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인선 문제로 8.15 광복절 기념식이 광복회와 따로 개최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더욱이 당일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 연설 내용은 때아닌 '역사전쟁'을 촉발했다. 윤 정부 집권 이래 강제징용공 문제의 '제 3자 변제' 해법 제기, 홍범도 장군 동상이전,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방관, 정부 내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의 대거 기용 등으로 대통령과 측근들의 역사인식과 친일 행보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되고 있었다. 이 와중에 이번 광복절 기념식 내용을 접한 국민들은 연설문 읽고 있는 대통령이 도대체 어느 나라 대통령인지 어리둥절하게 했다. 일제 만행과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 측의 통렬한 반성을 촉구하면서도 미래를 향한 한일 관계 개선의 메시지 내용이 균형감 있게 담겼어야 했다. 그러나 광복절 맥락에도 맞지 않은 '자유찬양' 논조 뿐만 아니라 파탄 지경에 빠진 남북 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되지 않은 '8.15 자유통일 독트린' 발표는 국민들의 통합은커녕 남북관계 개선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발언이었다는 비판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역사 인식과 태도와 관련하여 우리는 1970년 12월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서독 총리가 바르샤바 유대인 추모비 앞에 무릎 꿇고 잘못된 과거사를 통절히 반성하여 세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또한 1982년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이 일어나던 일본과 대조적으로 리처드 폰 바이츠제커(Richard von Weizsacker) 연방대통령이 1985년 5월 8일 본(Bonn) 연방의회에서의 한 연설을 지금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죄가 있든 없든, 나이가 많든 적든 우리 모두는 과거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 결과에 영향을 받으며 그에 대한 책임을 집니다.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는 추억을 생생하게 유지하는 것이 왜 중요한 지 이해하도록 서로 도와야 하며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과거를 나중에 수정하거나 없었던 일로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눈을 감는 사람은 현재를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비인간적인 행위를 기억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감염 위험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전범국인 독일의 두 정상의 태도는 유럽의 평화번영과 유럽연합으로 이어주는 계기로 작용했다면, 아베 집권 이래 최근 기시다 정부의 역사왜곡과 같은 반인륜적 ·반역사적 퇴행적 태도는 바람직한 한일관계의 발전은 물론이고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과 화해를 가로막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우리는 과거 1998년 김대중-오부치 한일 양국 정상의 "한일공동선언: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1998년 10월 8일)를 다시 소환해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것이다. 당시 양 정상은 한일 양국이 21세기의 굳건한 선린우호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양국이 과거를 직시하고 상호 이해와 신뢰에 기반한 관계를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오부치 총리는 금세기 한일 양국의 관계를 회고하며, 일본이 과거 한 때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큰 피해와 고통을 준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표명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러한 오부치 총리의 역사인식 표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이를 평가함과 동시에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기반한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임을 표명했다.
하지만 최근 국내의 '역사전쟁'의 분출에서 보듯이, 종군위안부 문제, 강제징용공 피해 배상금 '제 3자 변제' 해법 제기, 홍범도 동상이전,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의 대거 기용, 광복절 기념식 분리 개최, 미국의 압박에 따른 급조된 한일 관계 개선 등등은 기존 역대 정부의 공식적인 역사관과 헌법정신 그리고 독자적 외교정책에서 크게 벗어난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 어떤 구상이 필요할까?
첫째,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한일 양국의 정치세력들이 과거사 문제를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국내 정치용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한 노력이 양국 사이에서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일본은 독일의 역사청산의 교훈을 거울로 삼아 위안부, 징용공 문제,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 등에서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도 있다.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무한 책임 의식도 필요하다고 본다.
둘째, 1951년 미국 주도의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아직도 동북아는 냉전이 끝나지 않았고,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신냉전 체제로 접어들고 있다. 한미 양국은 2023년 4월 말 한미 간 워싱턴 선언에서 '핵협의그룹'(NCG) 중심으로 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핵공유 협정' 체결로 한중 및 남북 간 긴장을 고조시켰다. 바이든 정부는 가치동맹을 내세워 인도-태평양 전략과 쿼드(QUAD), 오커스(AUKUS), 2023년 8월의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을 통해 한미일 삼각동맹화를 적극 추진 중이다. 미국이 권위주의 진영인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을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견제 고립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이에 중국과 러시아는 '21세기 전면적인 전략적동반자 관계' 확대 강화하고 있으며, 북한은 2023년 9월 13일 북러정상회담과 2024년 6월 북러 간 동맹화 조약 복원 등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미일 대 북중러 사이의 신냉전적 진영 대결 구도, 즉 남방삼각협력 대 북방삼각협력이 동북아에서 현실화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한미일 삼각협력 체제를 전방위적으로 확대 강화하여 북중러를 견제하려는 남방 삼각 對 북방삼각 대립구조의 형성이야말로 동북아 한중일 나아가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을 가로 막는 결정적인 구조적인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에서 동아시아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갖게 한다. 그래서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은 아직 신기루에 그칠 수 있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한미일 삼각동맹화 추진을 위해 결국 윤 정부의 역사인식과 헌법 정신이 급전환된 것으로 보는 것은 과도한 추론일까? 시대착오적인 가치동맹에 사로 잡히는 것은 큰 국익손실을 초래할 수 있는 치명적인 전략적 오판이 아닐까? 탈이념적 현실주의적 접근이 필요한 때이다. 김재관(전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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