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다음 꼰대'와 '다음 소희'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3.02.19. 15:20

'네다꼰'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직접 듣거나 써본 적은 없다. 어디까지나 글로 배운 말이다. '네, 다음 꼰대!'의 줄임말인데, 누가 일장 훈계를 늘어놓으면 그것을 세상 흔한 꼰대질로 요약하며 거부할 때 사용하는 인터넷 언어라고 한다.

'다음 소희'라는 영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왠지 모르게 이 말이 떠올랐다. 누군가에게 훈계질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수많은 '꼰대'들, 그리고 한 명의 꼰대를 물리치면 또 다른 꼰대가 나타나듯이, 수많은 '소희'들이 줄을 서 있고, 한 명의 소희가 사라지면 다음 소희가 그 자리에 들어서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며칠 전, 그 영화를 봤다. 영화는 실업계 고등학교 3학년생인 소희가 통신사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면서 겪는 일을 소재로 하고 있다. 2017년 전주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배경이라고 한다. 내가 시사 방송을 진행할 때 한 번 다루었던 문제였다.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구조적 원인을 전문가와 함께 짚어봤던 기억이 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모두 사회의 각 부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되어 작동하는 이 구조를 탓한다. 그 안에서는 누구도 자유롭지 않고, 그러므로 누구에게도 책임이 없다. 모든 책임은 복잡한 구조에 있다. 우리는 구조 안에서 그저 주어진 역할에 충실할 따름이고 윗사람이 시키는 일을 할 뿐이다.

우리 어른들이 '세상'이라고 부르는 이 구조 안에서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이 때로는 부당함을 당돌하게 지적하고 때로는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호소할 때, 어른들은 아이들의 말을 외면하면서 마치 콜센터 직원들이 정교한 회로도를 닮은 고객응대 매뉴얼에 따라 '사랑하는 고객님'을 붙들어두기 위해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며 협박도 하고 상품권을 주겠다며 회유도 하듯이 이렇게 말한다. '네가 계약서에 서명했잖아', '원래 세상이 그런 거야', '다들 그렇게 살고 있어', '너도 결국 돈 더 받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냐', '네가 이러면 네 후배들이 피해를 보게 돼', '그러니까 조금만 더 참자'.

소희의 자살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배두나는 소희처럼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와 현장에서 일하다가 부당한 대우를 참지 못해서 욱하는 마음에 가끔 사고를 쳤다는 청년에게 이렇게 말한다. "다음에 또 욱할 때는 누구에게라도 말해. 경찰에 신고해도 돼. 나한테 말해도 좋아. 괜찮아." 그러자 청년은 오랫동안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리며 고맙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청년이 다음에 용기를 내 경찰이나 주위의 어른들에게 자신의 사정을 말할 때, 어른들은 과연 뭐라고 대답할까? 모두 소희에게 한 것과 똑같은 말만 늘어놓지는 않을까?

콜센터의 실습 직원 소희는 통신사의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한 '방어팀'에서 일하며 한때 실적 1위까지 했다. 그런 소희가 '현장실습'이라는 정부-산업-학교 공모체계에서 벗어나려고 하자 어른들은 자신이 마치 '방어팀'에 속한 직원이라도 되듯이 그 체계를 방어하기 위해 노력한다. 어른들의 철통 방어에 가로막힌 소희가 할 수 있는 일은 부당함을 받아들이며 살거나, 아니면 온갖 평가의 기준이 되는 지표의 모수(母數)에서 스스로 빠져주는 것이었다.

학교에도, 콜센터에도, 교육청에도 걸려 있는 성과표는 '너 하나 때문에 조직의 성과 지표가 나빠지면 조직에 속한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말하면서 조직의 '성과'가 되기를 거부하는 사람을 압박한다. 그리고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어 하지 않는 착한 사람은 결국 자신을 모수에서 제거하는 선택을 한다. 학교도, 회사도 떠날 수 없었던 소희는 그래서 말 그대로 극단적 선택을 한다.

나같이 배운 사람들이 구조적 원인을 들먹이면서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때, 어쩌면 아이들은 '네, 다음 꼰대!'라고 말할지 모른다. '다음 꼰대'가 되지 않으려던 형사 배두나는 경찰 조직의 관료적 대응과 '현장실습' 체계를 유지하려는 어른들의 방어적 태도에 가로막혀 좌절하고 결국 소희가 마지막에 앉았던 그 자리에 앉게 된다. 배두나는 과연 '다음 소희'가 되었을까? 영화의 열린 결말은 그것이 결국 우리에게 달린 문제라고 말하는 듯하다.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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