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의 기록은 종종 한 문장으로 그 모든 참혹함을 응축한다. “신이여, 다시는 그들이 이 땅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옵소서.” 이 절박한 기원은 침략군을 물리친 여러 나라의 전쟁 기록 끝 문구에서 되풀이되어 등장한다. 십자군 전쟁의 기록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무슬림 군대를 이끈 살라딘이 침략당한 예루살렘을 탈환하면서 200년에 걸친 긴 십자군전쟁은 막을 내렸다. 이어어서 무슬림의 술탄에게 보낸 ‘바이바르스의 편지’ 마지막 문장에도 이와 같은 간절한 문구가 남아 있다. 이집트인 이븐 자하르가 쓴 연대기에도 이 문구가 등장한다. 이런 간절함의 이면을 잘 보여주는 아랍의 시선이 있다.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상을 받은 작가이자 아랍 역사에 정통한 아민 말루프의 저서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은 수많은 고문서를 바탕으로 십자군의 탐욕과 약탈, 그리고 그 야만의 실상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이런 야만에 대해 800년이 지난 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가톨릭 십자군이 저지른 폭력적 행위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며 용서를 구했다.
인류의 역사는 영역과 자원을 둘러싼 끊임없는 경쟁의 기록이다. 수렵채집 시대, 생존을 위한 사냥터와 물을 둘러싼 작은 충돌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갈등은 농경의 등장과 함께 ‘소유’를 둘러싼 조직적 전쟁으로 발전했다. 국가가 형성되면서 전쟁은 우발적 충돌이 아닌 치밀하게 설계된 정치 행위로 변했고, 중세에 이르러서는 신과 정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기 시작했다.
중세, 십자군 전쟁은 흔히 신앙의 열정이 만들어 낸 성전으로 기억된다. 십자군의 적은 이슬람 세계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신의 이름 아래 움직인 것은 인간의 욕망이었다. 성지를 되찾겠다는 구호는 군인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을 결집시키고 동원하는 명분이었다. 이런 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제4차 십자군 원정이다. 원래의 명분은 이슬람 정벌이었지만, 실제로는 베네치아의 권력자와 상인의 이해가 개입하면서 십자군은 같은 기독교 도시들을 공격했고, 끝내 1204년에는 같은 그리스도교 문명권이던 콘스탄티노폴리스 대도시를 약탈했다. 십자가를 앞세운 칼끝이 성지 탈환이 아니었다. 돈이 되는 항구와 도시로 향했다는 사실은 십자군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를 대변한다. 신의 이름은 곧 신뢰의 브랜드였고, 그 브랜드는 사람들의 검소함과 경건함을 욕망으로 향하게 하는 장치였다. 십자군 전쟁에서 성전을 앞세운 욕망이 그러했다. 특히 베네치아의 상인들은 십자군 원정을 통해 해상 교역을 장악하고 새로운 무역로를 확보하여 동방과의 교역을 독점함으로써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였다. 약탈과 피로 얼룩진 야만의 원정 전쟁터는 곧 시장이었고, 병사들의 행군은 물류의 길이었다. 전쟁 뒤에는 늘 욕망의 가장 집요한 이름인 권력과 자본이 있었다.
오늘의 중동 긴장은 단순한 안보 충돌을 넘어, 자본과 권력이 교차하는 구조적 전쟁의 성격을 띤다. 트럼프와 베냐민 네타냐후가 내세우는 명분은 이란의 핵 위협 억제와 지역 안정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에너지 패권, 무기 산업, 그리고 국내 정치적 입지 강화라는 복합적 이해관계가 작동한다. 오늘의 이런 갈등은 과거 십자군 전쟁과 같은 자본의 질서를 재편한다. 그래서 “십자군 전쟁의 후예들”이란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중세 십자군으로 가면을 쓴 상인의 선단은 오늘의 군수 기업과 에너지 동맹으로 모습을 바꾸었을 뿐이다. 십자군의 시대는 끝났지만, 십자군의 방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쟁은 언제나 고귀한 명분으로 포장되지만, 그 이면에는 이익을 취하는 소수와 희생되는 다수가 존재한다. 종교와 이념은 본래 선을 지향하지만, 권력과 결합할 때 폭력의 도구로 변질된다. 결국 전쟁은 민중의 선택이 아니라 구조 속에서 강요된 비극이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자본과 권력의 결탁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화려한 언어가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이익의 흐름이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동시에 배움의 기회를 통해 진보한다. 진정한 문명은 힘이나 승리가 아니라 생명과 양심, 공존을 선택하는 데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전쟁을 부추기는 힘이 아니라 그 본질을 꿰뚫어 보는 깨어 있는 시민 의식이다. 욕망하는 전쟁의 밭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
김용근 학림학당 학장, 창의융합공간 SU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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