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오동나무의 세월

@정지아 소설가 입력 2022.05.22. 14:56
정지아 소설가

고향 집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태어난 집도 아니고 유년을 보낸 집도 아니다. 열일곱부터 스물여섯까지 고작 십 년도 안 되는 세월을 살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고향, 하면 그 집이 떠오르는 건 우리 가족이 난생처음 가져본 집이라서일 것이다. 그전까지 우리 가족은 월셋집이나 전셋집을 전전했다. 집을 사고 어머니는 사다리에 올라 콧노래를 부르며 반 토막 난 놋숟가락으로 부엌 천장의 그을음을 닥닥 긁어냈다. 아버지는 손바닥만 한 마당에 내가 좋아하는 파리똥(보리수)이며 석류를 심고, 마당가에는 앵두나무를, 뒤란에는 오동나무를 심었다. 멋대가리 없는 오동나무는 뭐하러 심냐고 했더니 아버지가 그랬다.

"니 시집갈 제 장 한나 짜줄라고 근다."

그때 내가 열일곱, 오동나무가 아무리 빨리 자란다 해도 그 시절 결혼 적정 연령이 스물서넛이었으니 턱도 없는 소리였다. 예전에는 딸이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고, 아들이 태어나면 소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오동나무를 심는 것으로 자기 집 가진 즐거움을 표현한 것이리라.

아무도 살지 않는 집에는 잡초만 무성했다. 파리똥과 석류, 앵두나무는 물론 뒤란의 오동나무도 흔적조차 없었다. 오동나무는 성장 속도가 빨라 십 년 정도면 키가 십 미터를 넘기고, 둘레는 한두 아름에 이른다. 자르지 않았다면 지금쯤 수령 사십 년이 되었을 테니 그 크기가 짐작도 되지 않는다.

그제야 최근 들어 오동나무를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예전에는 시골 어디서나 흔하게 보던 나무였다. 오월 초쯤 피어 한 달 넘게 가는 연보랏빛 꽃이 그닥 예쁘지 않은 데다 이용 가치가 없어 다 베어낸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가을만 되면 아이만 한 잎사귀를 뚝뚝 떨궈 마당을 어지럽히는 탓에 오동나무를 볼 때마다 툴툴거렸다. 그 큰 잎사귀가 들이나 산에서 놀던 아이들에게는 유일하고 소중한 우산이었다. 오동나무 구박하는 어머니도 언젠가 모내기를 하다 그 잎사귀 덕에 비 젖은 생쥐꼴을 면하기도 했었다.

아름답지 않거나 쓸모없는 것들은 살아남기 어려운 시절이 된 듯하다. 개망초나 코스모스 무성하던 길가에는 철 따라 이름도 잘 모르는 어여쁜 꽃들이 질서정연하게 심겨 있다. 더 어여쁜 건 사실이다. 그래도 나는 간혹 슴슴한 된장국 같던 볼품없는 것들이 그립다.

세상에 쓸모없는 건 없다. 지금 당장 누군가에게 쓸모없는 것이 있을 뿐이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여자들은 간혹 노란 고무줄을 찾는다. 아무도 보는 이 없으니 머리 질끈 묶고 편히 놀고 싶은 것이다. 긴 머리 여성들은 씻을 때도 고무줄이 필수다. 그 고무줄, 청소하면서 보일 때마다 일고의 여지도 없이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나는 짧은 머리라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그 고무줄이 긴요하게 쓰인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고무줄 없이 세수하다 긴 머리를 다 적신 누군가 노란 고무줄을 한 묶음이나 사다 놓았다.

오동나무도 한때는 쓸모가 많았다. 무늬가 예쁘고 견고하여 장롱을 짜는 데 적격이었고, 오동나무로 가구나 악기를 만들면 천년을 간다 하여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만드는 재료로 쓰이기도 했다. 요즘은 가구도 악기도 대량생산된다. 오동나무가 대량생산에는 적절치 않은 모양이다. 그러니 천지사방 쑥쑥 잘 자라던 것들을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일 테다. 쓸모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인간의 욕망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한동안 사람들은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기술에 빠져 엘피판이니 씨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쓰레기 취급했다. 디지털의 시대가 반세기 남짓, 사람들은 슬슬 아날로그에 향수를 갖기 시작했다. 엘피판이 고가에 거래되고, 심지어는 워크맨을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 쓸모없다고 해서 쓰레기 취급해서는 아니 될 일이다. 새로운 것은 새로운 대로 낡은 것은 낡은 대로, 예쁜 것은 예쁜 대로 못난 것은 못난 대로 언젠가는 다 쓰일 데가 있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누구나 다 언젠가 쓰일 데가 있는 소중한 존재들이다.정지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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