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뱀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것은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5.01.12. 17:40

유대기독교 전통에서 흔히 뱀은 인간을 타락시킨 원흉으로 여겨지곤 한다. 인간의 범죄와 타락을 결과로 놓고 그 원인을 간교한 뱀의 유혹에서 찾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상징적 사건을 기록해 놓은 '창세기'를 스피노자와 함께 잘 들여다보면 다른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창세기 2장은 "사람과 그 아내가 둘 다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이어지는 3장에는 사람(아담)과 그 아내(하와)가 금지된 열매를 먹고 눈이 열려서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저녁에 하느님이 사람을 찾았을 때, 사람은 이렇게 대답한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선과 악을 알게 된 사람을 동산에서 내쫓으며 하느님은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혔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알몸의 이미지에 오도된 독자는 금지된 열매를 먹고 인간이 겪게 된 변화가 벌거벗은 상태에 대한 부끄러움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열매를 먹기 전에 인간은 다만 수줍어하지 않았을 뿐이고, 열매를 먹은 후에 신의 시선을 피해 숨은 이유는 '두려워서'였다. 두려운 이유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 인간이 '알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따름이다. 사실 인간이 두려움을 느낀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인간은 신이 먹지 말라고 한 나무 열매를 따 먹었고, 그래서 신의 비난을 받을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유대인 철학자 스피노자는 자신의 행동을 다른 사람이 비난하는 것을 상상할 때 뒤따르는 슬픔을 일컬어 '부끄러움(pudor)'이라고 했다. 스피노자는 이와 구별해, 그런 부끄러움을 나쁘게 여겨서 두려워하는 상태를 '베레쿤디아(verecundia)'라고 일컬었다. 스피노자는 인간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상태를 두려워함으로써 도덕적으로 나쁜 짓을 하지 않도록 억제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사람의 비난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하거나, 상상은 하더라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히브리인들은 모세가 자신들을 떠났다고 확신했을 때 아론에게 신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여 황금 송아지를 만들었다. ?출애굽기? 32장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사건을 묘사한 뒤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오 이런 부끄러운 일이! 이것이 그 많은 기적으로부터 결국 그들이 형성한 신에 대한 관념이었다니." 그런데 정작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모세와 스피노자이고, 부끄러워해야 마땅할 히브리인들과 아론은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부끄러운 상태를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이후 신은 율법을 통해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는 것을 금했다. 다른 사람의 비난 가능성을 각자 주관적으로 상상하거나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명문화한 것이다. 더 나아가 법을 어겨서 남의 비난을 받는 부끄러운 상태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도록 했다. 이로써 히브리인들은 도덕적 일치 속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부끄러움이 화합(concordia)에 기여한다"고 말한다. 법의 도입을 통해 인간이 부끄러움을 아는 상태에 있는 것이 공동생활에 유익하다는 것이다.

스피노자가 보기에 부끄러움은 인간의 유능함보다 무능함을 표현한다. 그래서 슬픔의 정서이다. 그러나 부끄러움은 마치 고통이 손상된 신체의 부분이 아직 부패하지 않았음을 가리키는 한에서 선이듯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에게 올바르게 살려는 욕구가 있음을 가리키는 한에서 선이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어떤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슬픔이라는 부정적 정서에 빠져 있을지라도 그가 도덕적으로 살려는 욕망을 전혀 가지지 않은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완전하다고 말한다.

을사년(乙巳年), 뱀의 해를 맞아 뱀이 우리 인간에게 가져다준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본다. 창세 설화 속의 뱀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것은, 인간이 뱀의 유혹에 넘어가 금지된 열매를 따 먹음으로써 결국 얻게 된 것은 부끄러움의 감정과 부끄러움을 두려워하는 마음일지 모른다. 국민의 뜻을 배반하고서도 부끄러운 줄 모를 대통령을 위해 미리 국민이 성문 헌법을 제정해두었는데도 계속해서 궤변을 늘어놓는 윤석열과 그 추종자를 보는 국민의 마음은슬프다. 왜 늘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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