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을 칭하는 용어 가운데 '명조(鳴碉)' 또는 '선우월(蟬羽月)'이라는 말이 있다. 모두 '매미가 우는 계절'을 가리킨다. 옛 사람들도 무더위를 매미 울음소리와 함께 보냈음을 뜻한다.
매미는 알로 태어나서 땅속에서 유충으로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지내다가 지상으로 올라와 성충이 된다. 성충은 수명이 매우 짧아 열흘에서 이십일 남짓이다. 수컷 매미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단 한번의 짝짓기를 위해 밤낮으로 암컷을 찾아 부르짖는다.
우리들은 매미의 '존재론적 비애'와 무관하게 그 울음소리를 그저 한여름의 향연쯤으로 알고 있으니, 매미에게는 모진 감각의 기억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안도현은 '사랑'이라는 시에서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매미는 아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우는 것이다."라고 노래했는지도 모르겠다.
여름은 우리들에게 매미소리 말고도 많은 소리를 들려준다. 풀벌레소리, 새소리, 빗소리, 계곡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 햇볕 내리쬐는 소리, 노랫소리, 이야기소리, 웃음소리 등등. 가히 여름은 '소리의 계절'임에 틀림없다. 그래서일까, 여름이 되어서야 우리 몸에 귀를 통해 듣는 감각이 있다는 것을 시시각각으로 깨닫게 된다. 시인 김종길도 '또 한여름'에서 "소나기 멎자 매미소리 젖은 뜰을 다시 적신다. 비 오다 멎고, 매미소리 그쳤다 다시 일고, 또 한여름 이랗게 지나가는가? 소나기소리, 매미소리에 아직은 성한 귀 기울이며, 또 한여름 이렇게 지나보내는가?"라면서 '소리의 여름'을 노래했다.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가 절기의 무상함 앞에 잠시 주춤해졌지만, 여전히 창밖의 청량한 매미소리로 미루어 아직도 여름은 끝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이처럼 여름이 되면 귀가 열리듯이 우리는 봄철에 눈이 뜨인 것을 체험했으니, 그 감각의 독점욕이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다. 잔설(殘雪)에 눈부신 산기슭 여기저기 매화꽃과 산수유꽃이 만발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비로소 눈을 떠서 개나리꽃, 벚꽃, 진달래꽃, 배꽃, 사과꽃, 복숭아꽃 등등 온갖 꽃의 화사함에 반해 지극한 염양지절(艶陽之節)의 설렘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린" 어느 5월, 보랏빛 오동나무꽃들이 주절이 내리앉는 그날까지 꽃들의 향기를 맡으며 코의 존재를 알게 된다. 진하디 진한 아카시아꽃향과 밤꽃향이 온 동네를 수군덕거리게 만드는 여름 문턱에 닿은 그때까지 우리들의 감각기관은 눈과 코가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찬란한 슬픔의 봄'을 보내는 동안 우리들의 눈과 코를 살아있게 만든 그 많은 꽃나무들은 과연 어디에 서 있었단 말인가. 신기하게도, 그들이 예전부터 거기에 서 있었는지 누구 한 사람 알지 못하는 게 우리의 일상이다. 그리하여 "나무는 꽃을 보아 알 수 있을 뿐이다"고 했던가.
지난봄에 눈 내리듯 흩날리던 벚나무가 서 있던 그 자리를 어느 날 갑자기 선홍빛 백일홍이 대신 차지하는 마술 같은 일도 인간의 미망(迷妄)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머지않아 눈도 감고 코도 막고 귀도 닫고 마음만 열어야 하는 가을과 만날 것이다. 소쇄(瀟灑)한 바람이 스쳐 지나가고 '돌멩이를 던지면 쨍하고 깨질 듯한' 하늘이 나타나는, 바로 그날! 벼익고 물고기 살찌는 '도숙어비(稻熟魚肥)의 계절', 오곡백과 넘실대는 들판 앞에서 드디어 수확의 고마움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들의 마음은 활짝 열리고 만다.
이때가 되면, 하(夏)나라 백성들이 겪었을 지독한 가뭄에 지쳐 하늘을 향해 "확 구멍이라도 뚫어졌으면 좋겠다"라고 원망하다가, 한참이나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응답하듯이 쏟아지는 큰비 앞에 이제는 제발 멈춰달라고 사정하는 우리 조상님들의 다급함과 처절함도 일순간에 사라져버린다. 그들은 원망 대신, 온 세상을 얻은 듯한 풍요 속에서 둘째 딸 혼사를 꿈꿨으며, 혹은 이번에는 아랫배미 논 두어 마지기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소망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가을은 이처럼 속절없이 우리들의 마음을 열어버린다. 이제 우리 몸에 더는 열어놓을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이내 낙엽이 지고 그 넓은 들판에 오로지 감 두서너 개만 남게 되는 그날이 지나고, 찬 바람 불고 눈이 내리면 그렇게 활짝 열렸던 우리들의 눈과 코 그리고 귀와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순간에 닫혀버린다.
고개를 쳐들지도 못하고, 마스크 하나로 입과 코를 가리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엄동설한은 숨구멍 하나까지 다 닫아버린다. 이에 우리는 겨울을 물종(物終), 폐장(閉藏)이라 부르나 보다.
이처럼 꽃이 피고 꽃이 지고, 비내리고 눈내리는 일이 수 만 년에 걸친 자연의 일상사인데, 인간은 꽃잎 한 장에 일희일비하고 있으니, 우리의 삶이 아무리 확연(確然)한 호연지기(浩然之氣)에 닿는다고 하더라도 자연 앞에서는 한갓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간단한 이치를 깨닫기 어려운 모양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입추를 지나 처서를 거쳐 백로를 앞둔 9월 첫날, 속절없는 절기의 흐름 앞에 애써 각자의 삶 속에서 의연한 깨달음 하나 터득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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