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말 없는 말

@정지아 소설가 입력 2023.02.26. 13:07

1985년 어느 봄날 소설 합평 시간이었다. 내가 다닌 학교는 안성에 있었고, 교수님은 당연히 서울에 살았다. 서울서부터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온 교수님은 자리에 앉지도 않은 채 주섬주섬 007 가방을 열었다. 교수님이 꺼내든 것은 그날 합평할 학생의 소설. 교수님은 소설 뭉치를 휙 던지며 말했다.

"이거이 뭐여!"

그리고 당연한 듯이 몸을 돌려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우리는… 얼어붙었다. 긴 침묵이 흘렀고 누군가 몸을 일으켰다. 이거이 뭐여를 쓴 장본인이었다. 남은 우리는 주섬주섬 펼쳐놓았던 책이며 노트를 챙겨 합의한 바도 없건만 내리를 향했다. 내리는 중앙대 안성 캠퍼스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연스럽게 형성된 대학가, 그러니까 술집이 있는 동네였다. 우리는 말없이 각자 고민했다. 왜 이거이 뭐여라고 했는지를. 왜 그 소설이 합평할 가치조차 없는지를.

80년대의 강의실 풍경은 대체로 그러했다. 교수들은 친절하지 않았다. 천하의 김동리 선생의 합평은 딱 한 마디였다. 소설에 따라 그 한 마디는 조금씩 달랐다. 1. 응, 너는 소설 쓰면 되겠다. 2. 너는 출판사 가면 되겠다. 3. 무언. 우리는 수업이 끝나면 매번 왜 1이고 왜 2인지 3은 또 무슨 말인지를, 말 없는 말을 머리에 쥐가 나도록 고민해야 했다.

이거이 뭐여,를 외친 전설의 교수님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은사님, 내 영혼의 아버지다. 영혼의 아버지로 생각하지만 많은 말을 나누지는 않았다. 안 봐서? 아니다. 제일 자주 본다. 일 년에 한두 번씩 해외여행도 다닌다. 그런데 내가 등단했을 때도 책이 잘 나갈 때도 딱 한 마디만 하신다. 잘했다. 끝! 스무 살에 스승을 만나 환갑이 될 때까지 스승이 가장 구체적으로 한 말은 이렇다.

"문단이란 데 나다니면 사람 버린다."

왜 그런지 말씀해주지 않았고, 묻지 않았다. 오랜 시간 지나고 스스로 깨달았다. 이름난 작가들과 어울리다 보면 제가 그 급인 줄 착각하게 된다는 것을. 그러지 말라 경고하신 것임을. 스승의 말 없는 말은 매정할 때가 많다. 그러나 기저에 깔린 것은 나를 향한 한없는 애정이다. 내가 혹여 자만할까, 혹여 망가질까, 스승은 혜안으로 꿰뚫고 보고 딱 한 마디만을 한다.

86년 3월, 개학날이었다. 나는 그전까지 학보사 기자였고, 장학금을 받았다. 학보사 선배들이 줄을 세워 놓고 매타작을 하기에 그날로 때려치웠다. 호기롭게 때려치우고 보니 등록금이 문제였다. 내 부모는 가난한 농부였으니까. 혹 장단기 대출을 받을까 싶어 과사무실로 갔더니 나보다 힘들어 보이는 동기들이 줄 지어 서 있었다. 그 시절 장기대출은 학년 당 한 명, 단기 대출은 세 명만 가능했다. 코를 석 자나 빼고 돌아서는데 은사님이 걸어오고 있었다.

"등록은 했냐?"

그게 은사님과 내가 사적으로 나눈 첫 대화였다. 생각이 복잡했다. 아버지는 빌리기의 천재, 어디선가 빌릴 수는 있을 터, 어머니는 늘어난 빚에 잠을 설칠 터, 이건 등록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닌 것인가, 뭐 그런 생각을 하느라 답이 일이 초 늦어졌는데 은사님이 한 마디 툭 던지고 쿨하게 갈 길로 갔다.

"두어 시간 뒤에 조교한테 가봐라."

두어 시간 뒤에 조교에게 갔더니 장기대출 서류를 주었다. 망설였다. 한 학년에 하나 나온 것을 이렇게 새치기해도 괜찮은 것일까, 썩 내키지 않았다. 나의 말 없는 말을 조교가, 그 유명한 평론가 남진우, 이십 대의 남진우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과에 배정된 거 아니야. 신교수님께서 학생과장 협박해서 하나 얻어오셨어. 그러니 가져가도 돼."

그 시절이 그립다. 요즘의 말은 너무나 구체적이고 명확하다. 누구나 자기 요구를 똑부러지게 말한다. 행간을 읽을 필요조차 없는 말이 대부분이다. 정확해서 좋은데 이상도 하지. 말 줄임표 많던,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던 말이 많았던 그 시절이,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한 말을 내 마음처럼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던 그 시절이 나는, 자꾸만, 그리워진다. 정지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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