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어 달 전에 라디오에서 '소금' 얘기를 들었다. 귀에 착 감기는 얘기였다. KBS 클래식 채널, 오후 6시 '전기영의 세상의 모든 음악'. 진행자의 목소리는 솜사탕처럼 달콤하다. 솜사탕이 매번 맛있는 것은 아니지만, 당 떨어질 때 당기는 당(糖)처럼 좀 나른하고 피곤할 때 좋다. 한여름의 솜사탕보다는 이런 깊어가는 가을날, 어느덧 좀 쓸쓸하여 타인의 온기가 그리울 때, 말하자면 감성의 당이 좀 떨어질 때 달착지근한 것이 당기는 법이다. 배경음악으로 재즈가 흐른다. 재즈는 '귀로 마시는 술'이라 하더니, 당이 좀 채워지자 이어지는 것이 술, 그러니까 재즈는 '귀밝이술'쯤 되겠다. 그 속에서 그가 들려주는 '소금' 이야기는 달콤하였다가, 흥겨웠다가, 짭짤했다.
소금이 온다! 너른 갯가에 네모로 반듯하게 밭을 일구어, 바닷물을 가두고 기다린다. 햇살과 바람이 다녀가고, 볕 좋은 여러 날이 지나간다. 물이 마르면서 희끗희끗 드러나는 결정체, 그 순간을 염전 사람들은 '소금이 온다!'라고 한다.
'소금의 맛을 결정하는 건 소금에 섞여 있는 3%의 불순물이라는 거, 알고 계셨나요? 97%의 염화나트륨이 아니라 3%의 불순물. 그러니까 바다의 풍미를 담은 약간의 마그네슘과 짠맛을 둥글게 완화해주는 약간의 칼슘, 쌉싸름한 맛을 내는 칼륨과 흙냄새, 바다 냄새를 복합적으로 품은 미량의 유기물이 소금의 맛을 좌우하는 거라고 합니다. 소금의 세계에서 '불순물'은, 불온하게 섞인 먼지가 아니라 맛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되는 거죠.'
그것을 '소금의 떼루아(terroir)', '소금의 지역성'이라 한다. 떼루아는 지역별로 자연환경에 따라 생산물의 풍미가 다른 것을 뜻한다. 소금뿐 아니라, 와인 브랜디 커피 치즈 시가 등을 생산할 때의 지역성, 예컨대 와인의 경우 '보르도' '부르고뉴'라고 앞에 붙는 것이 '떼루아'다. 소금은 '바다 소금' '사막 소금' '바위 소금' 등이 있기는 하지만 태평양 것이나, 우유니 사막 것이나, 히말라야 소금이나, 짜기는 매일반이니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싶었는데 그것은 무미건조한 생각이었다.
이어지는 달콤한 목소리. '불순물이라는 불순한 존재가 이렇게 멋진 것이었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불순물이란 없어야 하는 것도, 없애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 세상의 미묘한 맛을 알려주고, 세상이 이런 것들로 이루어졌다는 걸 보여주는 증명서 같기도 하죠.
생각해 보면 우리 삶에도 불순물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것들이 있습니다. 교실 밖에서 배운 것, 어른들이 금지했던 것, 우연히 마주친 것들, 발바닥의 티눈이나 손가락의 굳은살이 때론 우리의 삶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처럼'
그즈음, 넷플릭스에서 볼만한 영화를 뒤지는데 '부야 함카'라는 전기영화가 나온다. '부야 함카'(1908~1981), 이슬람 학자이자 작가며 '민중의 나침반'이라는 신문사를 운영했던 언론인, 정치인으로 인도네시아의 저명한 인물이다. 영화는 1964년 수카부미 교도소에서 시작한다. 정부 전복 혐의로 수감 중인 함카를 부인과 세 아들이 면회하는 장면.
부인이 "당신 먹이려고 생선찌개를 끓여 왔어요"라면서 냄비를 내민다.
함카, 냄새를 맡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말한다. "눈물은 이런 법이지.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이렇게 나온다니까"
아내가 "찌개가 이미 짠데 당신 눈물 때문에 더 짜지겠어요" 한다.
함카, "눈물이 짠 건 인생의 소금이라서 그래. 하지만 그게 없으면 인생의 맛이 없지"라고 한다.
아내가 "얼른 드세요. 요리하면서 흘린 땀으로 찌개가 이미 짭짤해요."라고 하자, 함카 "인샬라(신의 뜻대로)"하고 합장하더니, 한 손으로는 눈물을 훔치고, 한 숟가락 떠서 입으로 가져간다. 아내의 땀, 남편의 눈물이 다 소금이다.
지나가는 길에 귀에 솔깃한 소금 이야기 두 편이 소금이 오듯, 온다. 소금의 맛은 '떼루아', 3%의 불순물이 좌우하는 것이며, 눈물은 인생의 소금이고 그것이 없으면 인생의 맛이 없다는 말, 입에 붙어 떠나지 않는다.
이른 아침 산길에 소금 이야기를 곱씹어 보다가, 광주에 다다른다. 광주가 '떼루아'로구나, 민주주의라는 소금의 '떼루아'. 수많은 나라들이 그들의 방식대로 민주주의를 쟁취하여 그것은 그들의 '떼루아'가 되었듯이, 이 땅 민주화의 독특한 지역성, 그 3%의 불순물은 무엇인가? 일제강점기와 군부독재 아래, 정의가 무너지고 일상이 파괴될 때, 들고 일어나서 끝내 굴복하지 않는 저항성, 그것이 광주라는 '떼루아', 이 땅 민주주의의 눈물이며, 민주주의라는 소금의 불순물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그러고 보면 '떼루아'는 광주 사람들의 일상이었다. 이 불순하고 불온한 '정신' 속에서 여태 살아왔으니, 동학이 그렇고, 독립이 그렇고, 5월이 그러하다.
소금에서 광주까지 멀리 갔다. 산길을 걷다가 생각이 거기까지 나간 것은, 아마도 내란 뒤끝이라 더 그러지 않았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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