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변 풍광이 뛰어난 섬진마을은 섬진강의 유래가 된 두꺼비 전설을 두 개씩이나 간직하고 있다. 섬진강은 예전에 모래내, 다사강, 두치강으로 불려오다 고려 우왕때 섬진강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 내력은 이렇다. 고려 우왕때 왜구들이 광양방면으로 침입하자 진상면 섬거마을에 살던 두꺼비 수십만마리가 5㎞나 떨어진 다압면 섬진마을 나루터까지 떼를 지어 몰려와 울부짖어 왜구들이 놀라서 달아난 일이 있었는데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써서 섬진강이라 했다.
이런 역사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섬진마을엔 조선후기때 수군들이 머무르면서 세웠던 돌두꺼비 형상의 좌대가 17개가 있었으나 지금은 4개만 남아 있다. 섬진강변에 건립된 수월정 옆에 고스란하다. 섬진강변에 위치한 수월정은 청매실농원에서 걸어서 5분거리에 있다.
‘처녀와 두꺼비 전설’도 있다. 마음씨 고운 처녀가 두꺼비를 돌보며 3년 동안 같이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엄청난 비가 쏟아져 강물이 불어나 마을이 떠내려갈 때 처녀도 함께 떠내려 갔다. 이때 두꺼비가 나타나 처녀를 등에 업고 강기슭을 향해 힘껏 헤엄쳐 처녀를 살렸다. 그러나 두꺼비는 한껏 힘을 쓴 탓에 끝내 죽고 말았다. 동네사람들은 처녀가 두꺼비를 타고 도착한 곳을 두꺼비 나루라는 뜻으로 섬진이라 불렀다고 한다. 섬진나루터에는 섬진강유래비, 두꺼비 조형물, 두꺼비 모형의 작은 공원이 있다.
광양=이승찬기자 lsc610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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