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손안의 화면이 아이의 세계를 빼앗는다

@김용근 학림학당 학장 입력 2026.08.02. 15:28
■김용근의 잡학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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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과 창의성은 각성이 아니라 느슨한 여백 속에서 자란다. 이러한 사실은 최근 뇌과학을 통해 입증되고 있으며 교육에도 반영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여백조차 메워 버리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빈 공간의 철학은 더욱 절실하다. 최근 서구 여러 나라가 어린이의 스마트폰과 SNS 사용을 제한하는 법을 제정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서구 사회는 이제야 노자의 여백 철학을 발견한 것이다. 이는 기술을 거부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생각의 여백을 지키려는 노력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눈에 보이는 실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여백에 있다. “수레가 움직이는 것은 바퀴살 때문이 아니라 가운데 축의 빈 공간 덕분이며, 집이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 되는 것도 벽이 아니라 그 안에 빈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유는 기원전 수백 년 전 노자가 쓴 5천 자의 ‘도덕경’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가르침은 비어 있음이 결핍이 아니라 가능성이며, 침묵은 공허가 아니라 생명이 자라는 토대임을 말한다. 그는 더 많이 소유하고 채우려는 인간의 욕망과 달리 ‘비움’의 가치를 강조한다. 이는 오늘날 과잉 욕망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비극을 해결하는 진리의 글이 되었다.

짧은 공백 속에서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하며, 새로운 가치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하지만 과잉 욕망과 경쟁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모든 사이와 틈을 채워 버린다.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인간은 스스로 시간과 공간의 여백을 지우고 채우며 살아간다. 하루의 모든 사이와 틈을 스마트폰이라는 접속의 도구로 채운다. 아침부터 잠들기 전의 침묵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간의 틈을 스마트폰이 메운다.

계절과 날씨의 변화를 느끼거나 창밖을 바라보고, 낙서장에 무언가를 상상하던 시간들이 사라지고 있다. 그 자리에는 지루함이 시작되기도 전에 영상이 재생되고, 질문이 생기기도 전에 검색 결과가 제시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이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삶이 일상이 되었다.

노자가 말한 무위(無爲)는 게으름이 아니라 억지로 개입하지 않을 때 자연스러운 질서가 살아난다는 능동적인 철학이다. 성장에는 기다림과 실패를 견디는 시간, 혼자 고민하는 시간 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성장기 어린이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질문보다 답을 먼저 보여 주고, 상상보다 이미지를 먼저 제공하며, 탐색보다 추천을 앞세운다.

어린이는 스스로 길(道)을 찾지 못하고, 곧게 나아가는 마음의 작용인 덕(德)을 기르기보다 이미 만들어진 길과 타인의 생각을 소비하는 데 익숙해진다.

이러한 변화는 어린이에게 더욱 큰 영향을 미친다. 성인은 사고 체계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어 자기 결정권을 바탕으로 선택할 수 있지만, 아이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사고방식을 형성한다. 짧은 영상은 긴 글을 읽는 집중력을 약화시키고, 즉각적인 자극은 순간적인 즐거움을 주지만 깊이 생각하는 습관을 없앤다. 검색은 질문을 대신하고, 추천 알고리즘은 호기심을 약화시킨다.

아이들은 더 빠르게 반응하지만 깊이 사고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이는 홀로 사유하는 인간 정신의 구조 자체를 변화시킨다.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이 깊어질 시간과 공간을 잃어 가고 있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생각의 여백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유란 원하는 것을 무한히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힘이다. 아직 자기 통제력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무제한의 디지털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임이다.

서구 사회는 디지털 시대의 인간다움에 대한 답을 2천500년을 이어 온 노자의 여백 철학에서 찾고 있다. 노자는 행복이 과잉 욕망을 채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되어 비울 줄 아는 데 있다고 말한다.

침묵 속에서 생각이 자라고, 기다림 속에서 인내가 생기며, 여백 속에서 창의성이 피어난다. 스마트폰이 끝없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기술이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혼자 하늘을 바라보며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시간이다.

노자의 ‘도덕경’은 과거의 철학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회복해야 할 삶의 원리이다. 그것은 알고리즘이 채워서는 안 되는 인간 내면의 마지막 빈 공간을 지키는 일이다.

김용근 학림학당 학장, 창의융합공간 SU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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