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노벨문학상을 넘은 '가싼 카나파니'

@김용근 학림학당 학장 입력 2025.10.26. 17:41
■김용근의 잡학카페

매년 10월이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고, 그들의 저작은 한동안 전 세계 출판계를 분주하게 만든다. 올해 노벨문학상은 '사탄탱고'로 잘 알려진 헝가리 출신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에게 돌아갔다. '타인의 고통'으로 유명한 수전 손택은 그를 "현존하는 묵시록 문학의 최고 거장"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노벨문학상은 인류에 지대한 공헌을 한 작품을 대상으로 하며, 혁신성과 강렬한 표현력, 기존 통념의 해체를 통한 새로운 가치, 그리고 인간의 삶과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따라서 수상자는 시인과 소설가에 국한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은 노벨평화상이 아니라 저서 '제2차 세계대전'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대중가요를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으로 확장한 가수 밥 딜런은 2016년 뮤지션으로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두려움은 죽음을 먹는 것이 아니라 삶을 먹는다"라는 철학적 화두를 남긴 아랍어권 유일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이집트의 나기브 마흐푸즈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아랍권 분쟁의 심장부인 팔레스타인에서 문학·역사·보도와 저항의 글을 써 온 가싼 카나파니(Ghassan Kanafani)가 있다. 그는 노벨문학상이나 평화상을 받지 못했지만, 그의 글과 행적이 오늘날 가자지구와 세계 평화에 남긴 유산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지난 70여 년 동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하늘에는 검은 연기가 떠돌았고,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철조망과 거대한 장벽을 넘어 메아리쳤다. 보복과 분쟁의 고리가 지속되는 동안, 팔레스타인의 저항 문학가이자 해방운동가였던 카나파니의 목소리는 오히려 더욱 또렷해졌다. 그는 무기 대신 펜을 들었고, 폭력의 총을 대신 문학의 언어로 민족의 고통과 존엄을 세계에 호소했다. 오늘 우리가 평화를 모색할 때, 그가 남긴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정의 없는 평화는 허상이며, 억압 위의 침묵은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라는 점이다.

그는 '폭력은 짧지만 존재의 서사는 길다'라는 신념으로 민족의 서사를 세상에 알리는 사명자가 되었고, 폭력이 강요되는 구조 자체에 저항하며 이를 고발했다. 그의 글쓰기는 민중의 분노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분노의 근원을 이해하고 은폐된 기억을 증언하기 위한 행위였다. 카나파니는 평화가 단지 폭력을 멈추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폭력이 자라나는 토양을 제거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카나파니의 문학은 '존재의 권리'를 둘러싼 근본적 질문들이다.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단순히 땅을 잃은 것이 아니라 존재의 서사를 빼앗겼다고 보았다. 따라서 존재의 서사를 빼앗는 것에 맞선 저항이야말로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는 우리의 오천 년 역사 속에서 끝없이 존재의 서사를 기억하고 소환함으로써 우리의 민족을 지켜 온 일과 맥을 같이한다. 정체성과 기억을 부정당한 민족과 민중은 그 자체로 존재가 위협받는다. 그렇기에 평화는 서로를 제거함으로써 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타자성을 인간의 삶으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카나파니는 결국 1972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암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그가 말하고자 했던 바를 오히려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폭력은 한 사람의 몸을 제거할 수 있지만, 기억으로 엮인 서사를 지울 수는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가 보여 주듯, 기억의 서사가 "현재를 살린다"라는 통찰과 맞닿아 있다.

팔레스타인 문학을 적대시한 곳에서 카나파니의 많은 저작들은 여전히 미출판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불멸 속의 사람들'과 '뜨거운 태양 아래서'등의 몇 권만이 정식 출판되었다. 그러나 노벨문학상을 넘어선 카나파니의 문학과 실천은 민족과 민중의 서사와 존엄을 앞세워 복권을 호소했다. 한국 사회에서도 비록 예전처럼 마을 공동체가 원형 그대로 남아 있지는 않지만, '공동체 존재의 서사를 지키려는 실천'은 여전히 강력하다. 이 가치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그러므로 너와 나, 우리 마을과 공동체의 기억을 보존하고, 존재의 서사를 돌보는 일이 지속될 때, '한국'이라는 등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김용근 학림학당 학장, 창의융합공간 SU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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