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디지로그형 인재가 경쟁력이다

@박성수 광주전남지역혁신플랫폼 총괄운영센터장 입력 2022.03.27. 15:00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수, 그리고 문화부 장관, 이 정도면 누구인지 짐작하시리라고 믿는다. 바로 이 시대 지성이자 대표 석학으로 불리던 이어령 선생이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새해 벽두로 기억된다. 그날 아침 신문에서 이어령 교수의 칼럼을 읽으며 더없이 생소했던 '디지로그'란 용어를 처음 접했던 그때가 생각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문명융합을 외치는 디지로그 선언! 바로 얼마 전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난 그분의 글들을 다시금 읽어보니 선견지명을 갖고 계신 교수님의 혜안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6년 정월, 디지로그를 가지고 꼬박꼬박 30회분을 연재하신 집념에다 뛰어난 필력을 갖고 계신 그분의 열정에 필자는 그만 매료되고 말았다.

그럼 그분은 왜 그렇게 디지로그를 강조하셨을까. 잘 알다시피 우리가 사는 세상이 날로 디지털화되면서 편리함, 신속함에 익숙해지게 되다 보니 인간 고유의 감성이 자신도 모르게 소홀해지는 경우들을 흔히 보게 된다. 그러기에 이교수님이 제안한 디지로그 용어는 우리 현실에 참으로 설득력을 갖고 있어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특히 언젠가 들려주신 어느 회사의 이야기는 디지로그의 필요성을 실감이 나게 느낄 수 있는 사례였다. 사연인즉, 모회사는 신제품 발표회를 개최하면서 업계관계자들에게 편하게 이메일로 보내고 말았는데, 막상 행사 당일 60명 중 15명만이 참가했다고 한다. 이를 지켜본 사장은 그 자리에서 평소 잘 아는 고객들에게 여기저기 전화를 했더니 17명이나 헐레벌떡 나타났다고 한다. 아날로그적인 힘이 위력을 발휘한 생생한 사례가 아닌가 싶다. 디지로그야말로 양자택일 (either-or)의 선형적 사고 아닌 둘을 모두 포용하는 순환적 사고 (both-and)라는 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무더운 여름날에 모기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바람을 들어오게 하는 방충망이야말로 우리 한국인들의 디지로그 슬기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에서 내내 인사관리를 강의하고 연구해 온 필자로서는 디지로그를 아는 인재야말로 경쟁력이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필자의 교재 이름도 '디지로그시대의 인적자원관리'로 명명하였다. 물론 필자의 요청을 받은 이어령 교수님께서 디지로그 사용 허락을 흔쾌히 해주셨기에 졸저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장수하는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언젠가 한 번은 이교수님께 강의 요청을 드렸더니, 경영학 교수들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며, 두 시간 넘게 열강을 하신 적이 있다. 지금도 확연히 기억나는 이야기는 '엇비슷' 이라는 우리말을 알면 한국인이야말로 디지로그형 인재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엇은 1과 0의 디지털과 같고 비슷은 끊을 수 없는 연속체의 아날로그와 같기에 이 둘을 같이 보게 되니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즐겨 쓰는 순수한 우리말 가운데 나들이, 나들목, 미닫이, 여닫이 등이 그렇단다. 이러한 디지로그 특성이야말로 말로 한국인을 기분 좋게 만드는 키워드라고 강조하셨던 대목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일찍이 감성지능(EQ)으로 유명했던 다니엘 골먼 교수는 상대방의 감정과 의도를 잘 알고 타인과 더불어 잘 어울리는 능력을 사회지능(SQ)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백성의 간절한 염원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했던 세종대왕이야말로 조선의 임금들 가운데 가장 사회지능이 높은 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낫을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헤아렸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에는 한자가 지배계층의 전유물로 정보를 독점하는 수단이 되었기에 한글은 기득권을 갖는 양반들로부터 강한 반대에 직면하게 되었고, 끝내는 본인의 목숨조차 위협을 받으며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분이 아니던가.

한편 온갖 고생을 하며 천신만고 끝에 대동여지도를 만들어 서민들에게 인쇄해 나눠 준 고산자 김정호 선생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이분 역시 높은 사회지능을 갖고 서민들과 더불어 살았었기에 위대한 인물반열에 두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디지털 기술이 날로 성숙해 가는 현대 정보화 사회에서 더없이 필요한 것은 바로 아날로그의 기술과 감성을 지닌 인재상이 아닐까 싶다. 요즈음처럼 첨단기술과 한국문화를 융합하는 디지로그의 발상이야말로 한국 사람의 경쟁력을 키워 주는 소중한 자산이라는 점에서는 더이상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박성수 전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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