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일고 학생들과 화해의 악수
학생독립운동·5·18 정신 되새겨
"곪은게 터져...일회성 교육 해결 못해"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응원으로 물의를 빚은 서울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광주를 찾아 피해 학생들과 직접 고개를 숙였다. 지역사회는 이번 사안을 단순한 사과와 징계로 마무리할 것이 아니라 학교 안팎에 퍼진 혐오와 왜곡된 역사인식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6일 오후 3시께 광주 북구 광주제일고. 배재고 학생들과 학부모를 태운 버스 3대가 학교 후문으로 들어서자 교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강당 안에서 미리 자리를 지키고 있던 광주제일고 학생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단을 맞았고, 교복을 단정히 입은 배재고 학생들은 말없이 강당으로 들어와 양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였다. 뒤이어 입장한 학부모들은 연신 눈물을 훔치며 학생들 뒤편에 자리를 잡았다.
이날 배재고 이효준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과 지도자, 학생선수, 학부모 등 80여명은 광주제일고를 찾아 사과와 화해의 시간을 가진 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과 국립5·18민주묘지를 차례로 참배했다.
이번 방문은 지난달 29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일부 학생들이 광주제일고 더그아웃을 향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등의 구호를 외쳐 지역 비하와 5·18 왜곡 논란을 일으킨 지 일주일 만이다.
사과에 나선 배재고 야구부 주장은 허리를 깊게 숙인 뒤 “저희가 광주에 발을 딛는 것만으로도 불편하셨을 텐데 귀한 시간을 마련해주신 광주제일고 관계자와 선수들에게 감사드린다”며 “부적절한 발언과 행동으로 마음의 큰 상처를 입은 광주제일고 선수들과 학부모, 광주시민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선수가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야구를 떠나 인성과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배우게 됐다”며 “같은 선수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다. 항상 마음속 깊이 반성하는 자세로 살아가겠다”고 밝혔다.
배재고 야구부 감독도 “학생들의 지역 비하 응원은 무엇으로도 변명할 수 없는 잘못”이라며 “학생들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지도자로서 저의 책임이 가장 크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다”고 사과했다.
이효준 배재고 교장은 발언 도중 오랫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여러번 눈물을 훔친 그는 “민주주의는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학생들과 함께 다시 배우고 성찰하겠다”며 “광주학생독립운동과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잊지 않겠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광주제일고도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광주제일고 학생 대표는 “이번 일을 통해 우리 역시 다른 팀에게 상처를 주는 언행은 없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조윤제 광주제일고 야구부 감독은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지만 반성하고 화해하는 것이 더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길”이라며 “다시 그라운드에서 만나게 된다면 정정당당한 승부를 펼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규연 광주제일고 교장은 고개를 숙인 배재고 학생들을 향해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라. 여러분의 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진정한 사과는 앞으로 더 잘 살아가는 것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격려했다.
행사를 마친 양교 학생들은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악수를 나눴고, 교직원들도 차례로 서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이어 광주제일고 내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으로 이동해 헌화와 묵념을 했으며,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정신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힌 배재고 명의의 화환을 기념탑에 헌정했다.
이번 사태는 일부 학생들의 일탈을 넘어 학교 안팎에 퍼진 혐오와 조롱 문화, 왜곡된 역사인식을 수면 위로 드러낸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역사회는 단순한 사과와 징계에 그칠 것이 아니라 학교와 학교 스포츠 현장의 역사교육과 민주시민교육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신극정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장은 “학생들은 5·18을 직접 경험한 세대가 아닌 만큼 이번 광주 방문을 통해 5·18이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고 돌아갔으면 좋겠다”며 “보여주기식 방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잘못을 깨닫고 사과한 것이라면 의미 있는 걸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과하러 온 학생들을 무조건 밀어낼 이유는 없다. 광주제일고 학생들이 사과를 받아들인 만큼 이제는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면서도 “역사를 왜곡하는 잘못된 인식이 미래 세대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함께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성동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광주지부 정책실장은 “학생들이 잘못한 것은 분명하지만 이번 사태는 특정 학교 학생들의 일탈이 아니라 교육과 언론, 정치 등 어른 사회가 함께 만든 문제”라며 “5·18을 혐오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문화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 만큼 학생들에게만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백 실장은 “학생들은 학교보다 유튜브와 SNS에서 훨씬 많은 영향을 받고 있고 이미 혐오와 조롱이 놀이처럼 소비되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며 “5·18이 조롱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니라 혐오와 조롱 문화 자체가 학생 사회에 오래전부터 퍼져 있었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단순히 역사교육 시간을 늘리거나 특별교육 몇 시간을 하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며 “학생들이 서로 토론하고 다양한 관점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들고, 교사가 제대로 교육할 수 있는 여건과 권한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보여주기식 대책이나 일회성 교육에 그칠 것이 아니라 5·18의 보편적 가치가 전국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교육 방식과 사회 환경 전반을 함께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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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어떡하라고"···전남광주 홈플러스 입점 점주들 '망연자실'
15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홈플러스 동광주점이 임시 휴업에 들어간 가운데, 마트가 문을 닫은 모습. 강주비 기자
“7억원을 들여 만든 일터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위기에 놓였습니다.”홈플러스의 회생절차 폐지와 휴업 조치가 현실화되면서 대형마트 안에서 생계를 이어온 입점업체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홈플러스가 긴급 운영자금 확보로 회생 가능성을 다시 열었지만, 판매대금과 임대보증금 반환 등 등 보상 방안은 여전히 불투명한 가운데 입점 점주들은 회사의 설명 한마디 듣지 못한 채 언론 보도로 상황을 확인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15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홈플러스 광주하남점이 임시 휴업에 들어간 가운데, 입점 업체가 철수한 모습. 강주비 기자15일 오후 찾은 전남광주통합특별시(광주특별시) 북구 홈플러스 동광주점.마트 내부에서는 영업 중단 안내 방송이 반복해서 흘러나왔고, 본매장은 셔터를 내린 채 불이 꺼져 적막감이 감돌았다. ‘입점업체는 정상 영업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지만 일부 매장은 이미 집기를 철수해 텅 비어 있었고, 문을 연 점포 직원들은 매대 앞에 앉아 침울한 표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10여년 넘게 이곳에서 매장을 운영해 온 점주 A씨는 “상황이 어떻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한숨부터 내쉬었다.A씨는 “회생 이야기가 나온 지는 꽤 됐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휴업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막연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이어 “회원권을 끊어놓은 기존 고객들만 이용하면서 차감만 이뤄질 뿐 신규 회원은 없어 사실상 매출이 없는 상태”라며 “폐점이 현실화되더라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할 겨를도 없다”고 토로했다.또 “회사에서 별다른 설명을 들은 적이 없고 기사를 보고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며 “고객들도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묻지만 정작 우리도 아는 것이 없어 답답하다. 정확한 안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2022년 입점한 점주 B씨는 “저는 본사 소속이라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날 수도 있지만 함께 근무하는 직원들은 사정이 다르다”며 “직원 2~3명 모두 광주에서 생활하고 있고 광주에서는 이곳이 유일한 매장이라 폐점되면 가장 가까운 대구로 옮겨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15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홈플러스 동광주점이 임시 휴업에 들어간 가운데, 입점 업체가 철수한 모습. 강주비 기자화장품·의류 등 일부 브랜드는 본사 방침에 따라 철수했지만, 보증금과 월세를 내고 홈플러스와 직접 계약한 점주들은 사정이 달랐다. 월세를 직접 내는 매장들은 상가임대차보호법상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광주하남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이날 오전 만난 광주하남점 입점업체 점주 C씨는 “계약 당시 홈플러스 건물이 담보신탁으로 넘어간 사실을 안내받지 못했다”며 “이후 이 사실을 알게되고, 상황이 악화되는 것 같아 중간에 나가고 싶었지만 원상복구 비용만 보증금의 절반 가까이 들어가는 데다 남은 보증금까지 돌려받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C씨는 “입점 점주나 납품업체 채권은 후순위가 될 가능성이 크고, 경영진의 임금과 퇴직금이 먼저 지급될 수도 있다는 점도 납득하기 어렵다”며 “입점 점주들은 지역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풀뿌리 소상공인이다. 파산관재인이나 금융기관에 비해 우리의 목소리는 작을 수밖에 없다. 심리적인 고통이 너무 커 앞으로 다른 사업을 시작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광주하남점에서 헬스장을 운영하는 대표 D씨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도움을 호소하기도 했다.D씨는 “평생 모은 돈과 빚을 더해 인테리어 공사에 3억3천만원, 헬스기구 구입에 3억4천만원 등 모두 6억7천만원을 투자했다”며 “홈플러스를 믿고 들어왔는데 대기업이 문을 닫으면 보증금과 시설비를 투자한 임차인들은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적었다.이어 “마트가 문을 닫으면 투자금은 물론 회원들에게 돌려줘야 할 환불금까지 모두 제가 감당해야 한다”며 “힘없는 임차 소상공인이 모든 피해를 떠안지 않도록 정당한 피해보상이 이뤄질 수 있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15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홈플러스 동광주점이 임시 휴업에 들어간 가운데, 입점 업체가 철수한 모습. 강주비 기자홈플러스는 운영자금 부족을 이유로 지난 13일부터 본사와 전국 67개 대형마트 점포에 대한 임시 휴업을 통보했다. 광주특별시에서는 2024년 광주계림점이 폐점한 데 이어 올해 목포점과 순천풍덕점의 폐점이 결정됐고, 정상 영업 중이던 동광주점과 광주하남점, 광양점, 순천점도 휴업에 들어갔다. 현재 이들 4개 점포에는 150여개 입점업체가 영업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법원의 회생절차 폐지 결정 이후 즉시항고 기한인 오는 20일까지 자금 조달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파산 절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날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이 2천억원 규모의 긴급 운영자금 지원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회생 가능성은 다시 열리게 됐다. 운영자금이 확보되면 홈플러스는 즉시항고를 통해 회생절차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홈플러스는 판매대금은 영세 개인사업자에게 우선 지급하고 있으며 법인사업자에 대해서도 자금을 확보해 지급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입점 점주들이 우려하는 임대보증금 반환 등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한편 홈플러스 입점점주협의회는 이날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열고 판매대금 지급과 임차보증금 보호 대책, 입점 소상공인의 생존권과 영업권 보장을 촉구했다.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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