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처구니없이 시작된 계엄의 시간이 이제 끝난다. 탄핵 이후, 끝없이 되살아나는 내란의 잔불 앞에서, 그리고 사상 무정부 상태에서 잘 버텼다. 한국 민주주의를 소생시킨 건 오직 민주 시민 덕분이다. 특히 오월 광주의 비극을 기억하면서 역사가 뒷걸음치는 걸 막은 이들의 공이 크다. 긴 내란의 시간에 수많은 국민이 속병과 심리 질환을 앓을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낀 시간이었다. 권력자와 기득권자들이 나라를 위기에 몰아넣을 때마다 민중의 질긴 힘으로 위기를 극복해 온 한국의 저력을 다시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이제 이틀 뒤면, 멈춘 민주주의 시계가 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런데 한국 민주주의는 이렇게 회복되겠지만,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한 위기는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오늘 대한민국 앞에 놓인 내우외환의 위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어느 정권도 쉽게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다. 새 정부에 장밋빛 기대를 걸기보다는 지금 한국이 맞은 심각한 위기를 냉정하게 직시하면서 국가 위기 극복에 마음을 모을 때다.
지금 한국이 직면한 위기가 왜 심각한가. 우리 역사에서 예전에 겪은 적 있는 그런 위기를 맞고 있어서다. 역사적 기시감 때문이다. 우리 역사를 돌이켜 보면, 우리는 동아시아에 신흥 강자가 등장하면서 국제질서가 흔들릴 때 위기를 맞았다. 심지어 나라를 잃기도 했다. 몽골이 동아시아 신흥 강자로 부상하던 때, 고려는 완전히 몽골에 점령당했다. 임진왜란 때는 동아시아 신흥 강자로 부상한 왜 나라가 조선을 짓밟았다. 병자호란 때는 여진족 정권인 금나라가 청나라를 세우고 조선에 병자호란의 치욕을 안겼다. 근대 초기에는 일본이 강자로 다시 부상하여 조선은 일본 식민지가 되었다.
다시 그런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동안 한국에 안전판 역할을 해주던 미국이 흔들린다. 오직 미국 국가 이익만을 챙기면서 동맹국조차 압박한다. 중국은 빠르게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 국제질서가, 특히 동아시아 질서가 흔들리고 있고, 미국과 중국이 끝없이 대립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패권을 절대 쉽게 중국에 내주지 않을 것이고, 중국도 미국 압박에 쉽게 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미중 대립 앞으로 최소 50년은 간다. 이런 미중 대립 시대에, 한국은 세계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그 위험 한가운데 놓여 있다.
국제질서 변화와 미중 대립이라는 외환만 있는 게 아니다. 나라 안의 걱정거리, 즉 내우도 심각하다. 경제 성장률은 주저앉았고, 인구는 빠르게 감소하고, 청년은 취업이 막히고, 자영업자는 가게 문을 닫고 있다. 첨단 산업은 중국에 추월당하고, 미국이 관세 장벽을 높게 치면서, 국민 배를 채울 먹거리가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처한 이런 내우외환으로 과거 고려가 그랬듯이, 선조와 인조의 조선, 그리고 고종의 조선이 그랬듯이 한국은 다시 망국의 운명을 맞을 것인가.
이런 내우외환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여기에 오직 이념으로 대응했다. 외교에서도 이념이었고, 국내 내치도 오직 이념이었다. 사람을 쓰는 데도 능력이 아니라 오직 이념을 기준 삼아서, 심지어 유튜버를 국가 요직에 앉혔다. 오직 이념을 기준으로 미국, 일본 일변도 정책을 폈다. 변화하는 새로운 현실에 맞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낡은 이념의 눈으로 변화하는 현실을 외면했다. 각주구검이란 어리석음에 빠졌다. 물에 떨어뜨린 칼을 찾으려면 흐르는 물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물도 흐르고 배도 물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데, 물에 빠진 칼을 찾기 위해서 배에다 칼을 떨어뜨린 곳을 표시하는 어리석음에 빠졌다. 그렇게 대한민국을 망국의 늪으로 끌고 갔다.
5천 년 한국 역사에는 위기 극복의 DNA만 있는 게 아니다. 망국의 DNA도 있다.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한 지금, 이제 망국의 위기를 생각할 때이다. 그 시작은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가 추구한 이념 국가에서 벗어나 실용 국가로 국가전략을 바꾸는 일이다. 늘 푸르고 흔들리지 않는 소나무 정체성에서 뿌리는 질기고 튼튼하면서도 바람에 따라 방향을 유연하게 방향을 바꾸는 대나무 정체성으로 대한민국 정체성을 바꾸어야 한다. 국가와 국민의 부를 늘이는 실용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백성은 먹는 걸 하늘로 안다(民以食爲天)는 진리는 배고픈 시절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먹거리가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청년과 가난한 이들이 길바닥에 내몰리고 있지 않은가.
이념을 종교처럼 숭배하는 사람들, 당연히 보수에 많다. 성조기 들고서 부정선거 외치는 그들을 보라. 하지만 진보에도, 민주 진영에도, 수구 보수와 이념의 내용은 다르지만, 이념 숭배자들이 많다. 새 정부는 확고한 이념을 지닌 무능한 사람이 아니라 이념 색채는 약하더라도 유능한 실용적 인재를 등용하길 기대한다. 망국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서 새 정부가 이념형 소나무 국가에서 실용형 대나무 국가로 한국의 정체성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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