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되고 얼마 안 지나서의 일이다. 제과점 'K당(堂)'에서 개를 키우고 있었다. 품종은 테리어(terre). 몸집이 아담하고 영리하게 생겼다. 작은 굴에 사는 여우 수달 같은 짐승을 잘 잡는, 본래 사냥개 혈통이다. 영국에서 반려견으로 키우다가 널리 퍼졌다고 한다. 이 제과점 개가 새끼를 낳았다. 단골 A씨가 그중 한 마리를 예약했다. 젖을 떼야 하니 두 달은 기다리라 했다. 아이들이 난리를 치며 좋아했다. 어미는 어찌 생겼을까, 털 색깔은 어떻고, 이름은 뭘로 할까, 별의별 얘기들이 오고 갔다. 연필로 벽에 60개의 줄을 긋고 하루에 하나씩 지워 나갔다. 고대하던 두 달이 지나 A씨는 아이들과 개 목줄을 사 들고 제과점에 찾아갔다. 그런데 강아지가 보이질 않는다. 어젯밤 관의 국장을 하는 B씨가 갑자기 와서는 기어이 가져간다고 해서 그쪽에 뺏겨버렸다는 것이다. 눈물이 비 오듯 하는 아이들을 돌려보내고, A씨는 B국장을 찾아갔다. 둘은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A씨가 돌려달라고 하자, B국장 손사래를 친다.
'"어린애 마음을 그렇게 잘 아는 자네니까 말일세. 자네 집 아이들은 60일을 두고 기다렸지마는 직접 보아서 정든 것은 아닐 것 아닌가. 내 집 어린놈들은 이미 하룻밤을 같이 자면서 한 집에서 날을 새웠네. 단 하룻밤이지마는 그 정분은 만리성일세. 그것을 도로 찾아가다니 그럼 내 집 아이들 마음은 어떻게 되겠나?" 조리가 있는 듯 없는 듯, 국장님의 이 아전인수 격의 동심론(童心論)에는 A씨도 더 싸울 말이 없어 고소를 짓고 하는 수 없이 되돌아왔다.'
김소운의 책 '가난한 날의 행복'에 실린 수필 '동화'의 이야기를 갈무리 한 것이다. 지금 눈으로 보면 B국장의 행동은 얌체에, 새치기에, 갑질에, 용납하기 어렵다. 그런데 1949년 작품이니 이승만 시절, 70년이 넘는다. 힘이 상식 위에 있던 시절이라, 국장의 횡포에 제과점 주인도 A씨도 물러서고 만 것이리라.
여기서부터 샛길로 들어선다. 꽃은 큰길보다 샛길에 많다. 이 작품에서 빛나는 대목은 '조리가 있는 듯 없는 듯'이라는 표현이다. 자네 집 아이들은 두 달을 기다렸지만 직접 본 것은 아니고, 우리 집 아이들은 단 하룻밤이지만 한 집에서 날을 세웠네, 하면서 만리성 운운하는 B국장의 변설에 작가는 '조리가 있는 듯 없는 듯'이라 한다. 요컨대 자네 집은 다른 강아지로 대체 가능하지만 우리 집은 대체 불가하다, 그러니 자네 집은 '그리움'이고, 우리 집은 '사랑' 아닌가, 그렇게 읽힌다. 정말 조리가 있는 듯 없는 듯, 얄밉지만 일리는 있다.
그리움은 '그리다'에서 왔다. 석양, 바닷가 모래밭에서 막대기를 하나 들고 그리운 대상을 그려보는 것, '그림'은 그리움의 형상이다. 그리고, 모래밭에 '보고 싶은 어머니'라고 막대기로 써보는 것, '글'은 그리움의 언어이다. 파피루스보다 알타미라가 먼저이므로, 인류는 쓰기 전에 그렸다. 둘 다 '긁다'가 뿌리다.
사랑은 '사(思)'에서 왔다. 15세기 생각을 'ㅅ·랑'이라 옮겼다. 옛 우리말 불경(언해불전) '금강경삼가해'에 이런 노래가 있다. '기러기는 새북(塞北)에 날기를 사랑(思)하고, 제비는 옛 깃에 돌아오기를 생각(憶)하누나' 기러기는 저 북녘으로 날아가기를, 제비는 옛집에 돌아가기를, 기러기는 미래를 사랑하고, 제비는 과거를 추억한다. 그 'ㅅ·랑'이 지금 쓰는 '사랑(愛)'과는 다르지만 '생각'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생각은 사랑으로도 가고, 그리움으로도 간다. 둘은 구분할 듯 구분하기 어렵다. '사랑은 점점 그리움이 되어갔다. 바로 옆에 있는 것, 손만 뻗으면 닿는 것을 그리워하진 않는다. 다가갈 수 없는 것, 금지된 것, 이제는 지나가 버린 것,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향해 그리움은 솟아나는 법이다.' 작가 신경숙의 말이다.
그리움은 부재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과거로 간다. 거기서 생각은 그림을 낳고, 글이 되기도 한다. 15세기 우리말에 '사랑(愛)'은 'ㄷ·ㅅ다'라고 했다. 아이들 이름 '다솜'의 어원이다. 'ㄷ·ㅅ다', 사랑은 역시 닿는 것이다.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 즉 접촉이다. 사랑은 실존이고 그리움은 상실이랄까, 사랑은 구체이고 그리움은 추상이랄까, 사랑은 지금 내 앞에 흐르는 강물 같은 것, 그리고 저 멀리 바다를 향해 아득히 멀어져 버린, 그리움은 그런 것 아닐까 싶다.
60일간의 그리움과 하룻밤의 사랑이 맞붙어 있는 저 테리어 강아지가 여러 생각을 낳는다. 마음 같아서는 B국장이 가져간 강아지를 A씨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그런데 그 '조리가 있는 듯 없는 듯' 하룻밤 만리성의 논리 앞에서 나는 길을 잃고 만다. 본다는 것, 닿았다는 것, 상면의 연(緣)이 이토록 강렬한 것이었던가!
김소운은 'A씨는 나도 잘 아는 분이다. 일간 어디서 잘생긴 강아지 한 마리를 구해서 그 집 아이들에게 선물을 삼을까 한다'라고 글의 말미를 여미었다. 정말로 선물을 했는지는 모를 일이로되, 그 집 아이들 60일의 기다림은 짠하고 귀하다. 지금은 그런 기다림이 없다. 우리 시대, 사랑은 짧고 그리움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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