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범행 이틀 전부터 흉기 챙겨, 세탁소 방문, 증거 인멸 정황
경찰, 계획범죄 가능성 무게, 7~8일 신상공개 심의 전망

응급구조사를 꿈꾸던 여고생은 늦은 밤 공부를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 참변을 당했다. 경찰은 “자살하려다 충동적으로 범행했다”는 피의자 진술에도 범행 이틀 전부터 흉기를 소지한 채 배회한 점과 범행 뒤 행적 등을 토대로 계획범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하고 있다.
“어떻게 보내…나는 못 보내….” 6일 오전 광주 광산구 한 장례식장.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흉기 피습을 당해 숨진 고등학생 A양의 빈소에는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입구에 설치된 안내 화면에는 앳된 얼굴의 영정사진과 함께 나이를 알리는 ‘18’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빈소 너머 복도에까지 흐느낌이 번졌고 조문객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A양은 지난 5일 오전 0시11분께 광주 광산구 월계동 한 대학교 인근 보행로에서 장모(24)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공부 욕심이 많던 A양은 사건 당일에도 평소처럼 스터디카페에서 늦은 시간까지 공부한 뒤 귀가하던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현장 근처에 있던 또 다른 고등학생 B군도 비명을 듣고 다가갔다가 흉기에 다쳤다.
유족과 주변 지인들은 A양을 “꿈을 향해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온 착한 학생”이라고 입을 모았다.
평소 A양의 가족들과 가깝게 지냈다는 김영두(40)씨는 “어릴 적부터 가족끼리 자주 왕래해 A양은 거의 내 딸과 다름없는 아이였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김씨는 “‘나중에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보면 응급구조사나 구급대원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또래 중에 그렇게 일찍 꿈을 정하고 노력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얼마 전 제 생일이라고 기프티콘도 보내줬다”며 “그 마음 씀씀이가 아직도 눈에 선한데 이렇게 떠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 기프티콘을 어떻게 쓰겠냐”고 말을 잇지 못했다.
A양 어머니의 친구도 “어릴 때부터 워낙 사랑스럽고 속이 깊은 아이였다”며 “사춘기 시절에도 말썽 한 번 피운 적이 없었다. 가족들이 너무 큰 충격에 빠져 있다”고 전했다.
A양의 국어학원 교사 역시 “시험이 끝난 뒤에도 바로 학원에 나와 공부할 정도로 성실한 학생이었다. 고민 상담도 자주 해 정말 친구 같은 학생이었다”며 “당장 지난주 토요일에도 수업을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건 현장에도 추모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날 오후 찾은 광산구 월계동 한 고등학교 앞 인도의 가로수 아래에는 시민들이 놓고 간 국화꽃과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이상동기 범죄, 이른바 ‘묻지마 살인’으로 보고 수사 중인 가운데 장씨의 범행이 단순 우발이 아닌 계획범죄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장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는 게 재미없어 극단적 선택을 고민했다”며 “미리 챙겨 나온 흉기를 들고 거리를 돌아다니다 피해자인 A양을 두 차례 마주친 뒤 범행 충동을 느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은 장씨가 범행 이틀 전부터 흉기를 소지한 채 광주 일대를 배회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장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살 방법을 여러 가지 고민했다”고 진술했지만, 흉기 소지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직후 행적 역시 석연치 않다.
경찰은 이날 광산구 첨단지구 한 배수로에서 범행에 사용된 흉기를 발견했다. 장씨는 범행 약 11시간 뒤인 검거 당시에도 가방 안에 또 다른 흉기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흉기는 포장을 뜯지 않은 상태였으며, 장씨는 경찰에 “평소 차량 안에 보관하던 것을 도주 과정에서 챙겼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버릴 장소를 미리 물색했는지, 별도의 흉기를 소지하고 다닌 이유와 추가 범행 의도가 있었는지도 들여다보고 있다.

또 장씨는 범행 직후 차량과 택시를 번갈아 이용해 이동했고, 중간에 무인세탁소를 들른 정황도 확인됐다. 경찰은 흉기 은닉 여부와 함께 혈흔 제거 등 증거 인멸 시도가 있었는지도 확인하고 있다.
현재까지 음주나 약물 투약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정신질환 치료 이력도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경찰은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심리 분석과 면담을 진행하는 한편, 휴대전화 포렌식 등을 통해 범행 준비 과정과 추가 범행 가능성 등을 조사 중이다.
한편 경찰은 장씨에 대해 살인·살인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광주경찰청은 7일 또는 8일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장씨의 신상 공개 여부를 결정하고, 사이코패스 진단 검사도 실시할 방침이다.
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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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기난동 막은 경찰관 끝내 숨져...트라우마에 무너진 ‘치안 최전선’
19일 광주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서구경찰서 한 지구대 소속 A 경감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광주 남구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 당시 피의자를 제압하다 크게 다친 50대 경찰관이 끝내 숨을 거뒀다.지난 2024년 사건 이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불면, 기억장애 등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강력 사건 현장에 반복 노출되는 현장 경찰관들에 대한 장기적 정신 치료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19일 광주경찰청에 따르면 광주 서부경찰서 한 지구대 소속 A 경감은 전날 광주 한 병원에서 숨졌다. A 경감은 2024년 4월19일 사건 당시 광주 남부경찰서 효덕지구대 소속으로 동료 경찰관 2명과 함께 광주 남구 송하동에서 행인을 폭행하고 흉기를 휘두르던 50대 난동범을 제압하다 길이 25㎝가량의 톱에 머리와 팔 등을 다쳐 약 두 달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유족들에 따르면 사건 당시 A 경감은 단기 기억 상실 판단을 받았으며 최근까지도 당시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불면과 불안 증세가 이어지던 중 지난해 10월 남구 한 대학교 사건 현장에 출동한 이후 트라우마가 재발해 열흘 가까이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A 경감은 올해 2월24일 남부경찰서 효덕지구대에서 서부경찰서 소속 지구대로 발령받았지만 정상적인 업무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발령 이후 몇 차례 연가를 사용했고 4월부터는 병가와 연가를 반복해 업무에 복귀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가족들은 상태가 악화되자 지난 13일부터 A 경감을 입원 치료하도록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19일 광주 한 장례식장에서 흉기 피습 트라우마로 지난 18일 사망한 광주 서부경찰서 한 지구대 소속 A 경감 유가족들이 일선 경찰관들의 트라우마 치료 체계를 제대로 마련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박소영기자 psy1@mdilbo.comA 경감의 부인 양모(50)씨는 “남편이 사건 이후 매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기억력도 점점 흐려지고 판단도 어려워했다. 일상 생활 중에서 혹시라도 자기가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았을까 봐 차량 블랙박스를 하루 종일 반복해서 돌려보기도 했다”며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다는 죄책감이 굉장히 심했다. 2월 인사 발령 이후 제대로 출근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스스로 더 힘들어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이어 “현장 경찰관들이 사건 이후 정신적으로 무너져도 장기적으로 관리받거나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는 부족한 것 같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공무상 트라우마 치료 체계를 제대로 마련해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실제 현장 경찰관들의 정신건강 악화 문제는 전국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지난 2023년 8월 전남 여수의 한 파출소 소속 50대 경찰관이 바다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됐다. 2024년 충남 아산에서는 현직 경찰관이 자신이 근무하던 파출소 직원휴게실에서 권총으로 극단적 선택을 해 숨졌다. 경찰청은 경찰관들의 PTSD와 직무 스트레스 등을 관리하기 위해 전국에 ‘마음동행센터’를 운영 중이다. 광주 마음동행센터는 지난 2014년 문을 열어 현재 상담사 2명이 근무하고 있다.경찰관 상담은 ▲지정상담 ▲자발상담 ▲긴급상담 등으로 나뉘는데 긴급상담은 강력 사건이나 충격 사건을 경험한 경찰관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의무 상담이다. A 경감은 2024년 흉기 피습 사건 이후 4차례 긴급상담을 받았고 이후 자발적으로 1차례 추가 상담을 진행해 총 5차례 상담을 받았다.다만 이후 추가 상담은 본인 의지에 따라 진행되는 구조라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광주경찰청 마음동행센터 관계자는 “자발적으로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편이다. 조직 특성상 스스로 상담을 요청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실제로 광주 마음동행센터는 2023년 993명, 2024년 725명, 2025년 705명을 상담했다. 최근 3년간 상담 인원은 총 2천423명, 상담 횟수는 7천235회에 달하지만 이중 60% 이상은 본청이 특정 직무나 연령대를 지정해 실시하는 지정상담이였다.김정규 호남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 조직 내부에서는 상담을 받는 것 자체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분위기가 여전히 존재한다. 동료들에게 근무 부담을 준다는 죄책감 때문에 치료가 필요해도 스스로 요청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며 “현재 경찰 마음동행센터 프로그램은 충격 사건 직후 단기 상담이나 이벤트성 대응에 머무르는 측면이 있다. PTSD는 시간이 지난 뒤 불면과 불안, 죄책감 등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장기 추적 관리 체계와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이날 오전 광주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A 경감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경찰은 A 경감의 공무상 재해와 순직 인정 여부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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