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자는 논어에서 "선생님의 근심은 무엇입니까"라는 제자의 물음에 대해, "덕이 닦아지지 않음, 학문이 밝아지지 못함, 의를 듣고도 실천으로 옮기지 못함, 착하지 못한 일을 고치지 못함, 이런 게 바로 나의 근심이라"라고 답했다. 다산은 유배생활 12째에 접어든 1813년에 저술한 논어고금주라는 책에서 공자의 근심이야말로 '참근심'이며, 보통 사람들의 가난 걱정과 배고픈 걱정 그리고 추위 걱정 등은 '한가로운 걱정'이라고 경계하였다.
그렇다면 다산의 '참근심'은 무엇이었을까? 다산은 강진 귀양살이 시절 온갖 근심에 싸여 지내며 우래(憂來)라는 12장의 시를 읊었는데 그 한 구절 가운데, "젊은 시절엔 성인이 되고 펐는데, 중년에야 현자라도 바랐네. 노년이 되어서는 바보라도 달게 여기니, 그런 걱정에 잠도 못 이루네"라면서, 그의 '참근심'을 드러내었다. 젊은 시절부터 꿈도 크고 큰 일을 이루고 싶었던 다산은 기필코 성인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상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다산은 뜻하지 않은 유배살이를 겪게 되었는데, 그는 이러한 불우한 처지에 좌절하지 않고 여전히 '현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希賢有路]'라고 믿으면서 심신을 수양하고 학문과 덕을 닦으며 불철주야 독서와 저술 작업에 생을 걸었다.
다산은 귀양길에 올라 둘째 아들 학유(學遊)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밤낮으로 빌고 원하는 것은 오직 열심히 독서하는 일뿐이다. 네가 능히 선비의 마음씨를 갖게 된다면야 내가 다시 무슨 한이 있겠느냐?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책을 읽어 이 아비의 간절한 소망을 저버리지 말아다오"라고 당부하였다. 그리고 "근본을 두텁게 배양하기만 하고, 얄팍한 자기 자식은 마음속 깊이 감추어두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라고 강조하였다. 그는 "천리(天理)는 돌고 도는 것이니 한번 넘어졌다고 반드시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하루아침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서둘러 먼 시골로 이사하여버린다면 무식하고 천한 백성으로 일생을 끝마치고 말 뿐이다"라면서 독서가 오늘의 난국을 타개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었다. 특히 그는 "내가 저술에 마음을 두고 있음은 당장의 근심을 잊고자 해서만이 아니다. 사람의 아버지나 형이 되어 귀양살이하는 지경에 이르러서 저술이라도 남겨 나의 허물을 벗고자 하는 것이니, 어찌 그 뜻이 깊다고 하지 않겠느냐?"라면서 자신이 처한 처지에서 독서와 저술만이 후일의 평가를 기약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다산은 자식들에게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것 한 가지밖에 없다"라는 가훈을 남겼다. 구체적으로 그는 "독서라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깨끗한 일일 뿐만 아니라, 호사스러운 집안 자제들에게만 그 맛을 알도록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촌구석 수재들이 그 심오함을 넘겨다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드시 벼슬하는 집안의 자제로서 어려서부터 듣고 본 바도 있는 데다 중간에 재난을 만난 너희들 같은 젊은이들만이 진정한 독서를 하기에 가장 좋은 것이다. 그들이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뜻도 의미도 모르면서 그냥 책만 읽는다고 해서 독서를 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면서 독서의 중요성을 설파하였다. 그는 또한 "의원이 삼대를 계속해오지 않았으면 그가 주는 약을 먹지 않는 것같이 반드시 몇 대를 내려가면서 글을 하는 집안이라야 문장을 할 수 있는 것이다"라면서 대를 물려 집안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독서뿐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였다.
다산은 독서의 전제로써 "독서를 하려면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컬음인가.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를 할 수 없으며, 학문에 뜻을 둔다고 했을 때는 반드시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컬음인가. 오직 효제(孝悌)가 그것이다. 반드시 먼저 효제를 힘써 실천함으로써 근본을 확립해야 하고, 근본이 확립되고 나면 학문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들고 넉넉해진다. 학문이 이미 몸에 배어들고 넉넉해지면 특별히 순서에 따른 독서의 단계를 마련하지 않아도 괜찮다"라면서 '근본(根本)'과 '효제'를 중시하였다. 그는 자식들에게 "나는 천지간에 의지할 곳 없이 외롭게 서 있는지라 마음붙여 살아갈 것이라고는 글과 붓이 있을 뿐이다. 너희들이 독서하는 것이 내 목숨을 살려주는 것이다"라는 사실을 들어 독서에 매진할 것을 간곡히 당부하였다.
이처럼 다산은 그의 자식과 제자들에게 끝없이 독서의 중요성과 방법론을 강조하였는데, "내가 몇 년 전부터 독서에 대하여 깨달은 바가 큰데 마구잡이로 그냥 읽어내리기만 한다면, 하루에 백번 천번을 읽어도 읽지 않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라고 한 데에서 그 뜻을 함축할 수 있다. 그리고 "무릇 독서하는 도중에 의미를 모르는 글자를 만나면 그때마다 널리 고찰하고 세밀하게 연구하여 그 근본 뿌리를 파헤쳐 글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격(格)이라는 뜻은 맨 밑까지 완전히 다 알아낸다는 뜻이니, 밑바닥까지 알아내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너희들은 천천히 연구하며 긍지를 지니는 마음가짐에 힘써, 큰 산이 우뚝 솟은 듯 고요히 앉는 법을 습관 들이고 남과 사귀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먼저 기상을 점검하여 자기가 해야 할 본령이 확고하게 섰다는 것을 깨달은 뒤에야 점차로 저술에 임하는 마음을 먹도록 해라"고 궁구(窮究)의 정신을 당부하였다.
다산 정약용은 당대를 풍미한 지배엘리트로서 천하의 명군주 정조와 함께 국정을 논하다가 졸지에 '천주쟁이' 반국가사범으로 몰려 서울에서 수백 리 떨어진 시골 벽지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그의 집안은 소위 '폐족(廢族)'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참으로 견디기 힘든 모멸감과 상실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한탄과 비애로 살아갔을 터인데, 그는 진정 독서인이자 선비다운 기백과 용기로 자존을 지켜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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