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게 이렇게 길어질 일인가 싶다.
굳이 민주주의 원리에 비추어 볼 필요도 없이, 상식으로 보더라도 시비가 분명한 일이다. 그런데도 헌재 탄핵 심판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그만큼 한국 사회 곳곳이 골병들었다는 증거다. 한국 민주주의가 깊이 위기에 빠졌다는 증거다.
오늘 많은 사람이 어처구니없어하는 것은 피와 죽음으로 이룬 한국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린 장본인이 전두환 같은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도 아니고, 민주적인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어서다.
탄핵 심판이 끝나더라도 무너진 한국 민주주의를 어떻게 회복할지, 참으로 어려운 숙제가 우리 사회에 떨어졌다. 한국 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해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차원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원으로 돌아가 민주주의 자체가 지닌 빛과 어둠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그리스에서 태어났다.
그리스의 수도인 '아테네'란 이름은 '아테나'에서 왔다. 아테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이다. 이 여신상은 특이하다. 한 손에는 부엉이를, 다른 손에는 창과 방패를 들고 있다. 어찌 보면 연관이 없거나 모순되는 두 가지를 왜 같이 들고 있을까?
아테나 여신이 지혜의 신이자 전쟁의 신이어서 그렇다. 그녀가 들고 있는 부엉이는 어둠 속에서도 세상을 볼 수 있고, 사물을 분간할 수 있는 지혜를 상징한다. 창과 방패는 상대를 무찌르고 나를 방어하기 위한 전쟁을 상징한다.
아테나 여신이 지닌 이런 모순적인 두 가지 속성을 어떻게 이해할까?
아테네 여신에 담긴 지혜의 뜻과 의미가 우리 보통 생각과 달라서 그렇다. 아테나 여신에게 지혜란 단순히 어떤 일이 진리이고 정의인지를 아는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고 정의라고 판단한 것은, 창과 방패를 동원하여 전쟁을 치러서라도 관철해야 하고, 그렇게 수행된 전쟁은 정의롭다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다.
서구 역사에서 일어난 수많은 종교 전쟁이나 처참한 살육이 이런 아테나 여신이 지닌 지혜의 의미와 연결되어 있다.
정의나 신의 명령을 내세우지만, 그것은 자신들 만의 명분이나 신념이거나 사욕과 위선을 그렇게 포장한 것일 뿐인 경우가 많았다. 지혜를 앞세워 총과 칼의 전쟁을 포장한 것이다.
아테나 여신이 지닌 '지혜'와 '전쟁'이라는 상징적 의미는 민주주의의 양면성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리스에서 탄생한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과 생각을 존중하는 열린 체제이다.
하지만 리더가 어떤 생각을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지혜'가 자신만의 강한 신념으로 굳어지는 순간, 그것은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교조적 이념이 되어,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을 탄압하고, 배척할 수 있다.
더구나 이런 정치적 신념이 종교와 결합할 경우, 자기 생각을 실현하고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을 척결하는 것을 신성한 종교적 사명이라고 여기는 미신적 도취에 빠지게 된다. 그 순간, 민주주의는 무너지고 파시즘 세상이 된다.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아테나 여신에게서 지혜는 사라지고, 창과 방패를 든 전쟁만 남게 된다.
그동안 한국 정치에서 계엄은 군인 출신 대통령이나 쿠데타와 연결되었다. 박정희나 전두환이 그랬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은 전시도 아닌 상황에서 민주 선거를 통해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일으켰다는 점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면서 민주주의를 파괴했다.
독일에 파시즘 시대를 열었던 히틀러도 민주적 선거로 선출되었다.
히틀러는 자신이 진리라고 믿는 거짓 신념을 지혜라고 믿으면서 장애인과 정치 반대파, 동성애자, 유대인 등을 학살했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우면서 다수 한국인의 선택을 받아 집권한 윤석열 대통령도 민주주의의 허점을 파고들면서 한국 민주주의 자체를 위기에 빠뜨렸다.
윤석열 대통령의 민주주의는 지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기가 맹신하는 정치 신념을 위해서 자기 지지만 쳐다보면서, 정치적 반대 세력과 생각이 다른 국민을 압박하고 자기 권력욕을 채우는 창과 방패의 민주주의였다.
세상 순리대로라면, 그리고 헌재가 쿠데타 면허증을 윤 대통령에게 내줄 생각이 아니라면, 윤 대통령 탄핵 국면은 곧 끝날 것이고, 우리 사회는 빠르게 대선 국면에 들어갈 것이다.
곧 이어질 대선 국면에서 한국 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해서 유권자가 명심할 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윤석열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는 점이다.
수많은 '윤석열들'이 있다.
정치인만이 아니라 수많은 지지자 대중이 있다. 그들도 민주사회 유권자다. 전두환 시대 때보다 윤석열 탄핵 시대가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게 더욱 어려운 건 이 때문이다.
전두환은 특정 시기에 군사 쿠데타라는 특수한 방법으로 나타나서 다시 전두환이 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윤석열은 선거를 통해서 출현했기 때문에 언제든 다시 복제되어 그 후예가 출현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상징인 아테나 여신이 그렇듯이, 민주주의 자체가 지닌 한계와 어둠을 생각하면서 대선 국면을 맞아야 또 다른 윤석열과 윤석열식 민주주의가 다시 출현하는 걸 막을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구호로 공정과 상식을 내세웠듯이, 대선 후보가 내세우는 지혜를 가장한 말에 두 번 다시 속지 말고 그 뒤에 감추어진 창과 방패를 간파해 내는 유권자가 되도록, 각오를 단단히 할 일이다. 위기에 빠진 한국 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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