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의 신년 키워드를 '불확실성과 불안정 속에서의 희망 찾기'로 간추려 본다. 불확실성이란 거래형 리더십의 달인인 트럼프의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국제정치와 글로벌 경제 체제의 혼란에서 기인한다. 세상을 흔들 만한 신기술의 부상과 지구촌에서의 전쟁과 테러 위협은 불안정성의 범주에 포함된다. 그 핵심 동인은 미·중 패권과 경쟁 구도의 변화다. 우리의 위상에서는 기존 체제나 판이 흔들릴 때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는 역설적인 전략에 방점을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내의 발 빠른 대기업들은 공급망 변경에 앞서 이미 미국에 대한 직접 투자를 확대하고 있음이 그 방증이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수출주도국이라는 지난 60년의 명성을 지탱해 온 과거 정책을 가다듬고 새로운 전략을 찾아야 할 때에 이른 것이다.
지난 1월 초순 글로벌 경제와 산업계를 달궜던 'CES 2025'가 막을 내렸다. '몰입(Dive-in)'을 주제로 AI 대전환 시대를 열었던 혁신의 축제는 이제 치열한 시장으로 이어질 기세다. '기술로 인류사회를 연결하여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찾는다'는 슬로건은 우리를 설레게 하지만 여기서 버텨내지 못하면 도태나 종속밖에 없다. 약육강식의 정글 속에 들어온 것이다.
올해 CES는 AI 반도체를 두고 각축을 벌인 한국·대만·일본의 혁신 삼국지가 그 무대를 미국으로 옮겨서 벌인 일전에 비유할 수도 있다.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은 개인이 양자컴퓨터를 활용하는 시기를 20-30년 후로 예측했다. 이 기간 안에 선진 중추국가로 자리를 굳힐 것인가 아니면 그 자리를 내어줄 것인가는 전적으로 AI 기반 신산업의 주도권 확보 여부에 달렸다. 글로벌 빅테크들은 제약· 바이오와 의료·헬스케어 분야에서 연구와 임상, 신약 개발 등에 활용되는 AI를 앞다퉈 출시하는 추세다. 미국은 AI 반도체의 생산과 수출은 물론 국가별 수입 상한제 시행을 발표했다. 한국은 동맹국에 포함되면서 제약을 받지는 않겠지만 공급망 재편을 비롯한 전략적 대응은 여전히 필수 과제일 수밖에 없다. 우울한 상황 속에서도 AI를 기반으로 양자 컴퓨팅과 에너지 전환 기술이 그 뒤를 이을 신산업의 동력으로 떠오름은 새로운 희망이자 기회다.
이처럼 경제와 안보의 중심에 AI와 반도체, 그리고 에너지 시스템이 자리한다. 하지만 기업의 성패, 국가의 존망이 달린 약육강식의 판을 놓고 볼 때, 우리의 미래 준비는 어떤가. 기술패권 시대에 이념 논쟁에 몰입해 있는 대한민국. 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안에서는 같은 땅 딛고서 둘로 나뉘어 원수처럼 싸워댄다. 이념이 모든 사안과 가치를 빨아들이는 이념 과잉 사회에 매몰돼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사고방식과 역사관과 가치관이 이념을 지배해야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거꾸로 이념이 모든 것 위에 버티고 있다. 소모적이고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음에도 새로운 분노를 부추기면서 국민 화합을 방해하고 있는 게 실상이다. 오늘날의 이념 논쟁은 조선의 성리학 논쟁과 다를 바 없다. 왕조시대의 군주든 민주 국가의 국정 책임자든 나라를 지키고 백성과 국민을 배불리 먹이는 부국강병, 국태민안은 불변의 명분이어야 한다.
그 목표인 혁신 강국으로 우뚝 서려면 脫이념의 여정을 걸어야 한다. 탈이념이란 이념의 낡은 탈을 벗어버리는 혁신의 과정이다. 왜 이념의 혁신을 두려워하는가. 더욱이 혁신이 제대로 성과를 거두려면 脫규제가 전제될 때 비로소 가능한데 정책이 이념의 볼모가 되어 있어 효과가 드러나질 않는다. 이념이 경제와 사회를 지배하던 시기는 이미 20세기 말에 종언을 고했다. 이제는 과학기술이 그 자리를 대체했으므로 미래 트렌드와 시대정신을 읽은 지도자를 가진 나라가 패권국이 됨은 당연하다. 냉엄한 현실주의적 인식이 요청되는 지점에 와 있는 것이다.
정치가 경제를 이끌던 과거 패턴을 수정하지 않으면 미래가 암울하다. 해법 없는 저출생과 지방소멸, 제조업의 경쟁력 상실, 소비 위축 속에 올해는 1%대의 저성장에 머무를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다. AI 대전환 시대에 희망찬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역동성을 찾아 나설 때다.
푸른 뱀의 해, 긍정적 의미에서 뱀은 치유와 화합의 상징성도 지닌다고 한다. 이념에서 벗어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사색하는 선진 시민의 시대가 열리길 소망한다.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으로서 성찰과 사유야말로 특권이기 때문이다. 국민을 따뜻하게 진무(鎭撫)해 줄 철학이 아쉬운 세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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