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마한의 땅에서 헤리티지를 꿈꾸다

@ 입력 2025.08.06. 15:56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인권사무소장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인권사무소장

최근 무등일보에 소개된 신간 '잊혀진 나라 마한 여행기'를 읽었다. 저자와 제목이 동시에 끌릴 때 책은 정겨운 길동무처럼 손에 잡힌다. 저자는 문재인 정부 대통령비서실에서 동고동락한 벗이다. 촛불혁명-코로나-남북정상회담을 관통하는 국면에서 저자의 말과 글은 살아서 꿈틀댔다. 그때는 저자가 여고 시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인디아나 존스'에 마음을 빼앗겨 고고미술사학과를 선택했는지 알지 못했다.

첫 번째 문화답사기는 '잊혀진 나라 가야 여행기(2021)'였다. 마한에 앞서 가야를 답사한 까닭은 당시 한일 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식민사관의 오염된 언어 속에서 가야사는 오랫동안 내상이 깊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가야는 우리 민족 DNA의 일부를 이룹니다"라며 호소력 짙은 추천사를 쓴 배경이다. 책 출간 2년 뒤 가야 고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저자의 이력에 후광을 더했다.

이번엔 가야에서 마한으로 넘어왔다. 마한은 저자의 고향인 전라도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고대사 커뮤니티다. 가야보다 먼저 문명을 꽃피웠으나 백제에 복속돼 기록보다는 해석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강인욱 교수가 추천사에서 "마한은 한국 고대사의 가장 크고도 깊은 '테라 인코그니타(Terra Incognita, 미지의 땅)'"라고 쓴 까닭이다. 그러므로 마한의 역사는 필연적으로 상상력을 동반한다.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가 답사기라면 2부는 문화비평이다. 저자는 호남과 충청의 마한 유적지를 샅샅이 훑은 뒤 일본과 베트남까지 다니면서 문화교류의 흔적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저자 특유의 감수성이 마한의 유물을 판타지 드라마로 둔갑시킨다. 난개발로 사라진 문명의 발상지에서 과거를 재현하고 현재를 디자인한다. 소위 '역사 지그재그' 기법을 통해 마한인들의 생활사가 무덤 밖으로 빛을 뿜는 순간이다.

국립나주박물관에서 남도의 사계절 풍광과 옹관을 묘사한 대목은 이 책을 고품격 에세이로 끌어올린다. 항아리 안에 누워 있는 망자를 어머니의 품에 안긴 태아처럼 여기고,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아파트형 고분(복암리 3호분)을 '가족이 함께 머무는 영혼의 집'이라 부르는 마음씨는 또 어떤가. 과연 개인적 삶의 북극성을 '한반도 헤리티지에 대한 사회적 소명을 해내는 사람'으로 정한 마한의 후예답다.

타향 사람의 시선에서 이 답사기의 매력을 꼽자면 무엇보다 토박이끼리 전수되는 맛과 멋의 디테일이다. 수준급 식도락가들이나 알 수 있는 동네 맛집들을 시전하는 모습에서 고수의 내공이 느껴진다. 이 책을 읽으면 나주 반남고분 핑크뮬리나 무안의 한반도 모빌리티 느러지도 궁금해질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나주곰탕의 연원이 보이고 영산포 홍어의 참맛도 느껴진다.

저자는 인복도 많지만 재주가 뛰어나고 호기심도 남다르다. 가야 답사기에선 스케치 그림으로 주위를 놀라게 하더니, 이번엔 드론을 배워 유적지를 직접 촬영했다. 한번은 드론이 담양 식영정 옆 소나무에 걸려 시야에서 사라졌는데 직장 동료가 나흘에 걸쳐 원시적 방식으로 구출했다. 첫날 관찰, 둘째 날 페트병 투척, 셋째 날 낚싯대 찌르기, 넷째 날 화살 발사를 거쳐 드론이 땅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토포필리아(Topophilia)'라는 말이 있다. 장소(Topos)와 사랑(Philia)의 합성어다. 저자는 토포필리아를 느끼려면 '한참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영산강 물길 곁에서 소리와 바람을 음미하는 시간이 쌓이면, 어느 순간 첫눈에 사랑에 빠지듯 마한의 미소가 당신을 사로잡을지도 모른다. 정은영의 마한 답사기는 "오래된 것들이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푸근하게 들려줘서 좋았다. 폭염에 지친 벗들에게 멋진 선물을 안긴 '마한의 딸'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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