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누구에게나 연습은 필요하다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2.04.10. 13:14

베를린에는 그라피티가 참 많다. 나로서는 그 의미를 도무지 알 수 없는 괴상한 글자들이 도시 곳곳에 그려져 있는데, 사람이 어떻게 저런 곳에까지 가서 낙서를 했을까 싶은 곳에도 그림 아닌 그림이 그려져 있다. 형형색색의 꼬불꼬불한 글자들 가운데 어떤 것은 예술작품처럼 보이지만 어떤 것은 그저 수준 낮은 낙서처럼 보인다.

유학시절 하루는 친구와 거리를 걷다가 수준 미달의 그라피티를 보고 내가 비웃었더니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누구에게나 연습은 필요한 법이니까." 그렇다. 누구에게나 연습은 필요하다. 처음부터 바스키아나 뱅크시가 될 수는 없다. 그들에게도 습작의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벽에 낙서를 잘 하기 위해서도 일단 벽에 낙서를 해야 한다. 그런데 벽에 낙서를 하려면 낙서할 벽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어쩌면 자신의 벽에 낙서하는 잠재적 예술가를 참아내는 너그러운 건물주가 미래의 그라피티 예술가를 낳는 어머니인지도 모른다.

정치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정치 연습은 어디에서 해야 할까? 청소년기에 학교에서 경험하는 학생회 활동이 그런 정치 연습이 될 수 있을까? 자치의 연습이라는 측면에서 비슷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교실 안의 상황과 실제 정치 현실은 너무 다르고, 학생회 임원이 하는 일과 직업정치인이 하는 일도 너무 다르다. 학생 자치활동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직업정치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경험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나는 기초의회가 정치를 연습할 좋은 장소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웃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이 공동의 삶을 관리하는 행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직접 관찰하고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기초의회가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 야심 있는 정치인에게는 조금 아쉬울 수 있겠지만, 그만큼 부담이 크지 않은 것이 초보 정치인에게는 장점일 수 있다.

물론 이 장점을 악용해서는 곤란하다. 2019년 광주 서구의 한 클럽에서 일어난 구조물 붕괴 사고는 일반음식점에서 춤을 출 수 있도록 예외를 허용한 기초의회의 어설픈 결정이 낳은 참사였다. 아무리 작은 권한도 잘못 쓰이면 사람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정치인들은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시민단체에서 정치와 행정을 감시하면서 정치적·행정적 결정에 내포된 위험들을 파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전문성을 갖춘 직업정치인은 길러지는 것이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기초의회가 미래의 직업정치인을 위한 훈련과 연습의 장소로서 기능할 수 있으려면 기초의회의 주인인 유권자들이 조금 더 너그러워져야 한다. 젊은 신인 정치인들을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고 해서 못 미더워하면 안 된다. 기회가 주어져야 경험을 쌓을 수 있고, 경험이 쌓여야 전문가도 될 수 있다.

기초의회가 더 많은 사람이 정치를 경험할 수 있는 장이 되려면 기초의회의 규모가 지금보다 더 커져야 할 것이고 임기는 더 짧아져야 할 것이다. 정당공천을 없애고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춘 사람을 대상으로 추첨하여 선발하는 것도 좋겠다. 겸직을 허용하고 수당만을 지급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겸직을 허용하더라도 의회의 규모가 충분히 크다면 사익을 관철하려는 일부의 노력은 다른 노력에 의해 저절로 상쇄될 것이다. 다행히 2020년 12월 9일 지방자치법이 개정되어 이제 자치단체의 기관구성을 주민 결정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원한다면 기초의회를 모든 시민이 정치를 경험하는 장으로 만들 수도 있고, 미래의 직업정치인을 훈련시킬 전문학교로 만들 수도 있다.

최고의 연습은 실전이라는 말이 있다. 정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는 직업정치인이 필요하다. 그 정치인이 전문성을 갖추려면 어디에선가 일단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 기초의회는 실패가 가져올 위험이 그나마 가장 적은 곳이다. 그곳에서 미래의 직업정치인이 자신의 경력을 시작할 수 있으려면 당선될 수 있어야 하고, 그리하여 정치를 자신의 직업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있으려면 우리가 첫 걸음을 내딛는 정치인들에게 조금은 더 너그러워져야 한다. 누구에게나 연습은 필요한 법이니까. 물론 대통령에게 그렇게 너그러워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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