. 다른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도 아이 머리를 단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제주 어느 미용실 사장님의 이런 따뜻한 마음은 어디서 나왔을까? 제주 그 미용실 주인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이도 몸이 불편한데, 그 아이가 생기고 나서 그런 부모 마음 알겠더라고.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게 보이더라." 확실히 같은 어려운 일을 겪은 사람으로서 느끼는 동병상련의 마음은 공감을 바탕으로 사람을 서로 연결하고, 사랑의 온도를 올린다.

하지만 인간이 이렇게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는 건 동병상련을 넘어 인간 본성 때문이라는 보는 견해도 있다. 중국 사상가 맹자의 생각이 그렇다. 맹자는 동병상련의 경험이 없어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이 겪는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을 타고난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보고 손을 내미는 마음을 인간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거다. 인간 누구나 가진 짠하게 여기는 마음, 즉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바로 인(仁)이라고 말한다. 맹자 생각에 따르면, 우리가 다른 사람이 겪는 아픔에 공감하는 건 동병상련의 경험이 있어야만 가능한 게 아니다. 우리가 원래 사람이어서 그렇다. 그래서 맹자는 측은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측은지심이 인의 출발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를 보면 맹자의 이런 말은 공허하다. 사람은 누구나 짠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사람의 본성이라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힘없고 돈 없고 권력 없는 사람에게 보내는 짠한 마음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맹자 말대로라면 지금 우리 사회는 갈수록 측은지심이 없는, 사람의 본성을 잃은 사람이 아닌 사람들 세상이 되고 있다.

사실, 맹자가 말한 것처럼 사람이 짠하게 여기는 마음을 원래 지니고 있다고 해도, 아무에게서나 그런 마음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건 아니다. 제주 어느 미용실 사장님의 경우만 해도, 원래 그분 마음에 짠하게 여기는 마음이 본성으로 있었지만,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계기가 된 건 자기 아이 몸이 불편하면서다. 그걸 계기로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게 보이게 된 거다. 잠들어 있던 짠하게 여기는 어진 본성이 깨어난 거다. 하늘이 그에게 몸이 불편한 아이를 내리면서 그의 어진 본성이 깨어났고, 그 어진 본성이 깨어나서 그의 주위를 따뜻한 인간의 온도로 덥혔다.

추운 연말이다. 올 한 해가 어떤 사람에게는 행운과 축복의 한해였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아프고 힘들고, 세상이 더없이 원망스러운 한 해였을 수 있다.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이 겨울 날씨보다 더 추울 수 있다. 나보다 더 나쁜 사람도 건강하게 잘 사는데, 왜 착한 나나 내 가족에게 이런 큰 병이나 불행을 내리느냐고 하늘을 원망할 수도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아마 제주 어느 미용실의 부모도 한때 이런 원망을 가졌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원망은 결국 나나 내 아이와 같은 불편함을 지닌 이들을 발견하는 새로운 눈과 마음을 낳는 고귀한 씨앗으로 승화되었다. 이를 통해 그 자신도 새로운 사람이 되었고, 그의 주위에도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맹자는 하늘이 사람에게 큰 임무를 맡기려 할 때에는 늘 먼저 그 사람의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몸을 힘들게 하며 배고프게 한다고 했다. 맹자의 이 말은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마주치는 고난이나 불행은 미래 큰 삶을 위한 씨앗이자 동력이 된다는 위로와 격려이다. 맹자 생각에 따르면 예기치 못한 고난이 닥치는 순간이란 내가 미처 느끼지 못하지만 내 안에 잠재된 고귀한 힘을 느끼고, 그 힘을 더욱 단련시키는 순간이다. 그 단련을 통해서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라 새로운 나로, 과거보다 한층 더 고양된 나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새로 태어나면서 내 주변의 세상도 더욱 밝아진다.

올 한 해, 한국인으로 사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넉넉히 실감했다. 위기에 놓인 민주주의는 겨우 구했다. 하지만 서민의 삶은 여전히 힘들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아서, 힘없고 돈 없는 사람에게, 서울보다는 지방에, 기성세대보다는 청년에게 더 가혹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삶의 고난을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내 안에 잠재된 고귀함을 발견하여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으로 만들 계기로 삼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한 해를 보내면서, 직장을 찾지 못했거나 직장을 잃은 이들, 몸과 마음이 몹시 아팠던 이들, 모든 힘든 한 해를 보낸 분들에게 용기와 축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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