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 야구부, 광주 찾아 사과...왜곡된 역사인식을 바로잡는 계기되길

입력 2026.07.06. 19:59 박소영 기자
학생·학부모 등 80여명 광주 방문
광주일고 학생들과 화해의 악수
학생독립운동·5·18 정신 되새겨
"곪은게 터져...일회성 교육 해결 못해"
6일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학생들과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 학생 등이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를 진행했다. 박소영 기자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응원으로 물의를 빚은 서울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광주를 찾아 피해 학생들과 직접 고개를 숙였다. 지역사회는 이번 사안을 단순한 사과와 징계로 마무리할 것이 아니라 학교 안팎에 퍼진 혐오와 왜곡된 역사인식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6일 오후 3시께 광주 북구 광주제일고. 배재고 학생들과 학부모를 태운 버스 3대가 학교 후문으로 들어서자 교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강당 안에서 미리 자리를 지키고 있던 광주제일고 학생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단을 맞았고, 교복을 단정히 입은 배재고 학생들은 말없이 강당으로 들어와 양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였다. 뒤이어 입장한 학부모들은 연신 눈물을 훔치며 학생들 뒤편에 자리를 잡았다.

이날 배재고 이효준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과 지도자, 학생선수, 학부모 등 80여명은 광주제일고를 찾아 사과와 화해의 시간을 가진 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과 국립5·18민주묘지를 차례로 참배했다.

이번 방문은 지난달 29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일부 학생들이 광주제일고 더그아웃을 향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등의 구호를 외쳐 지역 비하와 5·18 왜곡 논란을 일으킨 지 일주일 만이다.

사과에 나선 배재고 야구부 주장은 허리를 깊게 숙인 뒤 “저희가 광주에 발을 딛는 것만으로도 불편하셨을 텐데 귀한 시간을 마련해주신 광주제일고 관계자와 선수들에게 감사드린다”며 “부적절한 발언과 행동으로 마음의 큰 상처를 입은 광주제일고 선수들과 학부모, 광주시민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선수가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야구를 떠나 인성과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배우게 됐다”며 “같은 선수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다. 항상 마음속 깊이 반성하는 자세로 살아가겠다”고 밝혔다.

배재고 야구부 감독도 “학생들의 지역 비하 응원은 무엇으로도 변명할 수 없는 잘못”이라며 “학생들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지도자로서 저의 책임이 가장 크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다”고 사과했다.

이효준 배재고 교장은 발언 도중 오랫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여러번 눈물을 훔친 그는 “민주주의는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학생들과 함께 다시 배우고 성찰하겠다”며 “광주학생독립운동과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잊지 않겠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광주제일고도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광주제일고 학생 대표는 “이번 일을 통해 우리 역시 다른 팀에게 상처를 주는 언행은 없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조윤제 광주제일고 야구부 감독은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지만 반성하고 화해하는 것이 더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길”이라며 “다시 그라운드에서 만나게 된다면 정정당당한 승부를 펼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규연 광주제일고 교장은 고개를 숙인 배재고 학생들을 향해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라. 여러분의 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진정한 사과는 앞으로 더 잘 살아가는 것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격려했다.

행사를 마친 양교 학생들은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악수를 나눴고, 교직원들도 차례로 서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이어 광주제일고 내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으로 이동해 헌화와 묵념을 했으며,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정신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힌 배재고 명의의 화환을 기념탑에 헌정했다.

이번 사태는 일부 학생들의 일탈을 넘어 학교 안팎에 퍼진 혐오와 조롱 문화, 왜곡된 역사인식을 수면 위로 드러낸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역사회는 단순한 사과와 징계에 그칠 것이 아니라 학교와 학교 스포츠 현장의 역사교육과 민주시민교육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신극정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장은 “학생들은 5·18을 직접 경험한 세대가 아닌 만큼 이번 광주 방문을 통해 5·18이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고 돌아갔으면 좋겠다”며 “보여주기식 방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잘못을 깨닫고 사과한 것이라면 의미 있는 걸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과하러 온 학생들을 무조건 밀어낼 이유는 없다. 광주제일고 학생들이 사과를 받아들인 만큼 이제는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면서도 “역사를 왜곡하는 잘못된 인식이 미래 세대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함께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성동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광주지부 정책실장은 “학생들이 잘못한 것은 분명하지만 이번 사태는 특정 학교 학생들의 일탈이 아니라 교육과 언론, 정치 등 어른 사회가 함께 만든 문제”라며 “5·18을 혐오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문화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 만큼 학생들에게만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백 실장은 “학생들은 학교보다 유튜브와 SNS에서 훨씬 많은 영향을 받고 있고 이미 혐오와 조롱이 놀이처럼 소비되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며 “5·18이 조롱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니라 혐오와 조롱 문화 자체가 학생 사회에 오래전부터 퍼져 있었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단순히 역사교육 시간을 늘리거나 특별교육 몇 시간을 하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며 “학생들이 서로 토론하고 다양한 관점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들고, 교사가 제대로 교육할 수 있는 여건과 권한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보여주기식 대책이나 일회성 교육에 그칠 것이 아니라 5·18의 보편적 가치가 전국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교육 방식과 사회 환경 전반을 함께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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