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재판에 대한 신뢰

@김승휘 변호사 입력 2024.06.02. 17:48
김승휘 변호사

분쟁에 관해 법관이 내린 판결이 확정되면, 우리 사회는 공식적으로는 그것이 분쟁과 관련된 모든 사정을 살핀 끝에 내려진 최종적 진실이라고 받아들인다. 우리 사회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재판이 분쟁에 대하여 진실을 선언하는 것임을 부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헌법과 법률이 법관을 분쟁에 대한 진실과 법적 판단의 최종적 선언자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사와 야사 중 어느 것이 진짜인지가 논란이 되고, 제도적으로 진실성을 부여 받았으나 승자에 의해 윤색되었을 수 있는 정사보다는 야사가 더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는 의혹이 늘 있듯이 분쟁에 관하여 법원이 내린 결론이 공식적으로는 사실로 인정받더라도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더구나 그 분쟁과 근거리에 있는 사람 중 법관이 인정한 사실을 진실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왜 이처럼 제도적으로 인정받는 진실과 그분쟁의 근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진실이 다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일까?

변론주의는 근, 현대 민사소송을 관통하는 대원칙으로 '너는 사실을 말하라. 그러면 나는 권리를 주겠다'는 법언을 통해 잘 드러난다. 즉, 분쟁을 처리하는 과정에 있어 무엇이 진실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 수집 문제를 분쟁 당사자에게 맡기는 것이 변론주의의 요체인 것이다.

변론주의가 민사소송의 원칙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분쟁당사자에게 사실을 파악하기 위한 자료의 수집을 맡겨 놓으면 모든 당사자는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자료를 수집하여 제출할 것이고, 그 결과 모아진 자료를 합리적 판단력을 가진 법관이 살펴보면 진실이 드러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한편, 변론주의의 요체인 사실 파악을 위한 자료 수집책임의 대부분을 당사자가 부담한다는 점은 형사소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민사소송, 형사소송을 가리지 않고 법관이 진실을 파악할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는 분쟁의 당사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를 제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리라는 것과 분쟁의 당사자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자료를 제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문제는 위 두 가지 전제 중 두 번째 전제가 현실에서는 구현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나는 2005년 말경 곧 광주지방법원으로의 전출 인사명령이 날 것을 예상한 채 해남지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진도군 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하고 있었는데, 진도군에 거주하는진도군 선거관리위원들로부터 그 무렵 실시된 진도 관내 농협 조합장 선거가 무효인지 여부와 관련된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그런데, 인사발령이 나기 직전에 위 선거가 무효임을 이유로 그 당선자의 직무집행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사건이 해남지원에 접수되었고, 그 주심 판사가 나로 정해졌다.

가처분 사건은 신속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나는 재판장과 위가처분 사건에 관하여 어떻게 처리할지를 의논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내가 진도군선거관리위원들로부터 이구동성으로 전해들은 사실과 재판기록에 있는 서류들이 가리키는 사실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애당초 전해들은 이야기가 없다면 사건에 대한 결정이 쉬었을 테고 그럴 경우에는 당연히 재판기록에서 파악된 사실관계를 기초로 결정을 하면 되었을 일이다. 그러나,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있고, 그것이 매우 구체적인 것이었는지라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사실 관계와는 달리 구성된 재판기록이 가리키는 사실관계에 의지한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시급한 처리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알고 있는 사실을 애써 도외시한 결론을 내릴 수 없었던 나는 재판장과의 상의 끝에 내가 광주로 떠난 후에 내 후임자가 그 사건을 처리하는 것으로 사건 처리 방향을 정하고 해남지원을 떠나왔다. 그 사건의 결론에 대해 그 후 알아보지는 않았으나, 아마도 그 사건은 사건기록이 가리키는 방향의 사실관계에 기초한 결론이 내려졌을 것이다. 변론주의란 그런 것이니까. 이런 경험이 나만의 것은 아닐 텐데도 여전히 법관들은 변론주의를 도저히 변경할 수 없는 금과옥조로 여긴다. 나는 언젠가 동료 법관들과 재판제도에 관해 공식석상에서 논의하는 과정에서 변론주의가 아직도 분쟁의 진실을 밝히기에 유효적절한 수단인지 모르겠다면서 법관이 진실을 알기 위해 정보원을 보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을 하는 방법까지도 허용되어야만 법관이 진실에 보다 가까이 갈 수 있고, 그래야만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확보되지 않겠냐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당시 내 말을 듣고 그 자리에 있던 법관들이 지었던 뜨악한 표정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만큼 변론주의는 법관들의 뇌리에 강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변론주의가 진실을 파악하기에 적합한 수단이 되지 못한다면 오랜 기간 동안의 관성에서 벗어나 그것을 대체할 원칙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나는 그것이 내가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세세하게 검토해야 할 일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사법서비스의 소비자가 재판을 신뢰하는 데 보다 효율적인 도구를 만들 수 있다면 우리는 주저함 없이 그 작업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김승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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