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걸어 다니는 사람이 걷기에 좋은 길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3.11.05. 17:18

내가 차가 없다고 하면 사람들은 놀란다. 운전면허조차 없다고 하면 더 놀란다. 요즘 세상에 면허 없고 차도 없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차를 한 대라도 줄이는 것이 세상에 도움 되는일이라 생각해서 지금껏 차 없이 살고 있다. 그렇게 작정하고 나니 차 없이도 살 수 있는 방식으로 살게 됐다. 가끔 온라인쇼핑을 하긴 하지만 대형 상점은 거의 가지 않고 웬만한 것은 다 집 앞 가게에서 산다. 집도 직장 근처에 마련해 걸어 다닌다. 시내를 돌아다닐 일이 없지 않지만, 필요할 때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다.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가용 차를 몰고 다니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차도가 늘어났고 인도가 줄어들었다. 걷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이상한 길들이 많아졌다. 차도 위에도, 인도 위에도 차들이 늘 가득하다. 도시 전체가 주차장으로 변했다. 그런데도 주차할 곳이 부족해서 주차가 어려운 가게에는 손님이 잘 가지 않는다. 사람들이 차로만 이동하고 잘 걷지 않아서 동네의 작은 가게들이 많이 사라졌다. 그 대신 차 없이는 갈 수 없는 대형 매장들이 곳곳에 생겨났다.

사람들이 자가용 차를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보다 편리하기 때문이다. 저렴해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대중교통수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차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핵심은 편리함이다. 택시는 빠르지만 운전기사가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고 불친절하다. 버스는 가까운 거리도 돌아가는 데다가 승차감은 엉망이고 일찍 끊긴다.

지하철은 타고 갈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돈이 들더라도 기꺼이 자가용 차를 몰려고 한다. 광주의 상황이 그렇다.

게다가 비싼 차를 모는 것이 부와 성공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현실은 대중교통수단의 이용을 '없어' 보이게 만든다. 실제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은 길거리를 걸어 다니지 않는다. 지위가 높을수록 자가용 차를 타며, 그것도 더 비싼 차를 탄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처럼 고급 승용차를 타고 싶어 한다. 궂은 날씨에도 신발 젖을 염려 없이 다니고 싶어 한다. 바로 이런 욕구가 대형쇼핑몰에 대한 요구로 이어진다. 재래시장은 걷는 사람의 시장이고, 대형쇼핑몰은 차를 타는 사람의 시장이다.

광주시가 걷기 좋은 길을 조성하려고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반가운 소식이다. 늘 걸어 다니는 사람으로서 정말 환영한다. 그러나 일부 도로만 보기에 걷기 좋게 넓히는 데에서 그치지말고, 근본적으로 교통 생태계를 자가용 승용차 중심에서 대중교통수단 중심으로 바꿔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려면 우선 정책 결정에 관련된 사람들부터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고 걸어 다녀야 한다. 평소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걷기 좋은 길이 어떤 길인지를 알 수 없고, 왜 사람들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는지를 알 수 없다.

광주 인구의 2명 가운데 한 명이 승용차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자동차 중심의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마치 수도권의 인구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으면서 민주적 의사결정 자체가 수도권 편향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승용차 보유자가 성인 인구의 절반을 넘은 광주에서 정책 결정 자체가 승용차 보유자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긴다. 대중교통수단을 활성화하기 위해 자가용 승용차 이용을 불편하게 만드는 정책을 과연 광주시가 관철할 수 있을까?

선진 도시에서 사람들이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수단을 더 많이 이용하는 이유는 그것이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보다 더 빠르고 편리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이 이용하며, 그래서 별로 '없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편익을 광주의 대중교통 수단이 제공하지 못한다면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사람은 계속 승용차를 이용할 것이고, 대중교통수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더라도 결코 승용차에서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사회적 약자만 이용하는 대중교통수단은 더욱 '없어' 보일 것이고, 그래서 더욱 외면받을 것이다. 과연 이 흐름을 우리는 바꿀 수 있을까.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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