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 어떤 국가에게나 미래는 불확실성 속에서 다가왔다. 특히 한반도는 지정학적 위기 고조에 따른 전쟁에 시달려온 대표적인 지역이다. 하지만 냉전시대 이후에는 국가안보의 개념이 바뀌면서 국제정치와 군사방위 중심에서 경제와 산업으로 그 축이 전환되기에 이르렀다. AI가 문명 대전환의 핵심 동인이 되면서 세계질서의 재편을 과학기술이 이끌고 있음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말하자면 지정학·지경학·기술주권론이 결합된 기술지정학(Techno-Geopolitics)이 변화의 패러다임으로 주목을 받는 이유다.
이러한 시각은 글로벌 차원의 시대정신으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역사적 분기점이 되었던 사례와 기술혁신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짚어보고자 한다. 지난70여 년 동안 우리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 하지만 디지털 경제 시대에 진입하면서 대내외적 변수들의 리스크에 시달리는 중이다. 각 부문마다 양극화는 더욱 깊어가고 생산성은 낮아지는 추세 속에서 새로운 미래 동력을 찾을 수는 없을까.
국가의 경쟁력은 '혁신과 규제 사이의 상충관계'가 빚어낸 결과로 볼 수 있다.
이 두 요인의 균형을 지배하는 것이 기술지정학이다. 인류 역사 발전의 한 축은 변화와 개혁이었고 다른 한 축은 조율과 균형이었다. 네 차례에 걸친 산업혁명의 역사를 정치·경제· 사회적 측면에서 조망해 볼 때 혁신과 규제 사이의 갈등 또는 길항작용의 연속이었다는 추론도 가능할 듯싶다. 이를 '혁신과 규제의 동행'이라는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하면서 불균형의 사례를 통해 시사점을 찾아보면 어떨까. 먼저 정치체제와 혁신과의 관계다. 혁신은 자유 정신을 지닌 사람들의 지적 상상력과 경제적 이윤 동기가 결합된 산물이다. 자유가 혁신의 정신적 원천인 까닭이다. G2로 인정 받는 중국의 성장이 정체되리라는 전망은 자유인의 혁신 활동을 규제하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연유한다.
조선 왕조에서 세종과 정조 두 분은 성군으로 꼽힐 뿐만 아니라 대왕으로 불린다. 하지만 혁신과 규제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세종은 혁신의 아이콘이나 정조는 규제의 화신이었다. 정조가 즉위한 1776년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발간되어 영국 산업혁명의 이론적 배경으로 떠올랐으며 미국의 독립선언이 이뤄진 해였다. 서구에서는 근대화의 물결이 도도하던 시기에 안타깝게도 정조는 지적 오만에 빠져 시대정신을 읽지 못했다. 학식이 대학자 수준에 이르렀던 지식 군주 정조는 학문과 사상, 정치와 권력 모든 분야에서 자신만을 위한 세상을 창조하고 싶어했다. 자신을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 칭하며 세상 모든 학문의 원천이라 선언하고, 성리학을 제외한 모든 사상을 이단으로 규정함으로써 결국 근대국가로의 혁신을 규제했던 과오를 범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혁신의 싹은 태동되고 있었다. 실학의 한 갈래인 북학파가 개혁을 꿈꾸고 있었으며, 박제가는 조선의 국부론으로 불리는 '북학의'를 1778년에 발간한다.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제 아래 상공업을 진흥하지 않는 조선의 경제 시스템을 비롯해 생산된 지식이 유통되지 않는 체제도 근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박제가는 중상주의를 내세워 직업적 평등과 근대 경제 시스템을 강조했던 것이다. 이 시기는 조선의 근대화가 좌절된 흑역사에 해당하기에 더욱 안타깝다.
이러한 깊은 회한 속에서도 진정한 근대화의 빛이 이 땅을 적신 지 70년이 되었다. 지난 10월 발표된 '2024 노벨 경제학상'이 한국의 근대화와 경제성장에 주는 의미다. 공동수상자인 미 시카고대 제임스 로빈슨 교수는 "한국은 '포용적 제도'를 구축해 폭넓은 기회와 동기 부여로 혁신을 창출한 국가이며, 북한은 '착취적 제도'를 고집하여 빈곤을 초래한 국가"로 평가하였다.
동북아의 한·중·일 삼국은 어느 시대에서나 세계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경영학의 구루 피터 드러커는 21세기 벽두에 기술혁신 능력의 차원에서 한·중·일 세 나라의 역사와 사회 환경을 비교하면서 그 미래를 제언한 바 있다. 일본은 사회적 신뢰도는 높지만 자기주도적 창의력이 부족하고,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의 경직성으로 인해 창조적 혁신 측면에서는 역동성이 강한 한국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예견이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역사적 사례와 함께 그의 통찰에서 새로운 희망을 품고 싶은 만추(晩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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