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복사꽃이 떨어질 때면 뻐꾸기가 운다.
뻐꾸기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름 철새로 한국에서 봄과 여름을 보내며, 3~4개월 뒤에 월동을 위해 놀랍게도 1만 km를 날아 아프리카로 이동하는 철새다.
그래서 뻐꾸기가 울기 시작하면 봄이 지나가고 있으며 여름이 코 앞임을 알 수 있고, 뻐꾸가 소리가 그치면 이제 가을이 머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뻐꾸기는 탁란으로 유명하다. 탁란은 기생의 한 종류로 난생 동물이 다른 개체의 둥지에 알을 낳아 그 둥지의 주인이 자신의 새끼를 부화시켜 키우게 하는 습성이다.
'탁란'하면 뻐꾸기를 떠올리지만 사실 탁란은 조류 뿐 아니라 어류와 곤충에서도 관찰되었으며, 조류 중에도 뻐꾸기 뿐 아니라 두견이, 찌르레기 등 전체 조류 중 102종 정도가 탁란을 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뻐꾸기가 유난히 유명한 이유는 같은 둥지의 다른 새끼들을 둥지 밖으로 밀쳐내 죽여버리는 못된 습성 때문이다.
부화 시간이 짧아 가장 일찍 알에서 깨어난 뻐꾸기는 본능적으로 다른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 깨뜨릴 뿐 아니라, 알에서 깨어난 다른 새끼마저도 둥지 밖으로 떨어뜨려 죽여버린다.
이러한 행동을 쉽게 하기 위해 갓 부화한 뻐꾸기는 등에 길다란 홈이 있어 이를 이용해 알과 다른 새끼를 밀어낼 수 있다고 하니 무섭기까지 하다.
조류학자들은 뻐꾸기를 연구하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호주 국립대 생물학과의 나오미 랭모어(Naomi Langmore) 교수 연구진은 지난 해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남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와 둥지를 뺏기는 숙주 새 사이에 속이고 적발하는 경쟁이 벌어지며 새로운 뻐꾸기 종이 생겨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20년 동안 숲에서 벌이지는 탁란을 관찰하면서 동시에 박물관에 보관된 알에서 DNA를 채취해 분석했다.
그 결과 탁란을 당한 새가 생김새를 많이 따질수록 뻐꾸기 새끼도 숙주 새끼와 비슷한 모습으로 진화한 것으로 밝혀졌다.
숙주가 치밀해지자 기생하는 뻐꾸기의 속임수도 정교해진 것이다.
지금 우리 주위에 볼 수 있는 모든 생물종은 주위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자신을 끊임없이 적응하며 진화해 온 것들이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동물 중 가장 힘이 셌던 공룡은 진화에 실패하면서 자취를 감추었지만 하찮은 바퀴벌레는 어떤 먹이든 소화를 해낼 수 있도록 진화하여 이제는 거의 모든 살충제에도 내성을 가지는 천하무적이 되었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자라나는 우리 청소년들을 보아도 우리보다 팔다리도 길쭉해지고 키도 훌쩍 커서 마치 새로운 인류가 태어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인류의 진화를 돌아보며 걱정이 앞설 때도 있다. 바로 인류의 진화 속도를 능가하는 기술의 진보 속도다.
진화는 오랜 세월을 통해 필요한 기능을 발전시키고 필요 없는 기능을 퇴화시키면서 이루어져 왔다.
농경 생활이 시작되면서 후각과 시각 기능을 포함한 인류의 사냥 기능이 퇴화되었고, 증기기관의 탄생이 야기한 산업사회의 발전은 인간의 노동력 대신 기계를 사용하면서 인간의 근력을 퇴화시켰다.
대신 인간의 두뇌 기능은 점차 발전하면서 더 정교하고 더 편리한 기계를 더 빠른 속도로 만들어 내며 오늘날의 현대 사회를 이루어냈다.
이처럼 기술의 발전은 필요 없는 기능을 퇴화시키면서 인류의 진화를 이끌어 왔다. 그런데 기술의 발전 속도는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농업 혁명이 시작하고 산업 혁명이 일어나기까지 8천년이 걸렸는데, 산업혁명이 일어난 후 불과 120년 만에 전구가 발명되면서 전기혁명으로 이어졌다. 컴퓨팅 성능의 발전 속도는 더욱 놀랍다.
1837년 영국의 수학 교수 찰스 배비지가 기계식 범용 컴퓨터를 제안한 이후 꾸준히 발전해 온 컴퓨팅 성능은 최근에는 초기 90년에 걸려 이룬 성능의 향상은 단 1시간만에 이룰 정도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인공지능 기술 역시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2015년 쥐의 두뇌 능력을 뛰어넘은 인공지능은 2025 학년도 수학능력고사 국어 영역에서는 1문제를 틀린 97점을 받아 수능 1등급을 차지하였다.
여러 개의 지문을 비교하는 문항도 척척 풀어낼 뿐 아니라, 6개 문항을 푸는데 불과 1분 10초밖에 걸리지 않아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고 있다.
올 3월 구글의 Gemini 2.5 Pro는 IQ 테스트에서 130을 넘어 멘사 수준의 지능을 뽐냈고, OpenAI의 GPT-4.0는 기계가 인간과 얼마나 비슷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기계의 사고 능력'를 판별하는 튜링테스트에서 기준인 50%를 훨씬 뛰어넘는 73%를 받아 인간 참가자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많은 사회적 편의와 생산성 향상을 가져오고 있다. 지금은 스마트폰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듯, 앞으로 인공지능은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기술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기술의 빠른 발전으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기능이 퇴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공지능이 우리를 대신하여 두뇌 작업을 해 주고, 우리는 그 결과만 누리게 된다면 농경사회에서 퇴화한 사냥 기능, 산업 사회에서 퇴화한 노동 기능처럼 우리의 사고 기능 역시 퇴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접 사고하고, 공부해서 기억하고, 이를 바탕으로 깊게 사유하는 일을 멈추게 되면 앞으로 우리의 인지 기능이 퇴화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과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우리는 발전하는 인공지능 시대를 향유하는 것과 함께,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의 인지 기능이 퇴화하는 것을 저지할 방법 또한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진화는 자연의 산물이지만 변화는 우리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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