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이 발부한 긴급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하고 관저에 숨어있던 대통령이 주변에 모여있던 지지자들에게 보낸 '집회 장면을 유튜브로 보고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낭독하는 장면은 대한민국 유튜브 정치의 해악과 민주주의의 위기를 웅변하는 듯 했다. 온갖 상스런 욕설과 혐오 발언으로 집회를 이끌던 유명 극우 유튜버는 대통령이 자신들의 집회를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강조했다. 광화문, 대통령 관저, 헌법재판소, 서울구치소, 공수처, 급기야는 문제의 서부지방법원에 이르기까지 극우 유튜버는 지지자들을 모으고 부추기고 욕설하고 폭력을 행사하도록 유도하는 발언을 반복했다. 끔찍했던 1월 19일 서부지법 난동사태를 전후해서는 극우 유튜버들이 노골적으로 폭력을 선동하는 장면이 그들 자신의 유튜브 화면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윤 대통령 구속영장이 발부된 19일 오전 3시경 한 유튜버는 사람들을 불러모으며 '후문'으로 향하게 해 청사 난입을 시도하는 장면도 생생하게 드러났다. 난동과정에서 또 다른 유튜버는 "1.19 혁명'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필자는 그동안 여러번 유튜브의 위력과 일탈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 유튜브의 영향력과 문제점을 논리적으로 지적하고 합리적인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할 뿐 아니라 한가하기 짝이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른바 유튜브 정치가 대한민국을 망가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3일 시대착오적 비상계엄 선포 이후 전개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혼란과 갈등을 부추기는 중요한 요인으로 유튜브 정치가 꼽히고 있다. 충격적인 비상계엄 사태를 당한 이후 정상적인 법적, 정치적 절차에 따라 대통령 탄핵 재판과 내란죄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데도 극우 유튜버들은 이를 부정하고 사람들을 선동하고 욕설과 폭언으로 연일 광장에 모인 지지자들을 흥분시킨다. 상식적인 대부분의 국민들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정선거론, 중국관여론, 반국가세력론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적으로 강변한다. 시대착오적인 비상계엄을 일으킨 대통령의 주장과 동일한 내용이다. 물론 유튜버라는 매체의 특성상 다소 과장되고 선정적인 내용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강조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현행법을 위반하는 수준으로 까지 선을 넘어서는 안된다.
1월 22일 유튜브 '제이컴퍼니'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두 명의 남성이 라이터 기름통으로 보이는 노란색 통 입구를 칼로 자른 뒤 바닥에 뿌리는 모습이 나온다. 통 안에 든 물질이 잘 나오는 것을 확인한 남성은 깨진 법원 창문을 통해 내부에 뿌린다. 영상에는 또 다른 사람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법원 창문 쪽으로 가 노란색 통을 들고 뿌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 남성은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건물 진입을 지시하는 듯한 손짓을 물론이고 손전등을 들고 판사 집무실이 있는 7층을 뒤지는 화면에도 포착됐다. 온라인에서 이른바 '투블록 남'으로 불리는 이 남성은 폭동 사흘 만인 23일 경기도 파주 자택에서 긴급 체포됐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공동주거침입과 특수공무집행방해, 방화 미수 혐의 등에 대해서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몇 주간 여러 극우 유튜브를 통해 선거부정, 중국의 탄핵반대 집회 조직적 개입 등 음모론이 급속도로 확산하고 선동을 야기하는 표현이 쏟아진 바 있다. 서부지법 폭력난동사태와 극우 유튜버들의 관련성을 시사하는 증거들이 아닐 수 없다.
민주사회에서 유튜브를 통한 여론형성과 자기주장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현행법을 위반하면서까지 폭력과 혐오와 거짓을 반복적으로 조장하는 것까지 허용할 수는 없다. 구독자수가 많은 유튜버일수록 더 현행법을 준수하고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자신들의 주장과 의견을 표출해야 한다. 명예훼손, 허위사실유포, 폭행 및 교사, 공공건물난입, 공공시설파괴, 방화시도, 모욕, 혐오조장, 공무집행방해, 내란선동 등 최근 극우 유튜버들의 법 위반 여지가 있는 사례가 넘쳐나고 있다. 현행법을 명백하게 위반하고 불법적인 언행을 일삼는 유튜버들을 엄격하게 처벌하지 않고는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유지할 수 없다. 유튜브 정치의 해악이 민주주의의 파국으로 이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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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평] 윤석열식 민주주의와 아테나 여신 이욱연 서강대 인문대학장 이게 이렇게 길어질 일인가 싶다.굳이 민주주의 원리에 비추어 볼 필요도 없이, 상식으로 보더라도 시비가 분명한 일이다. 그런데도 헌재 탄핵 심판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그만큼 한국 사회 곳곳이 골병들었다는 증거다. 한국 민주주의가 깊이 위기에 빠졌다는 증거다.오늘 많은 사람이 어처구니없어하는 것은 피와 죽음으로 이룬 한국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린 장본인이 전두환 같은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도 아니고, 민주적인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어서다.탄핵 심판이 끝나더라도 무너진 한국 민주주의를 어떻게 회복할지, 참으로 어려운 숙제가 우리 사회에 떨어졌다. 한국 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해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차원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원으로 돌아가 민주주의 자체가 지닌 빛과 어둠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민주주의는 그리스에서 태어났다.그리스의 수도인 '아테네'란 이름은 '아테나'에서 왔다. 아테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이다. 이 여신상은 특이하다. 한 손에는 부엉이를, 다른 손에는 창과 방패를 들고 있다. 어찌 보면 연관이 없거나 모순되는 두 가지를 왜 같이 들고 있을까?아테나 여신이 지혜의 신이자 전쟁의 신이어서 그렇다. 그녀가 들고 있는 부엉이는 어둠 속에서도 세상을 볼 수 있고, 사물을 분간할 수 있는 지혜를 상징한다. 창과 방패는 상대를 무찌르고 나를 방어하기 위한 전쟁을 상징한다.아테나 여신이 지닌 이런 모순적인 두 가지 속성을 어떻게 이해할까?아테네 여신에 담긴 지혜의 뜻과 의미가 우리 보통 생각과 달라서 그렇다. 아테나 여신에게 지혜란 단순히 어떤 일이 진리이고 정의인지를 아는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이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고 정의라고 판단한 것은, 창과 방패를 동원하여 전쟁을 치러서라도 관철해야 하고, 그렇게 수행된 전쟁은 정의롭다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다.서구 역사에서 일어난 수많은 종교 전쟁이나 처참한 살육이 이런 아테나 여신이 지닌 지혜의 의미와 연결되어 있다.정의나 신의 명령을 내세우지만, 그것은 자신들 만의 명분이나 신념이거나 사욕과 위선을 그렇게 포장한 것일 뿐인 경우가 많았다. 지혜를 앞세워 총과 칼의 전쟁을 포장한 것이다.아테나 여신이 지닌 '지혜'와 '전쟁'이라는 상징적 의미는 민주주의의 양면성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그리스에서 탄생한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과 생각을 존중하는 열린 체제이다.하지만 리더가 어떤 생각을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지혜'가 자신만의 강한 신념으로 굳어지는 순간, 그것은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교조적 이념이 되어,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을 탄압하고, 배척할 수 있다.더구나 이런 정치적 신념이 종교와 결합할 경우, 자기 생각을 실현하고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을 척결하는 것을 신성한 종교적 사명이라고 여기는 미신적 도취에 빠지게 된다. 그 순간, 민주주의는 무너지고 파시즘 세상이 된다.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아테나 여신에게서 지혜는 사라지고, 창과 방패를 든 전쟁만 남게 된다.그동안 한국 정치에서 계엄은 군인 출신 대통령이나 쿠데타와 연결되었다. 박정희나 전두환이 그랬다.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은 전시도 아닌 상황에서 민주 선거를 통해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일으켰다는 점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면서 민주주의를 파괴했다.독일에 파시즘 시대를 열었던 히틀러도 민주적 선거로 선출되었다.히틀러는 자신이 진리라고 믿는 거짓 신념을 지혜라고 믿으면서 장애인과 정치 반대파, 동성애자, 유대인 등을 학살했다.공정과 상식을 내세우면서 다수 한국인의 선택을 받아 집권한 윤석열 대통령도 민주주의의 허점을 파고들면서 한국 민주주의 자체를 위기에 빠뜨렸다.윤석열 대통령의 민주주의는 지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기가 맹신하는 정치 신념을 위해서 자기 지지만 쳐다보면서, 정치적 반대 세력과 생각이 다른 국민을 압박하고 자기 권력욕을 채우는 창과 방패의 민주주의였다.세상 순리대로라면, 그리고 헌재가 쿠데타 면허증을 윤 대통령에게 내줄 생각이 아니라면, 윤 대통령 탄핵 국면은 곧 끝날 것이고, 우리 사회는 빠르게 대선 국면에 들어갈 것이다.곧 이어질 대선 국면에서 한국 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해서 유권자가 명심할 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윤석열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는 점이다.수많은 '윤석열들'이 있다.정치인만이 아니라 수많은 지지자 대중이 있다. 그들도 민주사회 유권자다. 전두환 시대 때보다 윤석열 탄핵 시대가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게 더욱 어려운 건 이 때문이다.전두환은 특정 시기에 군사 쿠데타라는 특수한 방법으로 나타나서 다시 전두환이 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하지만 윤석열은 선거를 통해서 출현했기 때문에 언제든 다시 복제되어 그 후예가 출현할 수 있다.민주주의의 상징인 아테나 여신이 그렇듯이, 민주주의 자체가 지닌 한계와 어둠을 생각하면서 대선 국면을 맞아야 또 다른 윤석열과 윤석열식 민주주의가 다시 출현하는 걸 막을 수 있다.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구호로 공정과 상식을 내세웠듯이, 대선 후보가 내세우는 지혜를 가장한 말에 두 번 다시 속지 말고 그 뒤에 감추어진 창과 방패를 간파해 내는 유권자가 되도록, 각오를 단단히 할 일이다. 위기에 빠진 한국 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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