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화흠·양계남·윤재우·천경자
전남 출신 작가 11점 선봬
기증 문화 의미·가치도 확산

지난 2020년 10월 故이건희 삼성 회장이 소장하고 있는 수만 여점의 컬렉션이 국가와 국공립미술관에 기증되며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국가와 시대를 막론하고 동서양의 이름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미술 뿐만 아니라 기증 문화는 조명 받기 시작했고 점차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미술계는 이러한 분위기를 반겼지만 기증 문화의 지속성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부족하다. 여전히 기증자나 기증작품에 대한 예우는 부족하고 수장고로 들어간 작품은 언제 세상 밖으로 나올지 모르는 상태인 것들이 많다.
이같은 분위기 속 전남도립미술관은 지난 2021년 기증전용관을 오픈, 기증작을 중심으로 한 전시를 1년마다 선보이고 있어 눈길을 모은다. 기증자에 대한 예우를 갖추고 기증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기 위한 것으로 기증작품에 대한 재조명까지 이뤄지고 있다.
올해는 남도의 풍경을 다양하게 표현한 4명의 지역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조명하는 전시를 열고 있다. 지난 7일 오픈한 2025 기증작품전 '바람 빛 물결'이다.

지난해 기증작품전 '시적추상'에 이어 펼쳐지는 이번 전시는 전남 출신의 고화흠, 양계남, 윤재우, 천경자 네 작가의 작품 11점으로 꾸려졌다. 작품은 남도의 자연과 풍경을 주제로 한 것들로 그대로 재현하기 보다는 자신만의 언어로 재해석해 표현, 네 작가의 각기 다른 작품 세계 속 남도를 확인할 수 있다.
구례 출신의 고화흠의 작품은 '무제' '백안' 등이 관람객과 만난다. 고화흠은 부서지는 파도의 물결과 모래사장을 은백색으로 표현한 '백안' 시리즈 등으로 남도의 자연에서 시작해 서정적 추상 작품을 선보여온 인물로 남도 풍경에 대한 인상, 색채에 집중할 수 있다.
보성 출신으로 전남권 최초 한국화 전공 여성 교수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는 양계남은 자수에서 모티브를 얻어 세필로 자연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독특한 준법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같은 그의 독특한 표현법을 계절과 함께 느낄 수 있는 '넉넉한 겨울' '오월은 여름일레라'가 선보여진다.

대상을 단순화한 대신 화려한 색채로 물들이며 새로운 시선을 담아내는 강진 출신의 윤재우의 작품은 '추경' '탐라철쭉'등이 전시장으로 나와 봄, 가을을 물들이는 아름다운 계절 색감을 선사한다.
고흥 출신의 천경자는 전통 채색화를 기반으로 화려한 색채를 사용해 환상적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을 작업해왔다. 전시에서는 그가 고흥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 항구에서 물고기를 가득 잡아온 만선을 보고 느낀 기쁨을 화려하게 표현한 '만선'을 비롯해 '화혼' 등 이건희 컬렉션을 통해 고향의 품으로 안긴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지역 출신의 작가 작품을 통해 남도의 아름다움과 우리 지역 미술을 확인하는 자리로도 의미가 크지만 기증 작품을 함께 향유하며 기증의 의미를 조명하고 활성화하며 기증자에 대한 예우를 갖춘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전시가 이뤄지는 상설기증전시관 또한 이같은 맥락에서 운영, 도립미술관은 작품을 나열하는 것에서 벗어나 전시를 기획해 다양한 관점에서 해당 작품들의 의미를 조명하고 있다.
도립미술관은 현재 566점의 소장품 중 27.9%인 158점이 기증작품으로 이 중 120여점은 전남 지역 출신 작가의 작품으로 남도 미술의 흐름을 조망하고 연구하는 중요 컬렉션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작품기증은 단순히 작품을 많은 사람과 향유한다는 것에서 나아가 지역사를 연구하는 주요 자원을 공유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지호 도립미술관 관장은 "이번 전시가 작품의 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림과 동시에 기증 문화의 활성화, 문화 자산의 사회적 환원 확산을 이루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며 "또 관람하는 분들은 지역 미술사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하고 자연을 주제로 한 이 지역 작가들의 예술적 탐구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무료이며 내년 2월 9일까지 이어진다.
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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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사태 보며 그날의 아픔 떠올랐어요" 김연우씨 "비상계엄을 겪으며 기필코 무대로 오월의 영령들을 모셔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고(故) 김영철 열사와 딸 김연우씨는 그 누구보다 애틋한 부녀이자 단짝친구였다. 김씨는 어릴 적 아버지와 단 둘이서 소풍을 갔던 날을 회고했다.김 열사는 5·18로 인해 가장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됐다. 그는 "어느 하루 아빠가 정신병원에서 외박을 나왔던 날, 단둘이서 버스를 타고 소풍을 갔다"며 "아빠는 고문 후유증으로 오래 걷지 못하셔서 얼마 못 가고 둘이 너럭바위에 앉아 엄마가 싸준 김밥도 먹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놀았다. 꼭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고 말했다.어릴 적부터 춤을 좋아했던 김씨가 무용수의 길을 걷게 된 것에도 아버지 김 열사의 영향이 적지 않다. 김씨는 "어릴 때 아빠가 재미있는 노래와 춤들을 많이 알려주셨다. 춤추는 것이 좋고 재밌어서 무용 학원에 다니고 싶었는데, 형편이 안 돼서 고등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원을 다니고 본격적으로 무용을 배우게 됐다"며 "앞으로도 춤을 통해 오월의 이야기를 다양한 형식으로 전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김씨는 지난해 12월3일 벌어졌던 비상계엄 사태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1980년 5월, 김씨의 가족들이 겪었던 그날의 상흔이 여전히 가슴 깊이 남아있는 듯 보였다.그는 12·3 비상계엄 당시 '나는 고려인이다'라는 뮤지컬 공연 리허설을 하고 집에 가던 길에 소식을 접했다고 한다. 김씨는 "믿을 수 없는 소식에 너무 벙찌고 숨이 턱 막혔는데, 가장 먼저 엄마가 걱정돼서 안부 전화를 걸어 안심시켰다"며 "그 많은 피들을 흘려두고 어떻게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될 수 있는지 너무 참담하고 무서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말했다.한편으로는 비상계엄 이후 전국적으로 펼쳐진 집회를 보며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했다고 한다. 김씨는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가는 시민들을 보며 1980년도의 아빠와 삼촌, 광주 사람들이 떠올랐다"고 덧붙였다.마지막으로 이번 공연에 대해 김씨는 "춤과 에피소드가 교차하며 어린 연우와 아버지가 조우하게 된다"며 "우리의 아픔들을 함께 공유하고 얘기하면서 서로 연대하고 보듬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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