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한강'의 기적

@김기태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이사 입력 2024.11.24. 17:54
김기태(시사문화평론가, 전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그야말로 '한강'의 기적이다.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은 그야말로 '한강의 기적'에 비견할 만한 국가적 쾌거이다. 6·25전쟁 후 폐허 속에서 다시 일어섰던 1960년대 대한민국 재건의 상징어로 오랫동안 쓰이던 '한강의 기적'이 이번에는 작가 한강에 의해서 이뤄졌다.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 10월 10일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의 작가 한강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한림원은 한강의 작품 세계를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표현하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한림원은 이어 "한강은 자신의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지배에 정면으로 맞서며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면서 "그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자 간의 연결에 대해 독특한 인식을 지니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고 부연했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지난 2000년 평화상을 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번째다.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의 의미를 되새기고 기쁨을 나누는 일은 아무리 성대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강 작가는 요란하고 외형적인 축하 행사를 모두 거절했다. 조용히 그동안 해오던 작품쓰기만을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다음달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하는 일 외에는 거의 외부에 드러나는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작가 본인의 뜻을 존중해서 일시적이고 외형적인 행사 중심의 축제를 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행사 자제 분위기가 노벨 문학상 수상이라는 국가적 쾌거 자체를 축소하거나 외면하는 지경으로 까지 번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수상 소식이 전해진지 불과 두 달이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오래된 사건의 하나로 잊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일부 사람들에 한정된 일이기는 하지만 이번 수상 자체를 못마땅해하고 심지어 폄훼까지 하는 일은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제는 기적과 같은 노벨 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슬기롭게 이를 기리고 지속적으로 그 의미를 되살려낼 것인가로 논의의 촛점을 맞춰야 할 때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확인하는 동시에 이런 위대한 작가가 출현하게된 배경과 요인을 차분하게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다. 아울러 이번 수상이 일회적인 사건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사회 문학과 문화의 전반적인 변화와 혁신의 기회로 작용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책 읽기 즉, 독서문화의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과도한 영상매체 의존 시대에 활자매체를 이용한 책읽기 문화의 활성화가 요청된다. 읽지 않고, 보고 듣기만 하는 오늘날 지식과 문화 수용 행태로는 더 이상 창의성과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문학과 예술의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과도한 영상 매체 또는 모바일 매체 의존도를 낮추거나 극복해야 한다. 즉흥적이고 말초적인 감각 기관을 자극하는 '흥분' 매체로 부터의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시류에 영향을 받는 유행으로서의 미디어 교육이 아니고 올바르고 균형잡힌 미디어 선택과 접촉 그리고 해독이라는 미디어 교육의 본질에도 충실해야 할 때이다. 끝으로 우리 고장 출신 한강 작가의 정신과 의미를 지속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나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일시적이고 외형적인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닌 창의적인 토양을 조성할 수 있는 근본적인 관련 문화 조성 사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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