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헌재, 때를 놓치면 정의가 아니다.

@구길용 뉴시스 광주전남대표 입력 2025.03.30. 15:38
구길용 뉴시스 광주전남본부대표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대한민국의 봄은 왜 이리도 멀리 있는지.

헌정을 유린한 내란의 우두머리를 끌어내리는 게 이렇게 힘든 과정인지도 상상하지 못했다.

눈앞에서 펼쳐진 비상계엄의 광란이 아직도 선명한 터라, 조기에 가닥이 쳐질 줄 알았다. 그게 상식과 정의라고 믿었다.

그 기대는 법꾸라지들의 난장 속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다는데, 아직도 주위는 깜깜하다.

계엄사태 이후 불면의 밤을 지새우는 국민들의 가슴에 '괴물 산불' 화마(火魔)는 왜 이리도 억장을 짓누르는지 하루하루가 질식할 듯 갑갑하다.

극심한 사회 혼란과 위기상황의 연속, 우리의 자랑스런 나라 대한민국이 만신창이가 돼가는 게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제는 종지부를 찍어야 할텐데, 그토록 정의롭던 헌법재판관들은 어디에 있는가, 헌재의 시간은 어디쯤 가고 있는가.

아무리 엄정한 결정이라도 시기를 놓친다면 그것은 이미 정의가 아니다.

오늘로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헌재에 접수된 지 107일째다. 지난 2월25일 변론이 종결된 지도 한 달을 훌쩍 넘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63일, 박근헤 전 대통령 파면이 91일 만에 결정된 전례에 비춰보면 윤석열 탄핵심판은 늦어도 한참 늦어지고 있다.

설마 했던 4월 선고설이 현실화됐고 헌재가 당초 강조했던 최우선 심리 원칙도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숙의가 장기화되면서 헌재를 향한 국민들의 불만도 임계점에 달하고 있다.

다양한 시나리오와 갖가지 억측이 쏟아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8대 0 파면 인용', '5대 3 기각 또는 각하', '5대 3 데드락 상황에서 재판관 1명이 의견 조정 중' 등등.

헌재 성격상 결코 확인할 수 없는 설들이 제각기 희망사항과 맞물려 증폭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대한민국은 극심한 여론 분열로 갈가리 찢기고 있다.

처음에는 5대 핵심 쟁점별 만장일치 과정에서 평의가 길어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유력했다.

거스를 수 없는 비상계엄의 위헌, 위법적 요소에 따라 인용 결론은 나와 있지만 주요 쟁점별로 합의된 의견을 도출하기 위해 평의를 이어간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 관측은 선고 이후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절차적, 문구적 흠결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을 것이란 시각이었다. 결정문의 완성도를 높인다는 의미다.

이 두 가지 모두 재판관들의 합의된 의견을 전제로 했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가능성은 극히 낮아졌다. 적어도 헌법재판관 8명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탄핵심판 선고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전원일치 합의된 의견을 이끌기 위해서라고 하기엔 시간이 너무 흘렀다.

법리적 의견이 맞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국가적 대혼란의 책임을 통째로 뒤집어써야 하는 헌재의 딱한 운명을 설명할 길이 없다.

지금 가능한 해석은 재판관 중 일부가 탄핵소추의 절차적 정당성 등을 들어 각하 의견을 내거나 기각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을 개연성이다. 이는 한덕수 권한대행의 탄핵심판 결과를 보더라도 지레짐작할 수 있다.

성격이 다른 두 개의 탄핵심판을 유비추리 하는 것은 경계해야겠지만 재판관 8명의 성향만큼은 여실히 드러났다.

헌재소장 권한대행인 문형배 재판관과 이미선·김형두·정정미 재판관, 그리고 김복형 재판관은 기각 의견을 냈으며 세부 항목인 헌법재판관 임명 부작위와 관련해선 이들의 의견이 4대 1로 나뉘었다. 정계선 재판관은 인용 의견을 냈고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은 각하 의견이었다. 세부적으로 보면 네 갈래, 크게 보면 두 갈래, 5대 3으로 나뉜다.

그러니 윤석열 탄핵심판이 교착상태에 빠진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

문제는 헌법재판소의 평의가 더 이상 길어질 경우 우리 사회에 닥칠 암울한 상황이 극에 달할 것이란 점에 있다.

4월 선고설이 현실화된 지금, 예측 가능한 기일은 4일과 11일이다. 두 명의 재판관이 퇴임하는 4월18일, '식물 헌재'로 가는 마지노선을 감안하면 그 직전인 14~15일도 상정할 수 있다. 심의 4개월 최장 기간이다.

당초 "대통령 탄핵 사건이 다른 어떤 사건보다 중요하다"며 최우선 심리 진행과 선고 방침을 내세웠던 헌재의 입장은 온데간데없다.

대한민국 헌법 수호의 최종 보루로서 지켜온 헌재의 신뢰도는 추락했고 국민들의 반감도 선을 넘어서고 있다.

'장고 끝에 악수'라고, 헌재의 뒤늦은 선고가 가져올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그나마 인용 결정이 내려진다면 대한민국 사회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 가겠지만 만약 5대 3 기각 또는 각하 결정이라면 암담하다.

헌정을 유린했던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하고 국민적 저항과 갈등은 격화돼 사실상 내전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다. 대뇌외적인 불확실성이 커져 국가 경제는 회복불능 상태로 휘청거릴 것이 자명하다. 국민들의 피폐한 삶은 두말할 게 없다.

스티븐 레비츠키 하버드대 교수는 그의 저서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에서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독재자의 가장 비극적인 역설은 그가 민주주의 제도를 미묘하고 점진적으로, 심지어 합법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죽인다는 사실이다'라고 진단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비정상의 정상화가 시급한 이유다.

하루라도 빨리 무너진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일상으로 복귀하기를 국민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 절체절명의 키를 헌법재판관들이 쥐고 있다.

헌재법에 명시된 대로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심판해야 한다. 여기에 정치적 성향이 개입될 여지는 없다.

상황이 복잡하게 꼬일수록 상식과 원칙으로 돌아가자.

불법계엄을 저지르고 대한민국을 나락의 끝으로 내몰았던 장본인을 다시 권좌로 돌아가게 하는 게 과연 맞는가.

도도한 역사는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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