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체험]'"피로 지켜낸 민주주의" 김영용 4·19 호남 의병장

입력 2026.07.22. 18:36 박소영 기자
김영용 호남4·19혁명총연합회장
김영용 호남4·19혁명단체총연합회장

“나는 광주 4·19의 첫 피입니다”

김영용 호남4·19혁명단체총연합회장은 1960년 4월19일 당시 광주공업고등학교 전기과 3학년 학생이었다. 학생들을 이끌고 교문 밖으로 나서려다 손목 동맥이 끊어지는 중상을 입은 그는 지금도 ‘광주 4·19의 첫 피’로 기억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광주4·19혁명기념관에서 만난 김 회장은 66년 전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김 회장은 “1960년 4월19일 당시 광주 시내 각 학교에는 아침 일찍부터 경찰이 배치돼 학생들의 움직임을 통제하고 있었다”며 “광주공고 학생들도 거리로 나가기 위해 교문으로 향했지만 교사와 경찰의 저지에 가로막혔다”고 회상했다.

이어 “학생들을 이끌고 교문으로 나가기 위해 저지하던 선생님을 밀치고 교실 현관 유리창을 맨주먹으로 내리쳤다”며 “이 과정에서 손목 동맥이 끊어지고 머리를 크게 다쳐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당시 민주주의를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두려움보다 정의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4·19혁명의 의미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그는 “4·19혁명은 학생들의 정의 실현을 위한 민족정기의 발현이었고, 짓밟힌 민권 수호와 독재에 맞선 국민의 저항이었다”며 “오늘 학생들도 4·19혁명의 의미를 기억하고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신상훈·박지성·이시훈 기자

정리=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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