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사팔뜨기의 방조는 '44번 버스'와 '이끼'의 비극

@김용근 학림학당 학장 입력 2025.09.28. 13:36
■김용근의 잡학카페

마을의 한 집에 고통의 그늘이 드리우면, 마을 공동체는 외면하지 않고 그늘을 함께 덜어 준다. 우리를 관계로 묶는 오래된 상호성의 가치에 대한, 배움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타인의 고통 앞에 선다는 일은 언제나 마음에 작은 가시를 품는 일이지만, 그 불편을 견디고 통과할 때 공동체가 되고, 공동체는 비로소 숨을 쉰다.

중국 단편영화 '44번 버스'는 실화를 그대로 옮겨 충격적인 답을 내놓는다. 시골행 버스가 운행 중이던 어느 정류장에서 여성 운전자가 세 명의 불량배에게 폭행과 성폭력을 당할 때, 오직 한 중년 남성만이 맞서 싸웠지만 그 조차 승객들에게 외면당한 채 가해자에게 무력하게 쓰러진다. 나머지 승객들은 침묵한다. 그 침묵은 단순한 소극적 도덕 태도가 아니라, 가해자를 돕는 적극적 방조일 뿐이다. 정의로운 행동을 선택할 자기결정권은 개인에게 주어졌음에도, 그들은 두려움과 무관심으로 인해 스스로 그 권리와 도덕적 행동을 포기했다. 여성 운전자는 다시 운전하기 전에 항의했던 정의로운 중년 남성만을 강제로 내린 채, 가해자와 승객을 태우고 운행을 재개한다. 그리고 이 버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낭떠러지 절벽으로 돌진해 전원 사망한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악 앞에서 스스로를 방조로 무력화하는가?"

비슷한 방조와 침묵은 한국 영화 '이끼'에서도 드러난다. 영화 속 마을 사람들은 권력자인 이장에게 부당하게 억압받으며 산다. "세상의 물살이 어떻든 상관없이, 바위에 붙은 이끼처럼 살아간다."라는 대사처럼 그들의 삶의 방식은 억압을 내면화한 결과이다. 부정과 폭력이 눈앞에서 벌어지는데도 그들은 방조로 침묵한다. 그 침묵은 단순한 생존 전략을 넘어 폭력을 가능하게 하고, 정의가 상실되는 토양이 된다. 바위에 붙은 이끼처럼 생존에만 기생하는 삶은 결국 정의롭고 능동적인 자기결정권의 상실이다. 그들이 방조하고 외면하는 순간, 정의는 사라지고 공동체는 가해자의 질서에 고착된다.

이 두 영화는 특정 사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역사 속에도 방관과 방조는 깊게 새겨져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여러 차례의 비상계엄과 내란의 순간들에서도 그러했다. 계엄령하에서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가 억압될 때 일부 지역에서는 용기 있게 맞섰지만, 다수는 침묵과 무관심 속에 방조로 머물렀다. 그러나 방조의 위험성은 학습되었고, 이번 12·3 비상계엄은 정의의 빛을 든 시민들에 의해 막아 냈다. 그럼에도 일부 사법적 동조와 방관자들의 태도는 달랐다. 이들은 공동체 구성원의 주권이 아닌, 통치의 법이라는 이름으로 정의로운 결정을 미루는 '이끼'가 되었다. 방조하는 침묵의 역사는 권력자의 폭력을 연장시켰고, 불의의 제도화를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역사는 그 동조와 방관을 용서하지 않는다. 방조는 단순히 '행동하지 않음'이 아니다. 그것은 정의의 가능성을 봉쇄하는 행위다.

오늘의 우리는 여전히 같은 시련의 장(場)에 선다. 만약 세계를 손끝의 접속 이미지로만 파악한다면, 우리는 말 없는 바위에 붙어사는 이끼와 다를 바 없다. 정의로운 자기결정은 추상적 표어가 아니라,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않으려는 미세한 응답들이 겹겹이 퇴적되어 구성된 공동체의 역사적 책무다. 그 책무를 수행하는 행위야말로, 어디서나 인간이 인간다움을 입증하는 필연이다.

영화 '44번 버스'와 '이끼', 그리고 방조의 역사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경고한다. 방조의 침묵은 결코 중립과 중용의 길이 아니라 가해로 향한 가장 조용한 편향의 길이다. 이는 결국 공동체의 척추를 무너뜨리는 무기다.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결단은, 정의로운 자기결정권을 지키려는 정체성의 깃발로서 공동체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숨통이다.

김용근 학림학당 학장, 창의융합공간 SU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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