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은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이 남다르고 의무 교육이 촘촘히 짜여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세종대왕께서 발명하신 '한글'의 독보적 우수성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단순히 '글을 읽을 줄 아는 것'과 '그 내용을 이해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문해력'이다.
OECD는 만 16~65세 성인들에 대해서 언어능력, 수리력 및 문제 해결 능력을 측정하는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를 실시하고 있다. PIAAC의 특징은 동일 집단에 대해 10년 간격으로 조사를 반복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2012년 조사에서 25~34세였던 집단이 2022년에는 35~44세가 되는데 이 집단의 역량이 10년 사이에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조사하는 방식이다. 조사 결과, 우리나라는 문해력의 경우 500점 만점에서 249점으로 OECD 평균 260점보다 11점 낮게 나타났다. 게다가 학생들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성인들은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10년 사이에 20점 이상 점수가 하락하면서 수준이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한 국가로 분류됐다.
2021년 6월, 스탠포드 대학은 소셜 미디어에서 공유되는 정보의 타당성, 불공정성을 얼마나 잘 판단하는지 학부생들의 온라인 추론 능력을 조사했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타당성이나 공정성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고 발표했다. 디지털 원주민이라 불리는 MZ세대,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학생들이 모인다는 명문대학의 신입생이 디지털 기술에는 익숙하지만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예절이나 디지털 정보 평가 능력, 디지털 권리와 책임감 등 디지털 리터러시 역량은 부족하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더 처참하다. 2018년 OECD 조사에 의하면 사실과 의견을 식별할 줄 아는 능력, 이를 위해 정보의 주관성과 편향성에 대해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비율에서 우리나라는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는 이미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와 있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공지능에 선별적으로 제시하는 소식을 듣고, 인공지능이 권하는 길을 선택하고, 인공지능이 제어하는 도시에서 살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선민이 되기 위해 필요한 기본 덕목은 디지털 문해력과 AI 문해력이다. 디지털 문해력은 단순히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잘 활용하는 기능적인 능력이 아니다. 정보를 평가하고, 논쟁하며, 기존의 정보에서 문맥을 읽어내고 서로 연결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 능력이 필요하다. 온라인 공간을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본 소양과 온라인 상에서 상대를 배려하고 협력할 줄 아는 태도와 능력 또한 필요하다. 잘못된 정보와 개인의 의견, 편견으로부터 가치있는 정보를 골라내는 것도 디지털 문해력의 필수 조건이다. 현대인의 쉽게 빠지기 쉬운 4가지 인지적 편향성은 디지털 상에서는 알고리즘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사람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 온 디지털 세상에 인공지능이 더욱 큰 영향력과 지배력을 가지면서 AI 문해력이 현대 시민의 필수적 소양이 되고 있다. 디지털 문해력과 마찬가지로 AI 문해력은 단순한 AI 활용 능력이 아니라, AI가 제시하는 의견에 대한 비판, 평가, 식별 능력이 포함되며 AI를 활용한 결과물의 윤리적 사용, 결과의 차별화 능력, AI를 활용한 협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주를 포함한다. 학습 데이터의 편향에서 초래되는 AI의 인지적 편향 역시 AI 문해력을 갖추어야만 극복할 수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 대비하여 전국민 AI 교육 확산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AI교육 교사연구회, SW선도학교 등의 사업도 그 일환이라 할 수 있으며, SW 교육과정은 물론,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인공지능 수학' 과목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내용을 보면, '인공지능'을 만들거나 다루는 데 필요한 기술적인 내용에 지나치게 몰입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공지능을 '만들'거나 '다루'기 보다는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일 터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코딩능력이나 수학 능력보다 디지털 문해력이고 나아가 AI 문해력이다. 정규 교육과정에서는 물론, 이미 교육과정을 수료한 이들에게도 디지털 문해력과 AI 문해력에 대한 재교육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교육 전문가들의 연구가 바탕이 되어 실효성 있는 교육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전 국민에게 어떻게 전달하여야 할지에 대한 방법론에 대한 고민도 시급한 과제로 진행될 수 있기를 바란다.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기에도 벅차던 사람들에게 이제는 인공지능이라는 더 큰 장벽이 나타났다. 이 장벽을 통과하는 사람에게는 낙원같은 일상이 펼쳐질 테지만, 이 장벽을 포기하는 사람들은 더욱 뒤처지게 될 것이다. 디지털 디바이드를 넘어 AI 디바이드가 사람들을 갈라놓게 되는 것이다. 훌륭한 리더는 '누구도 뒤에 남겨 놓지 않는다'고 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AI 리터러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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