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전시 기록 기념관 찾아
자랑스러운 역사 살펴보기를
"광주학생독립운동은 해방 그날까지 학생들의 빛나는 투쟁의 역사다."
광주학생독립운동 95주년을 기념해 광주동부교육청과 무등일보가 공동으로 진행한 1일 기자체험에 강사로 참여한 박해연(초당대) 교수의 설명이다.
지난 3일은 학생 중심의 항일민족운동이었던 '광주학생독립운동'이 발생한지 9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1929년 11월3일 일어난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19년 벌어진 3·1운동과 1926년 발생한 6·10 만세운동 함께 3대 민족항일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28년 6월, 당시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에 재학중이던 이경채가 일본의 식민지배를 비판한 전단을 살포했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한 '이경채 사건'으로 광주 지역 학생들이 '맹휴'(동맹휴학)을 벌인 사건도 배경이 됐다.
당시 '맹휴'에는 1926년 왕재일, 장재성 등 15명이 조직한 성진회를 주도로 광주고보, 광주여고보(현 전남여고), 광주사범학교(현 광주교대), 광주농업학교 등이 참가해 학생들의 굳은 의지를 보여줬다.
특히 광주여고보는 중간고사 지필평가 때 시험지를 백지상태로 제출하는 '백지동맹'도 펼쳤었다. 이렇게 광주·전남 학생들 간에 반일(反日)감정이 점점 커지고 있을 때인 1929년 10월 30일, 이들의 반일감정을 더 심화시켜 학생들을 거리로 나오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나주역에서 일본인 학생이 광주여고보 학생인 박기옥을 희롱하자 당시 광주고보 학생이던 박준채 학생이 일본인 학생을 저지하며 한일 학생들의 충돌이 일어난 나주역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1929년 11월3일 천황의 생일(명치절)을 이유로 광주 지역 학생들에게 광주공원에 있는 신사에 참배를 강요하자, 이에 반발한 학생들의 시위를 벌이며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시작됐다. 이후 신간회를 중심으로 학생들의 항일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돼 320여개 학교의 학생들이 참여한 대규모 독립운동으로 확산됐다.
현재 광주에는 전남여고, 광주제일고,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등지에 당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기록들이 전시돼있다. 이곳을 찾아 우리 지역에서 일어난 자랑스러운 역사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임도윤(일곡초), 김태희·이혜린(문화중) 기자
- 항일독립정신 굳은 의지 광주학생독립운동은 등에서 1929년 일어난 학생독립운동을 말한다.운동은 당시 일본 학생들이 나주역에서 한국 여학생들을 희롱한 사건이 발단이 됐다. 전남여고를 비롯한 광주 학생들은 일본 학생들의 폭력과 일본 당국의 탄압에 저항, 학생독립운동을 일으켰다.전남여고는 이 운동을 기념해 광주광역시 기념물 26호로 지정됐다. 전남여고에는 이후 역사관이 조성됐고 교내에는 1959년 전국적 모금운동을 통해 광주학생독립 여학도 기념비가 건립됐다. 이 기념비의 앞면에 휘호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썼고, 뒷면은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의 '배달여자의 전통적인 덕행을 이어 맨손으로 왜적의 총칼에 항거해 독립의 한 길을 닦은 여학도의 절의는 곧 해의 거울이요 잘 사람의 본이다'라는 문구가 담겨 있다. 옆으로는 지난 2017년 전남여고 개교 90주년을 기념하여 건립된 여학도상이 들어섰다. 이 기념비 등은 여학생들의 항일독립정신의 굳은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김건호·김시은·김하람·심청명·정수이(서강중) 기자
- · 일제강점기 탄압·폭력 맞선 학생들
- · 광주학생독립운동 정신계승 더욱 관심을
- · 기자로 보낸 하루 "소중한 체험"
- · 생생한 기자 직업체험 유익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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