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계엄 후 112일째다. 성한 국민이 없다. 불안과 스트레스, 불면이 길어지면서 탄식과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나라도 온통 만신창이다. 여기저기 무너져 내리는 소리다. 계엄도 문제였지만 그 후에도 윤석열은 해선 안 될 일을 너무 많이 했다. 그리고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너무 많이 잃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상식'을 파괴했다. 12.3 계엄은 헌정질서 유린인 동시에 상식 파괴였다. 숱한 희생을 딛고 세워낸 '군의 정치 불개입'이란 상식도 한순간에 깨졌다.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이었다. '공은 부하에게 과는 자신이'라는 바람직한 지도자상과 관련한 상식도 무너졌다. 그는 전국민 앞에서 책임을 부하들에게 떠넘겼다. 영장 집행을 거부한 것도 보통 국민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고위 공직자들의 법 무시가 일상이 됐다. 오랜 세월 상식으로 믿어온 공직 윤리, 지도자 덕목, 민주시민으로서의 기초윤리가 모두 깨져버린 것이다. '비상식의 일상화'. 계엄 112일 만에 맞닥뜨린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그는 민주공화국 체제를 떠받치는 주요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도 무너뜨렸다. 12.12 반란과 광주학살의 불명예를 씻기 위해 수십년 몸부림쳐온 군이야말로 가장 큰 피해자다. 사병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직면한 경호처도 마찬가지다. 부정선거 음모론으로 선관위에 대한 국민 신뢰도 심하게 훼손됐다. 대통령 구하기에 발벗고 나선 국가기관들도 위기에 빠졌다. 검찰이 압권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윤석열을 석방함으로써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신뢰를 잃었다. 법원과 헌법재판소마저 위태로운 지경이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국민 인권 대신 윤석열을 택하면서 세계 시민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주요 국가기관의 신뢰 상실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곧바로 공동체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를 낳고 있다. 국민이 피흘려 쌓아 올린 민주주의가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의 '최소한의 통합'도 깨뜨렸다. 전에도 갈등이 심했는데 이제는 수습이 어려울 정도로 나라가 두 동강 났다. 그는 야당을 반국가단체로, 자신을 반대하는 국민을 반국가사범으로 규정했다. 국민 1/3과만 소통하면서 반 이상의 국민을 타도해야 할 '적'이라고 선언했다. 극우 진영의 지도자로 자신을 가둔 채 노골적으로 지지자들을 선동했다.
그의 '진영과 분열과 적대 전략'은 국민을 '일상적 폭력과 테러'의 위험으로 내몰았다. 100만명의 평화시위를 자랑했던 서울 한복판에서 폭도들이 법원을 습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우려하고 분노한 국민과 달리 그는 폭도들을 엄호했다. 어느새 '총, 테러'란 끔찍한 단어가 수시로 뉴스에 등장하는 나라가 됐다. 언제 어디서 증오범죄, 혐오폭력, 정치테러가 있을지 모르는 '광기와 야만의 사회'에 우리는 살게 됐다.
그는 중요한 '언어와 개념'도 대부분 오염시켰다. 예컨대 '법의 지배(Rule of law)'를 가리키는 '법치' 개념을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로 바꿔 썼다. '왕도 법아래 있다', '권력은 법에 따라 엄격하게 행사되어야 한다'는 뜻의 '법치'를, 권력자의 '자의적 지배'를 가리키는 '인치(人治)'의 의미로 썼다. '국가권력의 남용으로부터 국민 기본권을 보호한다'는 의미의 '법치국가'를 '법 위의 권력자에 의한 강력한 법 집행'의 뜻으로 사용했다. 그렇게 전복된 '법치'와 '법치주의'의 의미는 '법의 이름으로 국민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외에도 개념 왜곡의 예는 수도 없이 많다. 그가 좋아하는 '자유'도 당연히 '권력자의 자유'가 아닌 '국민의 자유'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누구나 '권력의 간섭과 억압을 받지 않고' 신체와 언론∙출판과 경제활동의 자유를 갖는다는 것이다. '권력자의 비판받지 않을 자유'가 아니라 '권력자를 비판할 수 있는 국민의 자유'가 헌법정신으로서의 '자유주의'의 핵심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검찰의 힘으로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를 제한해 오다 급기야 군까지 동원했다. 12.3 계엄과 포고령은 자유민주주의자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공정'도 본래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다. 대통령의 권한과 검찰의 힘을 자신과 부인을 지키는 데 사용했다. 공직자로서는 가장 경계해야 할 '공권력의 사유화'였다. '선택적 공정'은 공정일 수 없음에도 그는 늘 '공정'을 입에 올렸다. '인권', '보수주의', '3권분립'의 개념들도 깨졌긴 마찬가지다. 사회공동체 유지의 토대인 공통의 언어와 개념이 온통 헝클어진 것이다. 지금 국민이 느끼는 답답함과 혼란도 소통의 수단과 통로가 무너진 데서 비롯된 바 크다.
상식과 신뢰가 깨진 사회에 사는 것은 심하게 흔들리는 땅을 딛고 사는 것과 같다. 그 무엇도,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극심한 불안과 불신으로 덮이게 될 것이다. 분열과 적대, 폭력과 테러가 일상화되면 사회는 야만의 전쟁터가 될 것이다. 누구라도 안전과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다. 언어가 오염되고 개념이 전복된 사회에서는 이성과 토론을 통한 문제해결도 불가능해진다. 목소리 크고 주먹 센 쪽이 이기는 조폭사회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상처' 수준을 크게 넘어선 것이다. 우리 몸으로 치면 심장, 두뇌, 척추, 혈관 모두에 위험 신호가 켜진 것과 같다. 중증 질환의 초기 증세라고 봐야 한다. 게다가 모두가 난치성이다. 긴급하면서도 정확한 대응이 필요하다.
요체는 무너진 공동체의 토대와 국가 시스템을 서둘러 다시 세우는 것이다. 내란 가담자들을 단죄하고 격리하는 것으로 치유될 수 있는 단계를 훨씬 넘어섰다. 실기하면 온전한 치유와 복원이 아예 불가능할 수도 있다.
매우 어려운 숙제지만 피해갈 수 없다. 서둘러 시작해도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애꿎은 국민이 부담해야 할 비용도 천문학적 규모가 될 것이다. 상식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온 국민이 비상한 각오로 나서야 한다.
나라의 명운이 심히 위태로운 국면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한 가지만 더 지적한다. '政者正也'.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이다. 무너진 상식을 다시 세우고 주요 국가기관과 시스템이 제자리를 찾게 하며 뒤틀린 개념들을 바로잡는 일, 그것이 정치의 역할이라는 말이다. 정치인과 지도자들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격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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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률의 '세상읽기'] 2025년 4월에 품는 간절한 소망 매년 만나는 4월이지만 그 느낌이 늘 같은 것은 아니었다. 세월호참사의 기억으로 먹먹한 가슴 끌어안고 지낸 4월도 있었고 제주 4.3의 비극에 압도되어 내내 우울하게 지낸 4월도 있었다. 어느 해는 시인 T.S.엘리엇의 '잔인한 4월'을 되뇌며 보낸 때도 있었고, 또 어느 해에는 4월에 세상을 뜬 본회퍼와 마틴 루터 킹, 현진건과 이상화를 추억하며 지내기도 했다.# 1960년 4월하지만 청년기의 4월은 대개 1960년 4월의 감격으로 가득했다. 2월 28일 대구에서 시작해 3.15와 4.11 마산의거를 거쳐 4.18 고려대학생 시위로 커진 민주화운동은 4월 19일 전국 주요 도시에서의 대규모 혁명으로 발전했다. 급기야 서울 부산 광주에서는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고 그래도 가라앉지 않자 전국 주요 도시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죽음을 각오한 학생과 시민의 분노와 저항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20일부터 24일까지 인천, 대구, 전주, 익산, 포항, 마산 등에서 학생과 시민의 봉기가 이어졌다. 25일에는 서울에서 대학교수 300여명이 가두시위를 벌였고 다음 날인 26일, 이승만은 하야했다. 학생과 시민이 계엄과 군경에 맞서 이 나라를 부패와 독재로부터 구해낸 1960년 4월이었다.어느덧 65년이 흘러 우리는 지금 2025년 4월에 서 있다. 어느 해보다 1960년 4월을 기억하며 '타는 목마름'으로 맞은 4월이었다. 12.3 계엄 후 넉달 동안 너무 어둡고 깊은 나락을 경험한 까닭일 것이다.다행히도 우리는 4일 새 빛, 새 희망을 봤다. 헌재가 윤석열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한 것이다. 이로써 국민은 궤변과 선동의 먼지바람을 걷어내고 주권재민과 정의로 향한 좁은 문의 입구를 찾은 것이다. 잃었던 잠과 웃음도 찾았다.# 아직 갈길 먼 내란 극복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첫 단추를 꿴 것뿐이다. 깊은 나락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앞으로도 몇 개의 큰 단추를 잘 꿰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직 내란이 종식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미 파면당한 윤석열이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의 뿌리다. 그는 지금도 12.3 계엄이 정당했다고 주장하면서 극우선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와 이익공동체로 묶여 있는 권력기관과 주요 국가기관의 책임자들도 그와 선을 긋지 못하고 있다. 검찰과 법원은 그를 풀어줬고 대통령실 압수수색은 지금도 막혀 있다. 권한대행은 내란특검법은 막고 헌재 재판관은 월권 임명하려다 저지당했다. 모두 내란을 연장하려는 기도로 의심받을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 증거 인멸은 넉달 넘게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내란 종식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앞서는 우선 과제라는 사실이 현 시기의 절대 명제다.다음은 내란 가담자와 부역자들에 대해 엄정하게 책임을 묻는 것이 중요하다. 12.3내란에 함께한 주요 종사자들, 내란에 동조하며 선동한 정치인들, 가짜뉴스로 혹세무민한 극우 유튜버들, 법원을 습격해 폭력을 행사한 이들에 대해서는 불관용의 원칙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다시는 이 땅에서 반복돼서는 안 될 헌정유린·반국가 범죄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코앞의 첫 단추는 국가 리더십 바로 세우기가 될 것이다. 새 리더십의 첫째 덕목은 주권재민의 헌법정신과 법치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다. 원래는 따로 거론할 필요조차 없는 기본 덕목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우리는 일부 국가지도자와 정치인들이 얼마나 헌법정신과 자유민주주의의 기본개념에 무지한지, 얼마나 반역사적이고 반국가적일 수 있는지 온몸으로 경험했다. 그 후유증으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와 헌법정신에 대한 의지와 철학을 국가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따져 묻고 요구해야 한다.# 민주시민의 집단지성'깨어 있는 민주시민의 집단지성'의 중요성 역시 강조되지 않으면 안된다. 12월 3일 밤 장갑차와 총든 군인을 저지했고, 아스팔트 밤샘 외침으로 12월 14일 국회 탄핵 의결과 4월 4일 헌재 탄핵 결정을 끌어낸 민주시민이야말로 이 난국을 헤쳐갈 사실상 최후의 보루인 것이다. 사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민 기본권과 헌법, 정론도 팽개칠 반민주 인사들이 정치권과 수사기관과 언론의 요소요소에 포진해 있는 지금, 역사의 퇴행을 이겨내고 정의를 세워낼 힘은 오로지 깨어있는 민주시민의 집단지성에게만 있다.민주주의와 헌법정신에 투철한 리더십과 깨어 있는 민주시민이 함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 12.3내란과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권력기관을 정비하는 것은 많은 과제 중 하나일 뿐이다. 극우와 폭력을 번성케 하는 사회경제적 토양도 개혁해 가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교육혁신에도 나서야 할 것이다. 알고리즘과 확증편향을 이겨내는 사고력과 가짜뉴스를 분별해 내는 힘을 길러줄 수 있어야 한다. 인권과 헌법정신과 민주시민의식을 제대로 학습하는 인문교육과 사회교육도 강화해야 한다.실패한 역사로부터도 배워야 한다. 절규하는 동학 농민들이 외세와 손잡은 낡은 기득권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혔던 1894년의 비극으로부터, 해방 후 친일권력에 의해 반민특위가 해체됐던 1949년의 아픔으로부터, 4.19혁명의 숭고한 정신이 1년 뒤의 군사쿠데타에 의해 유린됐던 1961년의 퇴행으로부터 교훈을 얻고 뼈에 새겨야 한다. 그래서 '내란 저지의 시민승리를 더 온전하고 더 튼튼한 민주주의 건설로 완성해내는 역사'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 2025년 4월에 품는 소망2025년 4월을 보내며 두손 모은 기도에 간절함이 크다. 165년 전인 1860년 4월, 무너지던 이 나라에 '시천주(侍天主)', '인내천(人乃天)'의 동학사상이 수운 최제우선생의 가슴에 씨 뿌려졌듯이 금년 4월도 그런 '개벽의 4월'이기를 소원한다. 55년 전인 1970년 4월에 창간된 함석헌선생의 '씨알의 소리'가 불의한 독재에 맞서 '생각하는 백성, 행동하는 백성'의 함성을 담아냈듯이, 금년 4월도 '정의의 선포가 시작된 4월'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바란다. 마침 엊그제는 세계의 가톨릭과 개신교가 모두 기념하는 부활절이었다. 파괴와 죽음을 이기고 생명과 평회를 향해 솟는 '부활의 2025년 4월'이기를 바란다.마침 4월을 뜻하는 영어 April이 '열리다'라는 뜻의 라틴어 Aperire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 뜻대로 '새 세상, 새 시대를 여는 2025년 4월'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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