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성대(南星臺)라는 이름을 아는 광주시민은 많지 않다. 바로 광주 광산구 신촌동 공군기지의 별칭이다. 대한민국 공군은 바로 이곳에서 창설되었다. 1949년 10월 1일 20대의 L19 경비행기로 공군 제1전투비행단이 발족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남쪽하늘의 별이 되라는 뜻으로 남성대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눈물겹다. 일제하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우리의 선배들중 도산 안창호는 공군의 필요성을 최초로 설파했다. "비행기를 사용하여 국내 민심을 격발하고 장래 일본에 대폭발을 일으키기 위함"이 도산의 주장이었다. 도산은 항일자제들을 중국 광동, 운남의 비행학교에 보내 교육받게 했다. 1920년엔 미 캘리포니아 북부 윌로우스에 한인 비행학교가 설립되었다. 재미 농장주 김종림이 돈을 댔다. 조선청년들은 "도쿄로 날아가서 쑥대밭을 만들자"며 피나게 훈련했다. 파일럿 42명이 배출되었다. 이들은 중일전쟁중 중국군 육군 항공대에 배속되어 출격했다. 미국 OSS와 합동으로 국내진공을 도모하던중 일본이 항복을 해버렸다.
공격대상을 잃은 파일럿들은 1945년 8월 18일 미군에게 얻은 C46 수송기를 몰고 중국 서안을 출발, 여의도 공항에 착륙했다. 아직 철수하지 않은 일본군과 일촉즉발 대치했으나 이들 '공군의 아버지'들은 기세등등했다.
이들은 해방의 혼란속에서도 공군의 초석을 놓았다. 1949년 육군항공사관학교를 만들었고 10월엔 마침내 공군본부를 창설했다. B26폭격기 1대, 일본육군이 두고 간 하야부사 전투기와
하야테 전투기 10여대가 당시의 전체 전투력이었으나 그나마도 미국은 이승만의 북진을 우려해 모두 파괴해버렸다. 최용덕, 김정렬, 박범집등 공군의 아버지들은 필사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 경비행기를 구입해 전투 파일럿을 양성하려 했다. 광주 제1전비(第1戰飛), 남성대는 그렇게 탄생했다. 1전비의 모토는 'First and Best'다. 공군의 모태라는 자부심이 읽힌다.
공군은 오산기지를 중심으로 광주의 1전비, 수원의 10전비, 대구의 11전비등 10곳의 전투비행단과 군산의 한미합동 비행전대를 가동한다. 모두 한반도와 북태평양 유사시 작전개념에 입각해 설치된 공군기지들이다.
그런데 이중 광주와 수원 대구의 공군기지는 도시팽창과 함께 인구밀집지가 되어버렸다. 대략 2007년부터 본격화된 군사비행장 이전 요구는 점차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무엇보다 이륙소음이 문제였다. 특별법 입법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던 노력이 줄기차게 이어졌다. 법안은 수차례 폐기되는 우여곡절을 겪다가 19대 국회 제1호 법안으로 상정되어 2013년 통과된다. '군 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그것이다.(군공항이란 단어는 틀렸다. 공항은 민간이 사용하는 곳이고 군용기가 쓰는 곳은 군사비행장, 크게는 공군기지다)
그러나 이 법은 한 국가의 군사비행장 입지를 결정하는 법 치고는 무력하다. 국방부가 마지못해 동의한 법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군사비행장을 다른 곳으로 옮겨주기를 원하는 지역의 단체장이 새 부지를 물색하여 국방부장관에게 건의하면, 장관은 새 부지가 있는 지자체의 장에게 통보를 하고 그 단체장은 주민투표를 거쳐 결과가 찬성으로 나오면 국방부장관에게 공군비행장 유치신청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의 공군기지가 이런 방식으로 재배치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인구밀집지에서의 이착륙은 조종사들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실제로 아찔한 전투기 추락사고들이 있었다. 공군은 또 주민들에게 매년 거액의 이륙소음 보상금을 지불하고 있다. 한반도 유사시, 혹은 동아시아 정세 급변시 적국에 의한 공군기지의 미사일피격 가능성에 대해 민간 피해를 최소화해야하는 문제도 있다. 공군이 주민 민원 때문에 멀쩡한 기지를 옮긴다고만 생각해선 안되는 이유들이다.
나는 광주 제1전비의 이전 문제가 지역의 난제가 되어 수년간 에너지를 낭비하고있는 지금의 현실이 넌센스라고 여겨진다. 공군은 2008년 '광주기지이전 타당성 및 민원해결방안 검토용역'을 통해 무안공항 주변이 최적지라는 결론을 이미 내린지 오래다. 보고서를 입수해보지는 못했으되, 필경 한반도 방어전략과 동북아 워게임을 통해 가장 군사적으로 유리한 지점을 골랐으리라 믿을 수밖에 없다. 무안군 망운면과 현경면 일대는 연간 안개일수 16일, 그것도 시간으로 따지면 불과 107시간만 안개가 끼는 비행장건설 최적지다. 이착륙 지장물도 없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이 이미 이곳에 비행장을 지었다. 지금도 망운 들판엔 대나무를 골조로 한 일본 전투기 격납고들이 남아있다.
불행히도 우리는 안보를 들먹이면 군사독재가 연상되는 현대사를 갖고 있다. 그렇다고하여 21세기 한반도 서남부의 전략군사비행장 입지를 결정하는 공군이 안보를 주머니에 감춰둔 채 국민들로부터 욕을 안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뒤로 빠져있는 모습은 한심하다.
다행히 광주 타운홀 미팅 이후 대통령이 나서는 바람에 광주 1전비 이전사업은 이제야 국가가 패를 잡은 모양을 갖췄다. 지난 수십년간의 논쟁, 핑퐁만 치던 역대 광주시장과 전남지사, 국회의원 선거에 이를 써먹고 빠져버린 정치인들이 너무도 밉다.
마침내 이달중 6자 TF 첫 회의가 열린다고 한다. 공참총장은 국방부장관에게 확실히 요구하라. 한반도 서남부 항공방어 기지의 최적지는 무안군 망운면 해안이라고. 그리고 안보문제를 놓고 주민투표로 찬반을 묻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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