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시장, 다양성·확장성 ‘호재’
한국, 유아용 틈새시장 노려 성장
광주 3D 창·제작 활발…국내 3위
경기침체 영향, 성장세 주춤
“어린이 중심서 장르 다변화 필요”

지난 2월 개봉한 극장 애니메이션 '퇴마록'이 40만 관객을 넘기며 소소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해외시장이 가파른 성장을 한 것에 비해 3D어린이 애니메이션을 위주로 성장한 국내시장은 한계에 부딪힌 상황이다. 하지만 오컬트 소설을 원작으로 한 '퇴마록'의 선전은 애니메이션 팬들뿐만 아니라 업계 전체에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 있다. 국내 3위 수준 규모를 갖춘 광주 지역 업체들도 현 상황을 '성장통'으로 인식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퇴마록'의 흥행을 계기로 광주 애니 산업의 현 상황을 진단하고,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세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 확장하는 세계시장, 국내는 여전히 유아용에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잠시 부침을 겪었으나 OTT 시장의 성장으로 활로를 찾았다. 관객들이 극장을 찾기 어려워지면서, OTT를 통한 선공개나 단독 공개 작품이 늘어난 것이다.
특히 2021년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아케인'은 당시 넷플릭스 톱TV쇼 부문 1위를 달리던 '오징어게임'을 끌어내리고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같은 성과에 고무된 OTT 플랫폼들은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렸다.
엔데믹 이후에는 극장 애니메이션들도 다시 흥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2023년 국내에서는 해외 애니메이션들이 수백만의 관객을 불러 모으며 해외영화 흥행 1~3위를 휩쓸기도 했다.

최근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이 유통 경로, 장르, 관객 분야에서 '다양성'과 '확장성'이라는 호재를 맞이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2003년 '뽀로로'가 3D어린이 애니메이션이라는 틈새 시장을 공략한 이후 별다른 전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뽀로로'가 전세계 130개국에 수출되고, '또봇'과 '터닝메카드'가 완구 판매로 뛰어난 실적을 올리는 등, 유아용 작품들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산업이 1조 가까이 성장한 것은 사실이나 세계 시장에 비하면 성장세가 둔하다.
극장에서는 10년 넘게 100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이 없다가 지난해서야 '사랑의 하츄핑'이 124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불모지에서 국내 3위까지 성장한 광주
문화콘텐츠 산업을 집중 육성하던 광주도 애니메이션 산업 성장의 흐름에 뛰어들었다.
2004년부터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획·지원 사업을 펼쳤으며 2005년부터 해마다 애니메이션 육성지원금으로 28억원을 투자했다. 그 결과 2004년 기준 92명이던 종사자는 2022년 322명으로, 20억원이던 매출액은 같은 기간 283억원으로 증가했다. 2006년 15개이던 사업체는 2022년 39개까지 늘었다. 전체 사업체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돼있으나 타지역에 비하면 유의미하게 국내 3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2010년부터는 광주지역 업체들의 작품들이 TV에서 방영되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마로스튜디오의 '우당탕탕 아이쿠', 아이스크림스튜디오의 '두다다쿵', 몬스터스튜디오의 '브레드 이발소', 퍼니플럭스의 '출동!슈퍼윙스'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파이어로보'와 '쥬라기캅스', '다이노맨' 등을 선보인 스튜디오버튼은 2019년 전국 20위권의 매출을 기록하고, 광주 콘텐츠 기업으로는 최초로 광주에 사옥을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시장에서의 유아용 애니메이션 인기에 힘입어 광주지역 업체들도 함께 성장할 수 있었음에도 최근 이들의 전망은 아주 밝지만은 못하다. 경기침체로 인해 완구 소비가 점차 줄어드는 상황에서, 국내 애니 제작을 주도하는 방송사와 완구사도 소비자에게 호응이 높은 상품에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다. 매출은 증가하고 있으나 신규 제작 투자가 줄면서 문을 닫거나 인력을 줄이는 업체도 늘고 있다. 실제 2023년 광주지역 애니메이션 업체 매출액은 382억원으로 크게 늘었으나, 종사자 수는 278명으로 줄었으며, 사업체 수는 21개로 줄어 부산과 제주(27개)에 3위 자리를 내줬다.

김호락 스튜디오버튼 대표는 "예전에는 부모님들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장난감을 종류별로 사줬다면 최근에는 가장 인기있는 장난감만 사주는 분위기다"며 "대부분의 업체들이 힘들어하고 '티니핑' 정도 돼야 사업 확장이나 다음 모델 준비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규 제작보다는 기존에 잘나가던 작품과 IP를 안전하게 활용하는 추세"라며 "어린이 애니메이션의 호황기를 지난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는 다른 장르를 개척해야 할 시기다"고 말했다.
임창균기자 lcg051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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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기회'···발상 전환 통해 'K-애니' 이끈다 지난달 31일 애니메이션 '나 혼자만 레벨업'을 시청하며 환호하는 해외팬들의 모습.유튜브 채널 'The Unboredered Anime Experience' 광주는 다양한 지원과 정책들을 통해 다양한 업체를 발굴하고 애니메이션 산업 규모를 국내 3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유아용 위주로 발전한 국내 시장은 출산율 저하라는 악재에 부딪혀 세계 시장과 격차가 벌어지고 있고, 광주 역시 인프라 측면에서 어쩔 수 없는 지방의 한계를 드러냈다.지금 필요한 것은 기회로 만드는 발상의 전환과 장기적인 비전을 바탕으로 한 꾸준한 지원이다. 유아용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고 이를 토대로 애니메이션 산업도 새로운 기반을 다져야 한다. 국내에서는 극장판 애니메이션 '퇴마록'이 전환의 신호탄을 올렸으며, 광주에서도 변화를 위한 몸부림이 포착되고 있다. 기존의 유아용 애니메이션에 지역적 소재를 입히거나, 성인 관객을 위한 추억의 작품을 리메이크하거나, 혹은 전통적인 산업 구조를 탈피해 캐릭터를 먼저 내세우는 등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다양한 장르 성장…흥행 가능성 높인다.수백명의 외국인들이 객석 앞에 비치는 화면을 보며 환호성을 내지른다. 축구경기를 단체로 관람하는 팬들 같지만 이들이 보는 것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나 혼자만 레벨업(나혼렙)'의 시즌2 마지막 화다. 이들의 모습을 담은 유튜브 영상은 최근 국내 여러 커뮤니티를 통해 알려졌다.'나혼렙'은 수준 높은 작화와 긴장감 넘치는 액션으로 전세계 애니메이션 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일본에서 제작했으나, 국내 작가의 웹소설이 원작이며 웹툰을 통해 성공을 거둔 것이 먼저다. 우리나라 콘텐츠가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것이 증명됐으나, 유아용 애니메이션 위주인 우리나라에서 제작했다면 같은 성공을 거뒀을지, 충분한 제작비를 확보했을지도 의문이다.다양한 장르의 애니메이션 우리나라에서 성공하기 시작해야, '나혼렙' 같은 훌륭한 IP(지적재산권) 활용이 더욱 쉬워진다. 그런 면에서 1천만부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퇴마록'의 등장은 업계 전반에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놓고 있다.지난 2일 개봉에 50만명 가까운 관객을 모은 극장판 애니메이션 '퇴마록' 스틸컷.로커스 제공'퇴마록'은 지난 2월 개봉 이후 50만명 가까운 관객을 모았는데, 유아용이 아닌 오컬트 판타지 장르로 이룬 성적이라 더욱 고무적이다. 특히 적은 예산으로 훌륭한 연출과 액션을 선보인 덕에, 추억을 되새기러 온 30~50대 원작팬뿐만 아니라 해외 애니메이션으로 눈이 높아진 10~20대도 입소문을 듣고 극장을 방문했다.여러 애니메이션 업계 관계자들은 '퇴마록'이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 전환의 신호탄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유아용이 아닌 장르에서도 성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만큼, 향후 다양한 장르에 대한 투자도 이어질 수 있다.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배경으로 한 '다이노맨: 무등산 공룡의 탄생'스틸컷.스튜디오버튼 제공◆진화를 위한 광주 업체들의 몸부림퇴마록의 선전에 고무된 광주의 애니메이션 업체들도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향후 광주 애니메이션 산업이 다양한 장르적 시도가 가능한지 여부도 이들의 선전에 달려 있으며 결과에 따라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향방을 주도할 수도 있다.스튜디오버튼은 '다이노맨'을 광주의 대표 캐릭터로 활용할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 2022년 MBC에서 처음 방영된'다이노맨'은 시공간을 넘어 멸종위기동물을 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광주지하철의 안전사고 예방캠페인, 광주경찰청의 보이스피싱 예방캠페인, 광주FC와의 협업을 통한 캐릭터상품 등에도 활용되고 있다.특히 올 여름방학 개봉을 준비 중인 극장판 '다이노맨: 무등산 공룡의 탄생'에서는 다이노맨과 친구들에게 '무등산 서석대에서 태어났다'는 서사를 더해 광주에서 나고 자란 캐릭터임을 확실히 각인 시키려한다. 해당 작품에서는 무등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사직공원 등 광주 곳곳의 명소, 광주의 1급 멸종위기종이었던 수달과 수리부엉이, 양림동 '개비 설화' 속 충견을 모티브로 한 경찰견 캐릭터 등이 등장해 광주시민들의 흥미를 자극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나쁜 계집애: 달려라 하니' 스틸컷.플레이칸 제공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달려라 하니'도 광주 업체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다.플레이칸은 '나쁜 계집애: 달려라 하니'를 올해 하반기 개봉할 예정이다. 중학생이던 하니와 나애리는 고등학생이 됐으며 시대 배경도 2025년으로 바뀐다. '달려라 하니'는 유아용 시장 탈피, 향후 OTT 진출, 화제성 부분에서 상당한 강점을 지닌 원작 아이템이다.3D가 아닌 전통적인 2D 방식을 빌어 40대 이상이 된 '올드팬'들에게는 추억을 불러 일으키고, 최근 트렌드에 맞는 깔끔한 그림체를 통해 10대 관객들의 취향을 저격할 예정이다.'어글리뮤즈' 스토리텔링 요약 이미지.메리버스스튜디오 제공◆매력적인 캐릭터 선봉, 다음은 'K-애니메이션'지난 2023년 광주 콘텐츠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한 메리버스스튜디오는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산업 구조에서 벗어나 캐릭터 IP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작품이 인기를 끌고 나중에 상품과 완구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 캐럭터 IP를 유통하기 위해 애니메이션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어글리뮤즈' 캐릭터 IP를 활용한 텀블러.메리버스스튜디오메리버스스튜디오는 아이돌이 되고 싶어 지구로 유학 온 고양이 '어글리뮤즈'의 모습을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했다. 글로벌과 MZ세대에 인기있는 고양이, K팝, 숏츠라는 키워드를 조합했는데, 이러한 기획력을 바탕으로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권뿐만 아니라 유럽으로의 진출도 앞두고 있다. '라이선싱' 사업을 통해 메리버스스튜디오는 오리지널 콘텐츠(캐릭터 IP)를 해외 업체에 배급하고 이를 다양한 상품으로 생산하거나, 본편 애니메이션을 공동 제작할 수도 있다.정윤정 메리버스튜디오 대표는 "기존의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으로는 많은 비용이 투입되고 수익을 회수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매력적인 캐릭터 기반의 라이선싱 사업이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음악, 영화, 드라마 등 많은 'K-콘텐츠'들이 해외에서 성공을 거뒀는데 실제 해외시장에서는 이름도 모르는 우리 캐릭터에도 좋은 반응을 해준다. 단기간의 수익이 아닌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과 꾸준한 지원이 이어진다면 'K-애니메이션'이 K-콘텐츠의 다음 자리를 차지할 날도 오리라고 본다"고 전했다.임창균기자 lcg051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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